며칠 전 필자의 체육관에 귀한 손님이 방문하였다. 주인공은 컴퓨터 복서라 불리던 전 동양 페더급 챔피언 황재용이었다.

동양 페더급 챔피언 황재용
동양 페더급 챔피언 황재용

1963년 경북 청송태생의 황재용은 1984년 제13회 MBC 전국신인왕전(페더급)에 출전, 결승에 올라 9전 전승(5KO)을 기록한 정청원 (와룡 체)과 맞대결 했지만 근소한 차로 판정패를 당한다. 절치부심한 그는 85년 7월 유재문을 판정으로 잡고 한국페더급 정상에 오른다.

정교한 복싱을 구사하는 왼손잡이 복서 황재용은 9월 전찬중을 판정으로 물리치고 1차 방어에 성공한다. 35전을 전부 국내 복서와 대결한 전찬중은 오민근 정기영 김지원 최연갑 이오형 하경주등 역대급 복서들과 맞대결 22승(13KO) 6무 7패를 기록한 베테랑이었다.

2차방어전에서 83년 신인왕전 최우수 복서(MVP) 박병수와 무승부를 이뤄 타이틀을 지킨 황재용은 86년 1월 모몽 마나이에 12회 판정승하며 동양 페더급 정상에 오른다. 묵직한 한방은 없어도 스마트한 복싱을 자유자재로 펼치면서 5차 방어에 성공한 그는 1988년 4월 23전 19승 (4KO) 1무 3패를 기록한 후 링을 떠난다. 은퇴 후 강동구 천호동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다 접고 지금은 사업가로 변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서울 강서구 예원교회에서 펼쳐진 행사장에서 필자는 '격투기 황제' 이효필 챔프를 만났다.

마침 동행한 김용석 사범이 이효필 챔프와 성동 체육관 권재우 관장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동료 복서여서 두 사람은 옛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정담을 나눴다.

격투기 황제 이효필과 김용석사범(우측)
격투기 황제 이효필과 김용석사범(우측)

1958년 전남 해남 출신의 이효필은 1977년 서울 신인선수권과 전국 신인선수권대회에서 박종팔을 연속 판정으로 잡고 우승을 차지한 복서다. 이효필의 숨은 비화가 생각난다.

1980년 어느날 유제두 관장이 운영하는 마포 유덕 체육관을 방문한 이효필이 신인 유망주와 스파링을 펼친다. 이효필은 바위 같은 묵직한 펀치로 신인 복서를 맹타한다.

이효필의 펀치에 전의를 상실한 정도로 얻어맞은 복서가 바로 후에 WBA 슈퍼 미들급 챔피언 백인철이다. 그가 이날 저녁 침통한 심정으로 복싱을 접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뇌했을 정도로 이효필의 복싱 스킬은 뛰어났다.  

이효필은 1978년 1월 제4회 킹스컵 복싱대회 최종선발전에 미들급에 출전, 결승전에서 천두현(금성사)에 판정패 했지만 실력은 국내 정상급임을 증명했다. 당시 선발전은 LF 급에 출전한 김광섭이 장흥민(한국체대)과 홍진호(육군)를 차례로 잡으면서 고교생 돌풍을 일으킨 대회였다.

김용석 사범과 격투기황제 이효필이 복싱을 수학한 성동 중앙 체육관은 권재우 김성은 김승미 이흥수등 명장 지도자를 대거 탄생시킨 체육관이다. 1969년 성동 체육관 트레이너로 발을 디딘 권재우 관장은 이곳에서 오영호 박춘하 현수만 최용호 김태호 이효필등 기라성 같은 복서들을 배출했다.

그후 1978년 보라매체육관을 설립하고 극동체육관을 거치면서 백인철 정기영 이승훈 이일복을 배출했다. 김성은 감독은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 12체급 전 체급 석권 신화를 창출할 때 일선에서 선수들을 진두지휘한 명장이고 바통을 이어받은 김승미 감독은 각종 국제대회에서 4차례 종합 우승을 이끌어 최우수 지도자상을 받은 '복싱계 히딩크'로 불리는 명 지도자다. 

