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날씨가 이상하다. 불과 10여 일 전에 ‘따뜻한 겨울’을 경험했다. 남부지방의 최고 기온이 20℃. 언론에 부산과 제주도 젊은이가 반바지 차림으로 외출한 모습을 소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겨울이 실종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겨울이 한순간에 돌아왔다. 최강 한파가 몰려왔다. 10여 일 전에 비해 최고·최저 기온이 무려 30℃나 떨어졌다. 지난 21일 서울 기온은 –19℃. 2년 만에 서울에 한파경보가 내려졌다. 서울만이 아니다. 충청과 전라 지역에는 폭설경보, 강원에는 강풍경보가 발령됐다. 털 달린 두툼한 점퍼와 내복으로 무장해도 ‘동장군’에 대적할 방법이 없을 지경이다.

요즘 아무리 추워도 옛날만큼 추위를 체감하지는 않는다. 옛날에는 난방 설비도 변변치 못했다. 지금과 같은 롱패딩이나 히트웨어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그럼 우리 조상은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냈을까.

▶ 목화 솜옷이 전국적으로 보급된 게 20세기라고?  

조선시대의 한복 모습
조선시대의 한복 모습

솜으로 두툼한 내의와 외투를 만들어 입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솜옷조차 전국에 보급된 시기는 조선 후기다. 문익점 선생이 목화씨를 붓 통에 숨겨 들여온 게 고려 시대가 아니냐. 어떻게 솜옷 보편화가 조선 후기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목화는 따뜻한 삼남 지방에서만 자란다. 《조선왕조실록》(성종 10년<1479년> 11월 19일 기록)에 의하면, 평안도 백성 중 누구도 솜옷을 입은 이가 없다. 그렇다면 추위에 취약한 북부 지역의 백성까지 솜옷을 편하게 입을 수 있던 시기는 언제일까. 전남 목포 고하도에서 목화의 재량 생산에 성공하면서부터다. 재배 기술 혁신 이후 전국적으로 목화 보급이 시작됐다. 

그 이전에는 형편이 괜찮은 사대부가 아니면 솜옷을 입을 수 없었다. 가난한 민중에게 솜옷은 언감생심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동사(凍死)와 관련한 기록이 꽤 많이 나온다. <중종실록>에는 “도성에서만 얼어 죽은 사람이 무려 100여 명이나 되었다”라는 장계가 소개되어 있다. <영조실록>에도 “궁궐을 수비 하는 군인이 16명이나 얼어 죽었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고작 옷을 껴입는 게 전부였다. 남자는 가죽옷, 즉 ‘갖옷’을 입고 ‘중치막’을 그 위에 입었다. 여성은 무명 저고리, 치마, 이것은 기본이다. 솜이 들어간 버선인 솜버선, 모자인 ‘아얌’이라는 게 있는데 방한용 의복이라고 할 수 있다. 방한용 모자는 매우 다양하다. 아얌보다 조금 더 길게 해서 귀까지 덮는 것을 ‘조바위’, 조바위보다 조금 더 길어서 어깨까지 내려오는 ‘남바위’라는 게 있다. 

한국이 최초 발명했다는 현대전의 필수 방어 무기
한국이 최초 발명했다는 현대전의 필수 방어 무기

▶ 대원군, 솜옷으로 방탄복을 만들다

조선시대 때는 누비 솜옷은 매우 비쌌다. 그럼 그 가격은 얼마나 됐을까. 18세기의 학자인 황윤석이 쓴 《이재난고》에 고급 솜옷은 4냥, 보통은 2냥 정도라고 구체적인 가격이 적시되어 있다. 당시 쌀 1섬이 5량 정도였다. 이를 토대로 환산하면, 2냥은 오늘날 10만 원인 셈이다. 당시 머슴의 한 달 수입이 7냥 정도였다. 당시엔 식구도 많았다. 이런 수입으로 온 가족이 솜옷을 입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두툼하고 따뜻한 솜으로 만든 옷을 ‘핫옷’이라고 했다. ‘핫바지’도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가장 드라마틱한 솜옷은 흥선대원군이 만든 군복이다. 일본군의 조총에 대항하기 위해 두꺼운 솜옷으로 방탄 군복을 만들었다. 이불처럼 두꺼운 누비 솜옷으로 만든 일종의 방탄복이었다. 조총 총알이 이 솜옷을 뚫지 못했다. 하지만 장점 못지않게 단점도 컸다. 몸을 자유스럽게 움직일 수 없다. 기동력이 현저히 저하됐다. 더 큰 문제는 조총을 맞고 옷에 불이 붙는 경우다. 붙은 불을 끄기 위해 물에 빠져야 했다. 물먹은 솜을 이기지 못해 익사하는 병사가 비일비재하게 생겼다.

