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4·11총선이 3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 공천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공천은 총선의 출전선수를 선정하는 작업이다. 대진표가 거의 완성됐다는 얘기다. 필자(‘나’)가 민주당에서 낙천한 가상의 인물이 되어 여야의 공천을 결산해 봤다.

나는 민주당 공천에서 낙선한 초선의원이다. 역대 최악의 ‘막장 공천’이었던 21대 총선에서 우여곡절 끝에 공천받았다. 본선은 싱거웠다. 유권자가 민주당의 코로나 팬데믹 극복 정책을 지원했다. 바람을 타고 국회에 입성했다.

국회는 별천지였다. 세비가 1억5,000만 원이다. 정책과 입법 활동 지원금도 나온다. 일종의 수당이다. 이것도 중소기업 근로자의 연봉을 웃돈다. 9명의 비서진이 있다. 게다가 지지자가 보내주는 정치후원금도 짭짤하다. 철도 요금도 반값이다. 공항 VIP도 이용할 수 있다. 이 밖의 특권이 180여 가지나 된다. 결코 그 자리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다. 사실 갖은 비리 혐의를 받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방탄 국회에 목소리 한번 내지 못한 것도 국회의원 재선을 위한 것이다. 아니다. 맹목과 궤변, 막말로 이 대표를 변호했다. 이 대표의 변론자는 진영이 형성했다. 점점 진영 의식에 갇혔다. 빠져나올 수도 없었다. 이것이 나를 청맹과니로 만들었다. 한 치 앞도 못 볼 수 없었다. 바른말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탈당파인 박영순, 설훈, 홍영표 의원과 새로운미래 김종민 공동대표가 지난 7일 국회 소통관에서 민주연대 추진을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민주 탈당파, 민주연대 추진]
더불어민주당 탈당파인 박영순, 설훈, 홍영표 의원과 새로운미래 김종민 공동대표가 지난 7일 국회 소통관에서 민주연대 추진을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민주 탈당파, 민주연대 추진]

이 대표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민주당은 국민의 희망이 되겠다”라는 게 그거다. 일종의 ‘희망 고문’일 뿐이었다. 지지자가 아니라면 상처 주는 얘기를 너무 많이 했다. 당연히 당리당략을 앞세웠다. 더 나아가 명분 없는 단식까지 했다. 말의 덫에 걸렸다. 불체포 특권 포기선언을 번복했다. 준연동제 비례대표도 약속을 어겼다. 안 만들겠다던 위성정당도 만들었다. 낙선되고 난 뒤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박용진·홍영표 의원처럼 입바른 소리라도 했으면 후회는 없을 것 같다. 늦은 후회를 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민주당 공천 갈등은 비명계 현역 의원이 대거 컷오프 혹은 낙천되면서 폭발했다. 공천과정이 정적 제거 수단이 됐다. 낙천자는 연이어 탈당했다. 신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무엇인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지난 2022년 대선 때 민주당 캠프에서 일했다. ‘찐명’은 아니지만 ‘친명’으로 분류됐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 ‘친명’ 위에 ‘찐명’이 있었다. 경선에서 ‘찐명’에게 졌다. 비명계가 아니어서 가슴이 더 아프다. 비명계처럼 아프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7일 오전 경기 양평군 강상면 병산리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의혹 현장을 방문, 예정지에 대한 브리핑을 듣고 있다. [공동취재]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7일 오전 경기 양평군 강상면 병산리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의혹 현장을 방문, 예정지에 대한 브리핑을 듣고 있다. [공동취재]

컷오프되거나 경선에서 탈락한 비명계 의원은 ‘비명(悲鳴)’을 질렀다. ‘친명횡재 비명횡사’라고 반발했다. 김영주·홍영표·설훈·이수진·박영순·이상헌 의원 등은 탈당했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경선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탈당은 할 수 있지만 총선 출마는 할 수 없다. 국회의원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탈당은 무의미한 것이다. 