이흥수 감독 조동범 홍성식(좌측부터)
이흥수 감독 조동범 홍성식(좌측부터)

막내인 이흥수 감독은 1954년 경북 의성태생으로 1973년 제26회 전국 신인대회 밴텀급 결승에서 황해남(중산)을 판정으로 잡고 우승을 차지한 복서다. 1982년부터 서울체고 복싱 강사로 입성 3년간 활동하면서 김석호, 한광형, 조동범, 나학균, 전병성, 김석현, 정해명 등을 배출해 학원 스포츠를 평정한 인물이다.

지도력을 검증받은 이흥수 감독은 1987년 국군체육부대 상무팀을 맡아 1988년 서울 올림픽에 김광선 오광수 하종호 박병진을 합류시키면서 국가대표팀 코칭 스탭에 전격 발탁된다.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때는 조동범, 한광형, 고요다, 전진철, 홍성식을,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 때는 배기웅, 신은철, 한형민, 신수영 등 소속 선수들을 올림픽호에 연달아 승선시켰고 본인도 올림픽에 3회 연속 지도자로 참가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특히 국가대표 감독으로 발탁되어 치른 2001년 동아시아대회에서는 LF급 김성수 B급 박정필 L급 박권영 LW급 양현태 W급 김수영 LM급 송인준 LH급 송학성 SH급 이강언 등 소속(상무)팀에서 8체급을 대표팀에 합류시켜 지도자로 꽃을 활짝 피웠다. 

이 대회 11체급에 나선 이흥수 사단의 한국대표팀은 금4 은3 동 4개를 따내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서울컵 2연패 ,1992년 9월 세계군인선수권 우승, 1993년 동아시아대회 우승 등 4개의 국제대회를 석권한 이흥수 사단의 일원인 홍성식 현 고창 영선고 체육 교사는 이흥수 감독에 대해 "지도력이 검증된 명품 조련사"라면서 "경기의 흐름을 캐치하면서 유효적절한 대응책을 제시해주는 수준 높은 지도자"라고 말했다.

(주) 대동 아이텍 주동근 회장
(주) 대동 아이텍 주동근 회장(가운데)

필자는 행사를 마치고 중앙 체육관 소속의 김용석 사범과 70년대 중반 신당동 중앙 체육관 에서 같이 복싱을 수학한 동료들을 만나러 그들이 거주하는 경기도 시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염철수 주동근 두 전직 복서를 만났다.

김 사범을 통해 알게 된 두 분 중 한 분이 ㈜대동 아이텍 주동근 회장이다. 1958년 전북 김제 출신의 주 회장을 필자는 '복싱계의 일론 머스크'라 부른다. 주 회장은 유소년기에 청운의 꿈을 품고 상경 신당동 에 위치한 성동 중앙 체육관에서 권재우 관장 신광석 사범의 지도를 받으면서 성장한 유망주였다.

김용석 사범의 전언에 의하면 그는 발레리나처럼 율동적인 푸드웍크가 인상적이었고 작은 알리라 불릴 정도로 리드미컬한 복싱을 구사했다고 한다. 

(주) 대동 아이텍 주동근 회장.
(주) 대동 아이텍 주동근 회장.

하지만 뜻하지 않은 일로 중도에 복싱을 접은 주동근은 산업전선에 뛰어들어 난관을 하나둘씩 제거하면서 그의 나이 30세이던 1988년 ㈜ 대동 아이텍을 설립,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대동 아이텍은 휴대폰 외장부품 사업에서 정밀모형 트레인 사업까지 다각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 2002년 중국 청도에 신기술 유한공사를 설립하는 등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갔다.

