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인레스 스틸 조각을 물감삼아 캔버스에 올려 빛 머물게

내년1월 13일까지 G컨템포러리 중견작가 집중기획시리즈

[서울=뉴스프리존]편완식 미술전문기자= “어둑한 작업실의 한 구석에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광선이 사물을 비추는 순간, 17세기 화가 렘브란트는 그윽한 존재감에 몸부림쳤을 것이다. 기원전 15000전 알타미라나 라스코의 동굴에 비친 희미한 광선으로부터, 빛이 너무 좋아서 이젤을 들고 저 찬란한 태양빛 속으로 뛰어나갔던 모네, 이글거리는 대지며 밤하늘의 별들, 해바라기와 들판의 향나무, 자신의 얼굴조차 불꽃으로 일렁이게 했던 고흐를 지나 현재에 이르는 미술은 빛의 역사가 아니었는가? 나의 작품은 빛이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빛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빛 그 자체가 재료이자 기법이며 표현이다. 빛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빛이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의 빛이다. 그들의 문화도, 그들이 이루어나가는 역사도 또 그들이 영위하는 삶도 빛인 것이다. 빛은 사물에 앞서는 것이다.”

불꽃같은 환상적인 빛의 물결을 만들어 내는 권용래 작가의 ‘백만개의 불꽃_A Million Flame’전이 내년 1월 23일까지 G컨템포러리에서 열린다. 캔버스 위에 스테인레스 스틸을 섬세하게 다듬어 만든 미러 유닛을 부착하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작가다. 빛에 반사되어 빛과 그림자의 끝없는 변화와 변주를 일으킨다. 금속의 차가움과 환영의 따뜻함이 교차하고 어우러져 영롱한 빛의 불꽃을 펼쳐낸다.

“나에게 있어 작품이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말처럼 어둠을 만드는 일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적당히 그늘을 만들고 고즈넉한 음예의 무늬를 드리워서 그 위에 불꽃의 일루전을 연출하는 것이다. 빛의 물리적인 아름다움이 그 신비로운 속살을 드러낼 때 그사이에 내가 있다.”

그의 작업과정은 우선 스테인레스 스틸 판재를 미러 가공하여 거울 효과 유닛들을 만든다. 거기에 햄머링을 하면 빛이 산란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유닛들은 작가에겐 하나의 안료이자 물감덩어리다. 수 천 개의 유닛들이 하나하나 캔버스 위에 부착되는 순간 차가운 쇠의 성질은 사라지고 뜨겁고 황홀한 일루젼이 된다.

“ 타들어가는 석양이 그렇듯, 물질에서 이미지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래서 나의 작품은 본질적으로 회화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유닛이 하나하나 캔버스에 부착되는 순간, 오랜 시간 잘 갈아진 먹물을 흠뻑 적신 붓으로 화선지 위에 일획을 그어 내리는 희열을 맛본다. 화선지 위의 먹이 발묵하듯 일획의 유닛들은 그어진다. 발묵한다. 그 농염함 속에 빛을, 빛을 담아낸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촛불의 미학’이 떠올려지는 지점이다. 촛불의 불꽃은 응시하고 있으면 우리를 몽상의 세계로 이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죽어있는 사물’은 우리의 촛불같은 상상력에 의해 ‘살아있는 사물’이 되어 우리를 보다 나은 영혼의 세계로 인도한다. 권용래 작가의 작품은 촛불같은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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