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은 NFZ수첩

총선을 40여 일 남겨두고 있다. 공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공천 진행 속도는 민주당이 조금 빠르다. 꽤 많은 지역구에 ‘출전선수’를 지명했다. 하지만 공천과정은 순탄하지 않다. 금과옥조처럼 내세운 ‘시스템 공천’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막가파 공천’, ‘비선 공천’, ‘밀실 공천’, ‘친명 횡재·비명횡사 공천’, ‘자객공천’, ‘대장동 공천’……. 심지어 ‘찐명(진짜 이재명) 사천’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지금까지 어느 공천에서도 이처럼 조롱과 비아냥이 난무한 일은 없었다. 불공정 논란으로 얼룩진 내홍은 계파 갈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공천 탈락에 반발해서 탈당 선언하거나 탈당을 예고하는 현역 의원이 속속 나오고 있다. 또 어떤 의원은 억울함을 삼키면서 당내 투쟁을 천명했다. 

그중에서 두 사람의 엇갈리는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박용진 의원과 이수진 의원이다. 두 사람의 대칭되는 정치 노선과 행보가 비교되기 때문이다. 박용진 의원은 비명계의 대표주자다. 이수진 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던 친명계 의원이다. 박 의원은 경선에서 참여, 과하지욕(袴下之辱·바짓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을 견디겠다고 밝혔다. 초한지의 명장, 한신의 길을 택한 셈이다. 반면 이수진 의원은 “이재명 대표를 앞장서 지지한 것을 후회한다”라면서 즉각 탈당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박용진 의원이 탈당하고 이수진 의원이 승복하는 게 맞지 않을까.

사진: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2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통화하고 있다.민주당은 박 의원에게 의정활동 평가 하위 10% 포함을 통보했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2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통화하고 있다.민주당은 박 의원에게 의정활동 평가 하위 10% 포함을 통보했다

사실 중요한 건 잔류냐, 탈당이냐가 아니다. 박 의원은 시스템 공천, 이 의원은 밀실 공천의 ‘희생자’다. 박 의원은 ‘시스템 공천’으로 감점을 감수해야 한다. 이 의원은 컷오프됐다. 이 두 사건은 민주당 공천의 본질을 가리키고 있다.

특히 박 의원의 문제는 친명과 비명 싸움의 전선이다. 더 나아가 민주당의 사당화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더 나아가서 정적 제거라는 의심받는 중대한 사안이다. 박 의원은 대선 경선 때 이 대표와 경쟁했다. 이재명 체제 출범 이후에도 이 대표의 반대편에 서 왔다. 

어떻든 박 의원은 경선에서 30% 감점받는 현역 평가 하위 10%에 포함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시스템 공천 기준은 국민의 눈높이”라고 수없이 밝혔다. 그러면서 환골탈태를 역설했다. ‘떡잎 갈이’라는 공천 방향을 제시했다. 하지만 국민의 눈높이는 이 대표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박 의원의 의정 성과가 눈부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박 의원이 이끄는 새로운사회의원경제연구모임은 2023년 ‘국회 의정 대상’(대한민국 국회 의정 대상 심의위원회가 선발)을 받았다. 백봉신사상(동료의원, 보좌관, 국회 출입 기자의 평가)도 2022년, 2023년 잇따라 수상했다. 그가 추진한 입법 정책을 보면 그런 평가는 인색할 수도 있다. 그는 ‘유치원 3법’을 통과시킨 주역이다. 이 법은 사립 유치원의 투명성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만이 아니다. 소신파로도 유명하다. 그는 ‘삼성의 저격수’로도 이름을 날렸다. 삼성의 경영권 불법 승계 문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한 언론은 ‘재벌의 저격수가 사라질 위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그만이 아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당선자 41명 중 득표율 1위(64.45%)를 했다. 그만큼 경쟁력 있는 후보라는 얘기다. 

민주당 선출직 평가위원회(평가위)에서 현역 의원의 의정 활동 순위를 매겼다. 민주당은 평가위원 면면이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재판 중인 윤미향 의원과 최강욱 전 의원의 변호사 출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정도만 알려졌다. 박 의원의 사례를 들어 평가위에 비명계 인사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어떻든 박 의원은 평가위로부터 최하위 평점을 받았다. 하위 10%는 경선 점수에서 30%가 감산 된다. 사실상 컷오프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평점이라는 것은 ‘주관의 객관화’다. 결과가 일단 발표되고 나면 인정되는 게 상례다. 물론 흔치 않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있다. ‘주관의 객관화’ 과정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을 때 그렇다. 설명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면 오히려 그 부담은 평가위로 돌아간다. 당 지도부나 평가위는 그런 사정을 잘 알 것이다. 흥미로운 건 민주당이나 평가위가 설득 작업조차 방관하고 있다. 한 진보언론의 사설은 “박용진을 환골탈태시켜 정봉주로 만들려 한다”라고 비난했다.

