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佛家)의 용어에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는 말이 있습니다.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합니다. 이 ‘무주상보시’는 《금강경(金剛經)》에 의해서 천명 된 것으로서, 원래의 뜻은 법(法)에 머무르지 않는 보시로 표현되었습니다.

이 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 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무주상보시’ 일까요? 무엇을 베풀고도 마음에 베풀었다는 마음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멀리 떨어져 살던 아들을 보기 위해 어머니가 상경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모자는 밤새 정 다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서로가 바쁜 삶을 사는 터라 이튿날 헤어져야 했지요. 아들은 힘들게 사는 어머니를 생각해 월세를 내려고 찾아 둔 20만 원을 어머니 지갑에 몰래 넣어 드렸습니다.​

배웅하고 돌아와 지갑에서 뜻하지 않은 돈을 발견하고 놀라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흐뭇해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책상에 펴 놓았던 책갈피에서 20만 원과 어머니의 편지를 발견했지요. ​“요즘 힘들지? 방 값 내는 데라도 보태 거라.” 경제학 적으로 보자면 아들과 어머니 모두 이득도 손해도 없는 교환을 한 셈입니다.

그러나, 독일의 경제학자 ‘에리히 케스트너’는 이런 경제 방정식과 다른 ‘윤리 방정식’을 보여줍니다. 즉 ​아들은 어머니를 위해 20만 원을 썼고, 어머니가 준 20만 원이 생겼으니, 40만 원의 이득이 있었습니다.

어머니 역시 아들을 위해 20만 원을 썼고 아들이 준 20만 원이 생겼으니, 40만 원의 이득이 생겼습니다. 그러니, 모두 80만 원의 순 이득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대가를 바라지 않으면서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할 때 경제 방정식으로 나타나지 않는 순 이득이 발생합니다.

​​ 그리고 윤리 방정식이 표시하는 ​숫자에 다가 ‘기쁨’이라는​ 막대한 ‘이득’을 덤으로 줍니다. ​참 아름다운 계산법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고, ​모든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이 가장 사랑 받는 사람이며, ​자기의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설 연휴 때 방송에 전파를 탄 김장하 선생님의 일화입니다.

선생님은 열아홉에 한약 사 자격을 얻어 1963년 고향 사천에서 한약 방을 개업했고, 10년 뒤 진주로 이전해 ‘남성당 한약방’을 50년 간 운영했습니다. 한약 방은 많은 사람이 찾아와 마이크로 순서를 호명할 정도였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점심시간에는 빵을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전국 한약 방 가운데 세금을 가장 많이 내기도 했지요.

선생님은 20대 젊은 시절부터 가난한 학생들에게 남몰래 장학금을 주기 시작하여 1,000명을 웃도는 학생들이 혜택을 보았고, 40대에 100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설립한 사학 ‘명신고등학교’를 나라에 헌납하고, 30억 원이 넘는 재산을 ‘국립경상대학교’에 기부했으며, 진주의 사회, 문화, 역사, 예술, 여성, 노동, 인권 단체들을 지원했습니다.

선생님이 명신고등학교 이사장 퇴임 식 때 하신 말씀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일지 모르겠습니다 마는, 저는 가난 때문에 하고 싶었던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한약업에 어린 나이부터 종사하게 되었으며, 작으나마 이 직업에서 다소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제가 본교를 설립하고자 하는 욕심을 감히 내게 되었던 것은, 오직 두 가지 이유, 즉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익이었기에, 그것을 자신을 위해 써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요건을 충족시키는 가장 좋은 일이, 곧 장학 사업이 되었던 것이고, 또 학교의 설립이었습니다.”

김장하 선생님을 취재한 <줬으면 그만이지> 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똥은 쌓아두면 구린 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 “나는 그런 것 못 느꼈어. 돈에 대한 개념도 그렇게 애착이 없었고, 그리고 재물은 내 돈이다 라는 생각이 안 들었어, 언젠가 사회로 다시 돌아갈 돈이며, 잠시 내가 맡고 있을 뿐이다. 그 생각 뿐이야.”

​ 《맹자(孟子)》의 <이루장구(離婁章句)> 상 편 19장에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풀이하자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고개를 내려 사람들한테도 부끄러울 게 없는 삶을 뜻한다.”

어떻습니까? 바로 이것이 ‘베풀되 마음에 주 하는 바 없이 베푼다.’ 라는 <무주상보시>의 참 삶이고, 이 세상 최고의 공덕 아닐까요!

단기 4357년, 불기 2568년, 서기 2024년, 원기 109년 2월 23일

덕산 김덕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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