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 주제와 안건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들쭉날쭉' 널뛰기에 국민은 혼란스럽고 피로감만 쌓인다. 여론조사 업체의 정체성과 조사 수법에 따라 격차가 심하고 신뢰도가 무너진다. 요건을 갖추지 못한 부실한 업체와 수준 낮고 정치성 편향적인 여론조사가 왜곡된 여론으로 혼란을 부추기고 불신을 조장한 주범이다.

이번 4월 총선을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선거 여론조사 업체 3곳 중 1곳 이상이 등록 취소된다. 중앙선관위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는 7일 기준으로 전국의 총 88개 등록업체 중 30곳(34.1%)에 대해 등록 취소를 예고했다. 이번 총선에서 공표용 선거 여론조사를 할 수 있는 업체가 58곳으로 줄어든다. 선거철만 되면 '떴다방식 여론조사'가 기승을 부려 공정선거를 해치고 국민적 피로감만 키워온 게 사실이다. 이에 선관위는 작년 7월 등록요건을 강화했고, 12월 31일로 유예기간이 끝남에 따라 등록 취소는 각 시·도별 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관련 절차를 거쳐 확정된다. 

신뢰성이 떨어진 여론조사기관을 퇴출시키고 근절함으로써 건강한 정치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의미다. 여론조사 홍수 속 일부 여론조사 업체들이 기준에 못 미치는 작위적인 여론조사를 내놓아 공정선거를 해치고 악영향을 미친다는 비판에 따라 규제를 강화한 결과다. 신뢰성에 의심이 가는 부실업체가 민심을 왜곡하는 사태를 막는 조치로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폐업이 예고된 지역별 업체는 67업체가 있는 서울에서 20곳이 취소되고, 충남(2곳)과 전남(1곳)은 모두 등록이 취소된다. 이번 조치에 따라 부산·광주·대전·강원·경북에는 등록 여론조사 업체가 1곳씩, 대구·경기·경남은 2곳씩만 남게 된다. 앞으로는 등록요건을 강화해서 해당 인력 확충 등 전문성을 면밀히 점검하기로 했다. 여론조사 활동 능력이 부족한 업체를 솎아내고, 전문성과 인적자원이 담보된 업체만 자격을 줘 여론조사를 수행케 한다는 것이다.

여태까지는 간판만 내건 여론조사 업체가 적지 않았다. 실제로 이번에 등록이 취소되는 30개 업체 중 17개 업체는 2017년 5월 선거 여론조사 기관 등록제 시행 이후 공표용 선거 여론조사 실적이 전혀 없었다. 2021년부터 선거 여론조사 실적이 전혀 없는 업체도 20곳이나 달했다. 여론조사 업체를 표방하면서 본 업무는 제쳐두고 다른 영업활동에 이를 활용한 의혹이 짙어 보인다.  

여심위가 지난해 7월 선거 여론조사 회사의 등록 유지 제시 요건은, 분석 전문 인력 3명 이상, 상근직원 5명 이상, 연간 매출액 1억 원 이상으로 상향했다. 기존 분석 전문 인력 1명, 상근직원 3명, 연간 매출액 5000만 원 등 조건을 강화한 것이다. 그동안 등록 기준이 느슨하다 보니 조사 분석 전문성이 떨어지는 업체들이 난립해 신뢰하기 힘든 여론조사 결과가 유권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친 사례가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선거 여론조사기관 등록제가 시행된 것은 2017년이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100개에 달하는 여론조사기관이 우후죽순 격으로 난립해 신뢰할 수 없는 조사 결과를 쏟아냈다. 이렇게 '떴다방' 식으로 등장한 전문성 없는 기관들 때문에 여론조사 무용론과 불신론이 쏟아졌다. 결국 선관위는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확성과 신뢰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신고제였던 조사기관 운영을 등록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부실 여론조사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20대 대선에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실제 선거 결과와 큰 차이를 보이면서 부정선거 의혹까지 불러왔다.

지난해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치와 선거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신뢰한다는 응답은 40%로 다른 분야에 대한 여론조사 신뢰도에 비해 20%포인트나 낮았다. 특정 정파에 편파적으로 대변인 역할을 하는 유튜버가 버젓이 선거 여론조사 회사를 운영하는 경우도 발각되기도 했다. 일부 후보자에게 유리한 질문 문항을 만들어 결과를 유도하거나 표본을 추출하는 등 왜곡적인 폐단이 발생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에는 여론조사업체 2곳이 형사 고발됐고, 3곳이 1000만 원 이상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연령대가 확인 안 된 휴대전화 번호 1500여 개를 활용하거나, 응답자 나이를 부정확하게 입력하는 등의 잘못이 있었다. 

선거 여론조사에서 객관성, 신뢰성은 생명이다. 여심위의 권한과 역할을 강화해서 설문 구성 및 표본 추출이 공정한지 면밀히 점검하고, 질문 방식과 설문지 작성에 문제가 없는지, 조사·분석 전문 인력을 제대로 확보했는지, 지속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특히 정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특정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설문을 구성하고, 표본을 편향되게 구성하는 경우는 없는지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 조사 방법도 전화 면접을 대폭 늘리고, 자동응답(ARS) 조사에서 흔히 나타나는, 응답률이 낮은 여론조사의 공표를 금지하는 조치도 요구된다. 향후 민심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도록 편향적인 표본을 추출한 사실이 밝혀지면 영구 퇴출시켜야 한다. 

최충웅 칼럼니스트
최충웅 칼럼니스트

여론조사는 현대 민주정치의 근간을 이룬다. 국정지지도는 물론 사회적 갈등 사안의 찬반을 가려내고 국론을 모으는 주요 수단으로 여론조사가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왜곡된 여론조사로 공정을 저버리고 특정 목적에 매몰된 여론조사는 극단 지지층을 양산하며, 폭력적 과잉정치를 초래한 원인으로 지탄을 받아왔다. 여론측정 여건조차 갖추지 못한 업체가 선거철 특수를 노리고 우후죽순 생겨나는 악습을 이번 기회에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여론조사가 민의를 왜곡하는 ‘여론조작의 주범’이 되지 않도록 선관위와 정치권 모두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번 4월 총선에서는 무엇보다 선관위의 사명과 책임이 막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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