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은의 NFZ수첩

▶ 윤 대통령은 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했을까  

4·10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한 차례 ‘내적 투쟁’을 벌였다. 마치 동물의 왕국을 보는 듯했다. 동물 세계에서 우두머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쟁장(爭長)은 있게 마련이다.

쟁장은 내부 투쟁이며 본능이 만든 싸움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두 마리의 우두머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권좌를 지키기 위한 응전과 빼앗기 위한 도전은 있게 마련이다. 도전자를 물리치면 우두머리의 위상은 강화된다. 하지만 늘 그런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침팬지 예를 들어보자. 패배한 우두머리 침팬지는 땅바닥에 뒹군다. 앓는 소리를 내거나 울부짖기도 한다. 군림 당시 거느린 부하에게 지원과 위로를 요청하는 행동이다.

사진: 지난 23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천읍 불이 난 서천특화시장에 윤석열 대통령이 방문하고 있다. 이날 시장에는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김태흠 충남도지사,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도 함께 방문했다
사진: 지난 23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천읍 불이 난 서천특화시장에 윤석열 대통령이 방문하고 있다. 이날 시장에는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김태흠 충남도지사,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도 함께 방문했다

도전자를 압도할 만큼 세가 결집하면 다시 도전자와 재결투를 벌인다. 물론 그의 편이 되어줄 부하 침팬지가 없다면 우두머리 자리를 잃는다.

국가원수인 대통령과 ‘여당 당수’를 침팬지에 비유해서 미안하다. 여권의 내적 투쟁을 설명하기 위한 불가피한 측면이 있음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권력 서열 1, 2위 사이의 ‘1차 대전’은 쉽게 결말이 났다. 한동훈 위원장이 판정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패배한 윤 대통령은 큰 내상을 입었다. 무모하게 당무에 개입해서 멀쩡한 당 대표(비대위원장)을 찍어내려다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침팬지 사회라면 우두머리가 배척된 상황이다. 윤 대통령의 권위가 크게 흔들리게 됐다.

이준석·김기현 전 대표를 쫓아낼 때 눈짓 한 번만 해도 움직이던 ‘윤핵관’조차 꿈적 않았다. ‘한 위원장이 당 주인 행세를 한다’라는 분노, ‘아끼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라는 배신감, ‘사람을 너무 믿은 게 잘못’이라는 넋두리도 소용이 없었다. 한 위원장을 쫓아내는 데 실패했다. 일단은 시기가 좋지 않았다.

총선을 앞두고 윤핵관의 제1 관심사는 공천과 선거다. 민심에 역행하는 권력에 휘둘리지 않은 것이다. 윤 대통령은 급했다. 오죽했으면 권력 1인자가 방문일정을 바꿔가면서 서천 화재 현장으로 달려갔겠는가. 1차대전은 급하게 봉합됐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체면은 꾸길 대로 꾸겨졌다. 당무에 개입하는 당 대표를 마음대로 교체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영원한 부하’로 치부되던 한 위원장까지 비토함으로써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 윤 대통령은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에서 뭘 배웠나

‘1차 대전’의 승패는 민심 파악 능력이 갈랐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패인은 수직적 당정관계에 따른 민심 이반이었다. 그런데 ‘윤·한 결전’에서 대통령실은 당무에 개입했다. 1차 결투의 명분이 한 위원장의 ‘사천’이었다.

명품 가방 수수에 관해 ‘김건희 여사가 사과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비대위원을 방치했다고 한 위원장을 찍어내려 했다. ‘당 대표’를 대통령의 부하로 취급하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수직적 당정관계가 재확인된 셈이다. 총선의 결과는 윤 대통령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총선에 관심조차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라는 힐난을 받아야 했다. 민심에 너무 둔감하다는 지적이다.

반면 한 위원장은 수직적 당정관계를 명확히 거부했다. 애매모호한 ‘여의도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를 공개했다. 당무 개입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면서 “당은 당의 일, 정부는 정부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수직적 당·청관계 개선의 여지가 보이자 국민은 한 위원의 직무 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갤럽이 2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한 위원장의 직무 능력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50%(잘하고 있다, 52%)를 넘었다. ‘윤석열 아바타’라는 꼬리표 떼기에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셈이다.

‘윤석열’을 보지 말고 ‘한동훈’을 보고 투표해달라고 호소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진 것이다. 밑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국정 지지율을 보이는 윤석열 심판론에서 벗어날 여지를 만든 셈이다. 또 ‘이재명’을 보지 말고 ‘윤석열’을 보라는 민주당의 전락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게 됐다. 국민 마음을 얻는 정치인은 능력을 인정받는다.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 명분도 취약했다. 구중궁궐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겠다는 게 그 일념이었다. 치부는 다름 아닌 김건희 여사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디올백 스캔들’이다. 대통령실은 디올백 사건의 본질을 최재형 목사의 몰래카메라(불법 촬영) 촬영이라고 주장했다. 사과할 이유가 없다는 항변이었다. 또 선물 받은 디올백을 대통령기록관에 넘겼다고 밝혔다. 수사에 응할 이유도 없다는 얘기다. 위법수집증거 배제 원칙인 ‘독수독과론’을 원용한 해명이었다. 이것도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대통령실의 실책이었다. 

