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의 시간’이 다가왔다. 총선의 시계는 ‘-116일’을 가리키고 있다. 결전의 날을 앞두고 민심을 흔들 변수로 ‘제3지대론’가 주목받고 있다. 총선이나 대선 때마다 제3지대론은 제기됐다. 과거엔 제3지대 신당 출현 자체가 기득권 정당에는 위협이 되지 못했다. 기득권의 구태와 폐해에 대한 경고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제3지대 신당이 새로운 정치 지형으로 자리 잡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물론 과거에도 총선에서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둔 일은 있었다. 지역적 기반(호남과 충청)이 탄탄하고 간판스타(김종필과 안철수)가 당을 이끈 경우다. 1996년 자민련과 2006년 국민의당이 그랬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거대 정당에 흡수됐다. 제3당의 가치와 이념 구현은 꿈도 꾸지 못했다. 거대 양당의 기반을 공고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지난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로운선택 창당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앞줄 오른쪽부터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금태섭, 조성주 새로운선택 공동대표, 양향자 한국의희망 대표, 뒷줄 오른쪽은 류호정 정의당 의원.
지난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로운선택 창당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앞줄 오른쪽부터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금태섭, 조성주 새로운선택 공동대표, 양향자 한국의희망 대표, 뒷줄 오른쪽은 류호정 정의당 의원.

이번 총선에서는 과거와 정치 환경과 상황이 다르다. 어느 선거 때보다 새로운 대안에 대한 기대가 높다. 어느 정당에도 지지를 보내지 않는 무당층 비율이 역대급이다. 두꺼운 무당층은 제3지대의 자산이자 자양분이다.

정치인은 타고난 후각을 갖고 있다. 정치 환경과 유권자의 기류 변화에 민감하다. 너도나도 신당 창당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금태섭-류호정, 양향자는 이미 신당의 깃발을 올렸다. 정의당은 연합신당(혁신 재창당)을 추진하고 있다. 호남 기반의 신당, TK를 텃밭으로 한 신당창당설도 흘러나온다. 조국·추미애·송영길 신당설도 연기가 피어나고 있다. 제3지대론이란 기치를 내건 정당이 10개가 넘을 수도 있다. 급기야 암중모색하던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도 지난 13일 제3지대론에 합류했다. 신당 창당을 공식화했다. 민주당과 결별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을 뒤엎는 행보다. 그가 독자 행보를 선언한 뒤 제3지대 신당의 전도에 관한 논쟁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제3당 자산인 무당층 늘고 있어

이들이 신당의 깃발은 든 이유는 다양하다. ‘새로운 정치’, ‘국민에게 희망’, ‘정당 민주주의’ 등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주목받는 신당 세력이 공유하는 문제의식은 하나다. 양극 정치 극복과 정치의 안정화가 그것이다. 우리 정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양극화다. 보수와 진보 진영 사이에 타협이 없다. 이를 절충하고 중재할 중간지대도 없다. 그 선거를 통해 구축한 제3지대 신당을 통해 양극 대립의 악순환 끊겠다는 게 바로 그들의 목표다.

사실 그렇다. 더 이상 거대 정당의 극단적 대치와 갈등의 확대재생산 구조를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윤석열 정권은 곧 3년 차에 들어선다. 지난 2년 동안 여야 관계는 한마디로 ‘사법 정의’와 ‘검찰 독재’의 투쟁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의 중심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있다. 윤 대통령은 범법 혐의를 받는 이 대표를 정치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다. 처벌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작용은 반작용을 부른다. 처단하려는 세력과 지키려는 세력을 적대적 대치를 이어갔다. 정치적 갈등은 나날이 고조됐다. 이 대표는 명분도 없는 단식투쟁까지 나서야 했다. 그 과정에서 여야 간의 정치 갈등은 증폭됐다. 증오로 바뀌었다. 그럴수록 두 진영의 강경파가 득세했다. 강경파는 그들에게 무조건 지지를 보내는 팬덤을 통해 그들의 입지를 더욱 강화했다. 이 대표도 큰 이득을 봤다. ‘민주당은 이재명 사당’이라는 비난을 받을 만큼 이 대표의 장악력은 커졌다. 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정권의 무능, 인사 전횡, 소통 부재, 정책 실패, 민생 망각에 대한 비난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 대표가 그 방패가 되었기 때문이다. 서로를 적대시하지만 실제로는 이익을 나누는 공생관계라는 얘기다. 그 중간에는 어떤 타협과 절충이 끼어들 공간이 없었다. 그런 사이 양당의 패권 다툼은 전방위적, 전면적으로 확대됐다. 그들의 싸움에서 민생은 사라졌다. 국민도 없다.