솜옷 이외의 방한복은 없었을까. 가장 대표적인 게 ‘갖옷’이다. 호랑이, 표범, 여우, 오소리, 이리, 담비, 수달 등 동물 가죽으로 만든 모피 옷이다. 요즘에도 이탈리아제 프렌체띠끄 모피나 캐나다 패딩은 신분 과시용이 되기도 한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가죽의 희귀성과 품질은 자연스럽게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수단이 됐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있다. ‘니탕개의 난’이 그것입니다. 니탕개는 조선에 귀화한 여진족 중 한 사람이다. 그가 1583년 함경도 일대에서 여진족을 규합해서 난을 일으켰다. 그 사건의 원인은 문인인 우성진이 쓴 《계갑일록》에 나온다. 최몽진이라는 조선 관리가 첩에게 갖옷 두 벌을 선물했다.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니탕개와 여진족에게 큰 원망을 쌌다. 갖옷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기에 충분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야사에 보면 연산군도 장녹수에게 선물하기 위해 담비 가죽옷 제작을 명하기도 했다.

▶ 종이옷 본 일이 있나요?

그 가격이 얼마나 되기에 민난의 계기가 됐을까. ‘니탕개의 난’은 갖옷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귀화한 여진족에 대한 차별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든 모피의 가격은 어마어마했다. <명종실록>에는 16세기 명종 시절 호랑이 가죽 한 장 가격은 쌀 30섬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60냥인 셈이다. 표범과 담비 가죽은 호피보다 더 비쌌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하다. 담비로 갖옷 한 벌을 만들기 위해서는 보통 60여 마리의 담비 가죽이 필요했다. 효종이 나선정벌에 나선 것도 모피와 무관하지 않다. 효종은 병자호란의 패배와 삼전도의 굴욕을 목격했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북벌정책을 폈다. 그런 그가 모피를 얻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는 게 명분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를 알기 위해선 동북아의 정세를 알아야 한다. 효종 당시 청나라와 제정러시아 사이에 국경 분쟁이 잦았다. 그것은 명분일 뿐이다. 실제로는 모피 쟁탈전이었다. 모피가 제정러시아 국정의 버팀목이었다. 재정의 11%를 모피로 충당했다. 당시 러시아군은 비버와 수달 등을 잡기 위해서 계속 남하했다. 쑹화강 유역까지 출몰했다. 청나라는 병자호란으로 신하로 삼은 조선에 지원군을 요청했다. 효종은 청나라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군사를 보내 정벌에 나서 러시아군을 물리쳤다. 청나라를 복수하기는커녕 청나라를 도와주는 꼴이 됐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지만, 종이로 만든 방한복도 있다. 조선시대에 종이 공예가 대단히 발달했다. 대야, 요강, 식기 등도 종이로 만들었다. 오히려 금속으로 만든 것보다 가볍고 사기처럼 깨지지도 않아 인기가 많았다. 이런 곳에 사용하고 남은 종이 즉 ‘낙복지(落幅紙)’을 옷을 만드는 데 이용했다. 낙복지 속에 솜을 넣고 꿰매 옷을 만든 것이다. 솜이 뭉치지 않았고 보온성도 높았다. 정묘호란 때(1627년 음력 9월)의 일이다. 인조는 청나라에 대항하는 서북 지방 군사의 월동준비를 위해 솜옷 500벌과 함께 낙복지 400장을 보낸다. 종이옷을 만들어 병사의 추위를 구제하라는 명령과 함께. 이유원의 《임하필기>》에 나오는 얘기다.

일본 전통 겨울 코트
일본 전통 겨울 코트

▶ 한텐은 일본 전통 겨울 코트

그렇다면 일본과 중국은 우리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옷을 만드는 형식에는 큰 차이가 없다. 솜옷 같은 경우도 “우리 옷이 중국보다 못하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중국도 우리와 비슷하게 솜옷을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보다 추운 지방의 중국 지역에서는 고대부터 갓옷을 입었다. 

일본에는 한텐(袢纏)이라는 게 있다. 한텐은 일본의 전통 겨울 코트다. 에도 시대 때부터 서민들도 입기 시작했다. 힛피리라고도 한다. 한텐은 기본적으로 기모노처럼 넓은 소매에 편리하게 주머니가 달려 있고 끈으로 묶어서 입는다. 우리의 핫옷처럼 솜으로 충전제를 넣는다. 현재도 상점에서 점원이 옷깃이나 등에 가게 이름이나 상호 등의 표식이 들어간 한텐을 유니폼처럼 입고 일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보로’라는 것도 있다. 일본말은 본래 ‘다 헤져 연거푸 기운’을 의미하는 형용사이다. 에도 시대에는 한 번 옷이 지어지면 옷의 주인은 그것을 평생에 걸쳐 입었고, 때때로 자식에게 물려주기도 했다. 이것이 약간의 면을 덧기워 보온성을 높인 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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