▶ 디올백 대전 역시 승산이 없다

정치는 사실보다 중시하는 게 있다. 민심이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것이다. 민심은 불법 촬영, 함정수사 그리고 ‘명품 가방 선물’ 중에서 어느 게 제일 잘못된 것인지 경중을 따지지 않는다. 대통령실이 뭐가 숨길 게 있길래 김건희 여사를 지키기 위해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게 민심이다. 몰래카메라와 함정취재라고 해서 뇌물을 수수한 사실이 없어지느냐는 게 국민의 의문이다.

사진: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이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관련 동영상을 틀어놓은 채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이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관련 동영상을 틀어놓은 채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

비판적 여론이 비등하자 김경률 국민의힘 비대위원이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장면이 담긴 영상은 국민 감성 폭발시킬 것”이라면서 “국민에 납작 엎드려서 사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건희 명품 가방에 대한 국민 판단은 끝났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한 위원장도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김 비대위원을 지원 사격했다.

윤 대통령 부부의 입장 천명과 사과 요구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한 위원장은 국민 기준에 맞는 (명품 가방) 처리는 한 위원장 자신이 아니라 정권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대통령실이 김건희 여사를 끝내 지키려 한다면 총선에서 나쁜 영향을 미치고 그것은 총선 패배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다음은 윤 대통령에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디올백 리스크는 윤·한 갈등을 재발화와 폭발시킬 위험성이 큰 소재다. ‘윤·한 대충돌’의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딜레마도 여기에 있다. 윤 대통령이 이와 관련한 태도 표명을 고려하고 있다. 그것이 KBS와 대담이 될지 아니면 신년 기자회견이 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또 사과가 될지, 해명될지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한 차례의 ‘말씀’으로 ‘디올백 리스크’에서 탈출하고 더 나아가 ‘김건희 특검법’의 국회 재의 명분도 제거하길 기대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일단 ‘용산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어떻든 윤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민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 한 위원장의 선택도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정답은 나와 있다. 윤 대통령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직후 “국민은 옳다”고 말했다. 국민이 옳다면 국민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국민은 네 편, 내 편 가리지 말고 공정한 수사를 하라고 요구한다. 그렇지 않다면 디올백 리스크는 이자가 붙어서 부메랑이 되어 윤 대통령을 괴롭힐 것이다. 

여기서 윤·한 대회전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제3차 대격돌이 기다리고 있다. ‘공천 전쟁’이다. 윤 대통령은 당정 장악을 위해 장·차관과 대통령 비서를 지낸 ‘윤석열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공천받고 국회에 들어오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실이 한 위원장 사퇴를 종용하는 과정이 진 ‘말빚’이 부담이 되고 있다. 김관섭 비서실장은 ‘사천’이라는 이유로 김경율 비대위원의 사퇴를 요구했다. 김 비대위원은 서울 마포을 출마할 예정이다. 마포을은 험지 중 험지다. 김 비대위원의 경쟁자는 민주당의 2인자인 정청래 최고위원이다. 마포을은 ‘윤석열 사단’이 원하는 ‘공천=당선’ 지역이 아니다. 

▶ 국민의 요구는 정쟁 반대, 민생 집중

상당수 많은 ‘대통령 사람’은 영남권에 출마 채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상대적으로 현역의원을 압도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윤 대통령이 옥쇄를 쥔 한 위원장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형편이다. 한 위원장은 “공천을 직접 챙기겠다”라고 공언했다. 그렇다고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사이의 막후 논의 여지가 넓어 보이지 않는다.

공천관리위는 현역의원 하위 10%는 컷오프, 하위 30%는 20% 감점, 3선 이상 중진에게는 추가로 15% 감점 규정을 정했다. ‘윤석열 사람’들은 감점 규정의 상향 조정을 요구했다. 한 위원장은 이를 거절했다. 거절 그 자체만으로 현역의원의 편에 선 것이다. 당연히 현역의원은 공천권 행사를 할 수 없는 윤 대통령보다는 한 위원장의 눈치를 보게 될 것이다. 또 한 위원장 처지에서는 상대적 경쟁력이 높은 현역의원에게 무차별 칼질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게 된다면 한 위원장의 당내 장악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미 한 위원장을 향해 “한 위원장이 당 주인 행세를 하려 한다”라고 비판한 일이 있다. 결국 당 장악력을 둘러싼 제3의 결전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경은 칼럼니스트(전, 경향신문 편집위)
김경은 칼럼니스트(전, 경향신문 편집위)

윤 대통령은 공천 문제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하라. 국민은 정쟁을 제일 싫어한다. 특히 당 내부의 총질에 질렸다. 내전을 벌이는 데 허비하는 에너지를 민생에 힘쓰라는 게 국민의 요구다. 공천은 정해진 규칙과 규정대로 하면 된다. 그게 개혁공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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