어떻든 시간이 지나면서 최하위 평점 근거가 무엇인지 드러나고 있다. 당 대표가 임명·수여하는 당직과 포상이 없다는 게 그중 하나다. 해당 항목에서 박 의원은 0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가 임명하는 당직자, 그리고 포상하는 수상자에 비명계 인사가 얼마나 포함됐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게 있다. ‘하위 20%’에 포함된 31명 가운데 비명계가 28명이라는 사실이다. 

28명? 이 숫자의 근거도 나름 추정할 수 있다. 이재명 대표가 위원장으로 있는 인재위원회 간사인 김성환 의원의 ‘실언’이 단서다. 김 의원은 ‘하위 20%’에 비명계가 대거 포함된 것과 관련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숫자와 거의 일치한다. 물론 탈당한 조응천, 이원욱, 김종민 의원을 포함해서다.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은 누구인가. 이 대표가 감옥에 가야 민주당이 산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친명 의원으로서 이 대표를 감옥에 보내려고 한 사람이다. 그들에게 의원 다면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줄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이런저런 상황을 볼 때 이 대표와 거리가 곧 공천 기준이었던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친명과 비명은 애당초 통합과 화합은 고사하고 경쟁적 연대조차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핸디캡을 안은 비명계 의원이 경선과 본선에서 얼마나 살아올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미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이 될 것이라는 게 지배적 견해다. 

어떻든 아직 공천은 끝나지 않았다. 박 의원의 경선 통과 여부를 떠나, 이재명 사당화의 성공 여부를 떠나, 이 대표는 해야 할 일이 있다. 상위 10%는 누구인지 밝혀라. 그리고 이 대표 자신이 받은 성적표도 공개하라. 총선 승리보다 사법리스크 회피를 위한 공천이라는 오해를 풀 수 있다. 공천 갈등이 심할수록 공천과정은 투명해야 한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22일 국회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앞두고 맺힌 눈물을 닦고 있다.이날 공천관리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이 의원은 사실상 '컷오프'(공천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22일 국회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앞두고 맺힌 눈물을 닦고 있다.이날 공천관리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이 의원은 사실상 '컷오프'(공천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

이수진 의원의 얘기로 넘어가자. 이 의원은 말 그대로 ‘비명횡사(非明橫死)’가 아니라 비명횡사((非命橫死)했다. 밀실 공천에 희생됐다. 비명 학살이라는 비난을 피하려고 끼워 넣은 친명 인사가 된 셈이다. 이 의원은 그의 말대로 이 대표의 친위부대 역할을 했다. 친명 강경파 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 일원이었다. 처럼회는 이 대표를 위한 호위무사, 친위대, 홍위병, 예스맨을 자처해 왔다. 이 의원 역시 이재명 사법리스트 방탄을 최전선에 섰던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컷오프는 하나의 충격이었다.

어떻든 이 의원은 컷오프 통지를 받았다. 일명 ‘전략공천’이라는 명분 아래. 전략공천은 현역 의원의 불출마 지역구 혹은 절대적 열세 지역구 등에 당 지도부가 공천자를 결정하는 제도다. 민주당의 총선 프레임은 ‘윤석열 정권 심판’이다. 전략공천 지역에는 ‘이재명 지킴이’보다는 윤석열 정권 공격수에게 기회를 줄 것으로 예측됐다. 이 의원 역시 만만치 않은 공격력을 갖고 있다. 또 지난 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원내대표 출신인 나경원 전 위원을 물리치고 당선됐다. 

이 때문에 이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동작을이 전략공천 지역에 포함된 것은 다소 뜻밖이다. 컷오프를 통지받은 뒤 탈당 선언을 하면서 한 얘기가 마음에 걸린다. 그는 “이 대표에게 백현동 재판 패소를 염려해 2선 후퇴를 요구했다”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의원은 정체불명의 여론조사’ 내용도 공개했다. 이 의원은 “서울 동작을에서 당내 잠재적 후보군 중 가장 지지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도 ‘이재명 비선 조직’이 실시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체불명의 여론조사가 본인을 공천에서 배제했다”라고 주장했다. 현역 의원은 자신을 빼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을 넣어 여론조사를 했다는 얘기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정체불명’의 여론조사다. 여론조사 논란이 바로 불공정 공천 논란의 또 다른 핵심이다. 거기에는 비명 인사와 현역 의원을 배제한 여론조사를 한 업체가 공모 절차 없이 추가로 선정된 업체가 포함되어 있다. 그 업체는 '리서치디앤에이란다'. 여론조사기관을 포함하는 과정에서 친명 핵심인 김병기 공천관리위원회 간사가 관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특히 이 업체는 정당 여론조사기관으로 선정되는 데 필요한 일정 법적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10여 년 전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에 이 업체와 거래를 한 사실도 소환되었다. 이 때문에 비명 인사 배제와 전략공천을 위한 기획 여론조사를 담당했다는 의혹이 증폭됐다. 결국 민주당은 경선 여론조사에서 이 업체를 제외하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사천 논란의 후유증이 매듭지어질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공천과정에서 이 대표의 속내가 다 드러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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