그리하여 2014년 5백만 불 수출의 탑 수상자로 선정되어 용틀임을 시작한 ㈜ 대동 아이텍은 2021년 12월 제58회 무역의날에 7백만불 수상자명단에 당당하게 이름을 또다시 올렸고 주동근 회장은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창업보다는 수성이 어렵다는 말이 있지만 주동근 회장은 인내심을 가지고 사업체를 한템포 한템포 끌어올리면서 정상궤도에 진입시킨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부정적인 사람은 한계가 있지만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은 한계가 없는 법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의 명언인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다면 그건 당신의 잘못입니다"를 금과옥조로 삼고 실행하면서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현재 주동근 회장은 복싱 백년사에 가장 성공한 복싱인으로 부각된 인물이다. 그러나 필자가 지켜본 이 천억원대 자산가는 언제나 겸손하고 소탈하다. 주 회장은 40년 전 성동 체육관에서 훈련할 때 자신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여준 권재우 관장을 한번 뵙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대동 아이텍 주동근 회장 가족사진
대동 아이텍 주동근 회장 가족사진

그러면서 그는 "재능있는 복서를 추천해 주면 조그만 후원을 통해 개인적인 사정으로 링에 오르지 못한 지난날의 아쉬움을 달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의 말에선 진정성이 느껴졌다. 

필자는 평소 주목한 복서가 있었다. 올해 고흥에서 펼쳐진 105회 전국체전 71Kg 급에 출전 금메달을 획득한 경기체고 2학년 박규빈이다. 2006년 경기도 구리 태생의 박규빈은 177 Cm의 훤칠한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죽창처럼 날카로운 스트레이트가 주무기인 고교 랭킹 1위의 정통파 복서다.

2019년 구리 인창중 1학년때, 1993년 러시아의 블라디 보스톡에서 개최된 태평양 국제대회 최우수복서(MVP)상을 수상한 김민기(한국체대) 관장이 운영하는 구리복싱 체육관에 입관, 체계적인 복싱수업을 받은 박규빈은 2021년 구리 인창중 3학년때 연맹 회장배 전국종별선수권 소년체전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2022년 경기 체고에 입학해 그 해 유스 선발전에서 우승한 박규빈은 2023년 아시아 유스 선수권(카자흐스탄)에 한국대표로 출전했다. 꽃을 활짝 피우려면 적당한 물과 햇빛이 필요하듯이 17세의 박규민 선수가 주 회장의 지원을 받으면서 무럭무럭 성장할 경우 향후 펼치질 아시안게임 올림픽 세계 선수권 등에서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국위를 선양하는데 선봉이 될 것이라 믿는다.

김민기 관장과 박규빈 선수(우측)
김민기 관장과 박규빈 선수(우측)

우리나라 스포츠 역사에서 대기업의 스포츠 후원은 국제무대에서의 성과로 직결되었다. 여기엔 총수들의 열정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특히 한국 아마복싱은 1982년 3월 김승연 한화 회장의 취임과 함께 그해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전 체급에서 메달권에 진입과 동시에 사상 최다인 7개의 금메달을 획득,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김 회장이 퇴임한 1998년엔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최초로 노골드에 그치면서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어 오늘에 이르렀다.

투자의 중요성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복싱 현실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싹을 틔우기 위해 복싱 후학들의 지원을 결정한 ㈜ 대동 아이텍 주동근 회장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끝으로 주 동근 회장 스토리를 쓰면서 느낀 점은 나는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이를 악물고 꿈을 찾아 덤비는 사람에게 신은 길을 알려 준다는 것이다. 교육학자 월리엄 클라크의 어록이 생각난다. "소년이여 야망을가져라(Boys be ambitious)."

조영섭 복싱전문기자는 1980년 복싱에 입문했고 현재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 복싱인이다.

1963년: 군산출생 

1983년: 국가대표 상비군

1984년: 용인대 입학

1991년: 학생선수권 최우수지도자상

1998년: 서울시 복싱협회 최우수 지도자상

2018년 서울시 복싱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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