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일까지 갤러리 마리...김근중 김선두 김천일 신하순 이용순 참여
-“세계미술의 또 다른 자양분 확신...글로벌한 아트스테이지 발판 기대”

[서울=뉴스프리존]편완식 미술전문기자= 삶의 건덕지들을 덜어내면 보이는 것이 지금,여기,일상이다. 허깨비 같은 거대한 가치와 목표라는 장신구들의 거치장스러움에서 벗어나면 비로서 보이는 것이 사소함의 행복이다. 걷어내야 심플해지고 명확해진다. 현대미술에서 Simple & Clear가 중요한 요소로 대두되는 것도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흥미롭게도 우리의 전통미감에서 중시됐던 수수하고 담백(덤덤)함과도 맥을 같이한다.

내년 1월 26일까지 갤러리마리에서 열리는 ‘수수덤덤’전은 이를 곱씹어 볼 수 있는 자리다.

김근중 'Natural Being'
김근중 'Natural Being'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김근중 김선두 김천일 신하순 이용순 작가들은 수수덤덤의 미학을 꾸준히 일궈오면서 주목받고 있는 작가들이다. 한국화나 한국도자의 배경을 가진 작가들이지만 지구적 당대성(當代性, 동시대성)에 주목하여 긴 시간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 해를 준비하는 연말연시 우리 삶의 소소한 행복들을 일깨워주는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오래도록 명품으로 불리우는 브랜드에도 ‘절제된 고습스러움(Low Key Luxury)’이라는 심플&클리어의 정신이 흐르고 있다. 왕실과 귀족중심의 사회에서는 평민과 차별화를 위해 거치장스러운 장신구가 시용됐다면, 민중이라는 대중시대를 맞이하면서는 심플한 고급스러움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잡아끄는 심플&클리어의 매력은 조선 백자달항아리에서도 볼 수 있다. 둥그스름한 형태에 장식 마저 없는 것이 현대인의 감성을 흔들고 있다. 꾸밈없는 자연스런 담백한 미가 복잡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푸근한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김선두 '낯별 뜸부기'
김선두 '낯별 뜸부기'

원하는 색상과 질감이 나올때까지 색을 바르고 벗겨내기를 수없이 반복하여 완성해 나가는 김근중 작가는 전통미술과 현대미술, 서양화와 동양화와 같은 개념의 경계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회화 그 자체를 통해 자연의 근본을 성찰하는 예술가로서의 목적지에 어떻게 당도할 것인가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작업노트에서 “화면 위에 펼쳐지는 것들,덧붙이고 벗겨내고, 칠하고 지우고 또 칠하고, 있음과 없음으로 무수하게 반복되는 수많은 흔적은 바로 우리 존재들의 생성과 소멸의 서사시임과 동시에 진면목이며 바로 나란 존재의 실존이 펼쳐지는 장(場)”이러고 말했다.

김천일 '성자동'
김천일 '성자동'

김선두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장지 기법으로 그린 ‘장지화’라고 말한다. 색을 얹히는 게 아니라 우려냄으로서 수묵과 채색 어느 것에도 치우침이 없다. 우리 그림의 장지기법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미디어로 이미지를 구성하는 김선두 작가에게 삶에서 얻은 깨달음은 작업의 중요한 바탕이 된다. 그의 그림은 일상의 구체적 사실, 구체적 삶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에 ‘어떻게’그릴지가 아닌 ‘무엇을’그릴지를 고민한다. 느낌으로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일상 또는 사물의 속성에 자신만의 깨달음과 삶의 본질을 투영하여 느린 선의 미학으로 독특한 시각과 형식을 담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김천일 작가는 전통을 기반으로 산수화의 현대적 재해석에 몰두해 왔다. 그리고자 하는 장소를 수차례 발로 밟으며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면밀히 관찰하고 탐구한 후 이를 작업에 반영한다. 우리 자연의 장엄하고 생동감 있는 모습과 그 아래 안긴 마을의 풍경을 정밀한 점묘와 섬세한 터치로 담아내며 지역의 미적 자산을 찾아 아름답게 재탄생시키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한 장소를 그린 여러 연작을 통해 남도에 대한 작가의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느낄 수 있다.

신하순 '남이섬 '
신하순 '남이섬 '

신하순 작가는 흔히 떠올리게 되는 일반적인 동양화가 아닌, 자신의 생활 경험을 그리는 데에 천착해 왔다. 평범한 일상과 주변의 풍경, 특별했던 순간의 기억 등을 일기처럼 기록하듯 그려낸다. 서투른 듯 능수능란한 묘법(描法)과 제한된 색조의 담채로 표현된 그의 의도된 아마추어리즘은 생활을 그리는 형식으로 더할 나위가 없다. 동양화가 고유한 매력을 유지하면서도 일상에 바쳐진 삶의 소중함과 일상을 바라보는 성찰의 진지함을 갖춘 신하순의 그림은 화가로서의 삶 그 자체다.

이용순 작가의 달항아리는 백설기 같은 흙과 소나무재가 섞인 유약, 반복을 통한 손끝의 감각이 한데 어우러져 탄생한다. 조선 백자의 맛을 구현해 낸 재야의 고수로 정평이 난 이용순 작가의 달항아리는 고 박서보 화백으로부터 “형식이나 테크닉을 넘어서 몰입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도예가라기 보다 도공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작가는 욕심을 걷어내려고 노력한다. 그저 몸에 체득된 것이 자연스럽게 발현될 때 좋은 작품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용순 백자 달항아리
이용순 백자 달항아리

이번 전시가 한국미술 향방의 바로미터가 됐으면 한다는 정마리 갤러리마리 대표는 “그동안 한국화의 뿌리를 가진 작가들의 컨템포러리한 작업에 주목해 전시를 꾸준히 해 왔다”며 “5인 작가들의 수수덤덤한 미학이 세계미술의 또 다른 자양분이 되리라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뉴욕타임스는 최근 한국의 아트신에 주목한 기사를 내보냈다. 홍콩이나 싱가폴에 비해 풍부한 작가군이 글로벌한 아트스테이지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정마리 대표는 “예술 현장에서는 물론이고 여러 분야에 걸쳐 우리의 많은 것들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과거 세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관점과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도록 요청받고 있다.”며 “이번 전시에 참여한 다섯 명의 작가는 기존의 ‘한국화’, ‘한국의 미’, ‘한국적인 것’이라는 명제에서 벗어나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효한 가치와 본질을 모색하고 ,고정된 하나의 틀에 안주하거나 얽매이지 않는 창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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