만일 영향력 있는 제3당이 있었다면, 거대 양당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다면,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면……. 정치 환경이 달라졌을까. 장담할 수는 없다. 그래도 적대적 공생관계는 유지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기득권의 벽도 허물어졌을 것이다. 정치적 다양성도 대폭 확대됐을 것이다. 정치가 갈등을 조장하는 한국 정치 후진성도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제3지대론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이유다.

거대 양당의 치열한 전투의 피해자는 국민이다. 국민도 그것을 안다. 그것은 수치로 보여준다. 무당층이 거대 양당의 정당 지지도에 육박한다. 30% 안팎의 지지받고 있다. 진영 논리가 지금처럼 치열하게 대치할 때는 없었다. 그만큼 양당 정치의 폐해가 크다는 얘기다. 정치에 대한 환멸이 무당층 성격도 바꾸고 있다. ‘참여형 무당층’에서 ‘비참여 무당층’으로 변화하고 있다. 거대 양당에 실망하면서 투표에 참여하던 형태에서 정치 혐오 세력으로 남거나 새로운 대안에 관심을 보이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는 새로운 대안 정치, 제3지대 신당의 존재를 요구한다. 신당의 주역들도 덩달아 흥분하고 있다. 금태섭 전 의원(제3의 세력)은 내년 총선의 목표로 30석을 제시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욕심대로라면 제1당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비전과 인물이 신당 성공의 열쇠

과연 그들의 기대대로 될까. 이런 정치 환경의 변화는 제3지대 정당의 성공을 담보하지 못한다.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충분조건에는 미치지 못한다. 거대 양당을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는 신당이 성공할 될 수 없다. ‘기성 정치에 실망한 무당층 유권자=신당 지지’라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적 바람을 지지 기반으로 바꿀 수 있는 인물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우선 인물 연대가 관심거리다. 이준석 전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의 ‘빅텐트론’이 제기되고 있다. 잠룡의 대열에 있는 두 명의 전 대표는 상호 연대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서로를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할 문제의식과 충정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물과 불(국민의힘과 민주당)의 관계였던 두 세력이 손을 잡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른다. ‘반윤과 반명’이라는 하나의 이유가 연대의 대의명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낙연 대표가 민주당을 탈당한 뒤 국민의힘 입당 의사를 밝힌 이상민 의원을 만남으로써 민주당의 우호 세력을 운신을 좁혔다.

지난 16일, 출판기념회에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신당 창당을 공언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를 향해 "10리도 못 가 발병 날 그 길은 가지 말라"고 호소했다. 이날 전남 해남군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권노갑 민주당 상임고문(김대중재단 이사장)과 김영록 전남지사, 김대중 전남교육감, 명현관 해남군수, 신우철 완도군수, 김희수 진도군수 등 5천여명이 참석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 강기정 광주시장,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등은 영상을 통해 축하를 전했다.
지난 16일, 출판기념회에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신당 창당을 공언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를 향해 "10리도 못 가 발병 날 그 길은 가지 말라"고 호소했다. 이날 전남 해남군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권노갑 민주당 상임고문(김대중재단 이사장)과 김영록 전남지사, 김대중 전남교육감, 명현관 해남군수, 신우철 완도군수, 김희수 진도군수 등 5천여명이 참석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 강기정 광주시장,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등은 영상을 통해 축하를 전했다.

이런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두 이 전 대표가 ‘빅텐트’를 위해서, 우리 사회의 어젠다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에 맞는 해결책을 모아가는 힘과 능력을 보여준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 시간이 촉박하다. 그나마 금태섭 전 의원이 ‘남녀 병역 평등’과 ‘남성 육아 휴직 전면화’를 정책 등을 제시함으로 빅텐트의 공간을 열었다. 인물이 아니라 문제 중심의 새로운 세력으로 연대하는 모티브를 만든 것이다.

이보다도 더 큰 장벽이 존재한다. 종국적으로 선거제도를 넘어야 한다. 1등만 살아남는 현재 소선거구제에서 조직과 자금이 부족한 제3당의 생존 자체가 쉽지 않다. 당 안팎에서 창당을 지원할 ‘인사’, 그리고 이들이 응집돼 활동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 또한 역부족이다.

무엇보다 제3지대의 공간을 넓혀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 연동제 비례대표제도 물 건너갈 조짐이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신선함과 능력을 겸비한 인물 충원뿐이다. 결국 인물 개혁이 최대 관건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친명계 인사는 이낙연 전 대표를 ‘초전박살 내야 한다’라고 달려들고 있다.

결론적으로 의미 있는 규모의 제3정당이 창당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전혀 난망한 기대도 아니다. 제3지대 신당 깃발을 든 대한민국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어젠더를 어떻게 설정하느냐, 또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인재를 얼마나 발굴하느냐에 따라 신당의 바람의 강도와 풍향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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