김영주 국회부의장이 부러웠다. 국민의힘은 ‘외연 확장’이란 명분 아래 김 부의장을 영입에 나섰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둥 온갖 찬사를 보냈다. 설마 문재인 정권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냈고 야당 몫으로 국회부의장을 맡은 그가 국민의힘으로 간다고 생각을 못 했다. 김 부의장과 국민의힘의 노동정책과 이념은 완전히 배치된다. 대표적인 예가 ‘중대재해처벌법’이다. 김 부의장은 지난 임시국회에서 법 처리 유예를 주장하는 국민의힘을 향해 ‘반노동 세력’이라고 힐난했다. 장관 재직 시절에 철저하게 노동계를 대변했다. 그런 그가 “국민의힘도 진보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 역할을 하겠다”라면서 말을 갈아탔다. 그는 자신의 지역구인 영등포을에서 국민의힘의 단독 공천을 받았다.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징검다리를 건넌 것이다. 그렇다. 국회의원이 되기만 한다면 철학, 이념, 신념, 정책, 정당 그런 게 대수일까 싶다. 나에게 기회가 오지 않았을 뿐이다. 

낙천의 고통은 가시지 않는다. ‘낙천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는 듯하다. 허무함과 좌절감이 밀려온다. 의욕도 없다. 오직 배신감과 분노가 일뿐이다. ‘친명 일색’ 공천해놓고 “국민과 당원의 뜻”이라니. ‘친명’을 자처했던 나도 수긍할 수 없다. 더 화가 나는 게 있다. 내가 봐도 유일한 공천 기준은 이재명 대표와 거리다. 그런데 진명인 내가 언론 브리핑용 공천 기준인 ‘시스템 공천’의 대표적 사례가 됐다는 게 용서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사당화를 목적으로 한 시스템 공천을 공천 혁명이라고 말했다. 그럼 난 ‘공천 혁명의 희생자’인가. 내가 ‘이재명 사당화’의 길라잡이가 됐다니 억울하기 짝이 없다. 

많은 사람은 탈당한 이수진 의원을 욕한다. 난 다르다. 한편으로 동병상련을 느낀다. 다른 한편으로 이 의원과 비교되는 게 불편하다. 이 의원은 나와 비교할 수 없는 ‘찐명’이었다. 강성 친명이었다. 처럼회 일원이었다. 당 내부에서도 ‘친명을 간판으로 내건 이익집단’이라는 비판받던 처럼회였다. 물론 처럼회 7인은 이 대표의 방탄 국회의 선봉장이었다. 낙천되자 그의 태도는 돌변했다. 이 대표의 아킬레스건을 건들었다. 백운동 재판을 운운했다. 급기야 ‘무기징역’ 발언까지 나왔다.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이 의원 역시 나처럼 간절히 국회의원을 원했던 것이다. 

이 의원은 찐명과 진명의 감별법에 걸렸다. 이 대표와 그의 측근은 ‘무분별한 친명 공천’이라는 비판이 두려워했다. 구색이 필요했다. 이 의원은 국민의 기억에 남는 실수를 여러 차례 했다. 특히 상임위에서 ‘취권 질의’는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됐다. 나는 그 수준의 실수를 한 적이 없다. 그의 낙천이 부당하다는 사람은 없었다. ‘친명’ 끼워넣기 정도였다. 나는 이 의원처럼 ‘낙천한 진명’으로 대접을 받는 게 싫다.

분노를 삼키고 공천과정을 복귀했다. 김준혁 한신대 교수가 경기 수원정 공천받았다. 원내대표를 지낸 박광온 의원과 경선에서 3표 차이로 승부가 가렸단다. 그의 승리요인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는 《왜 이재명을 두려워 하는가》, 《이재명에게 보내는 정조의 편지》란 저서를 냈다.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정조대왕=이재명’이다. 내가 경선에서 패배한 이유를 알겠다. 이 대표를 향한 충성 임팩트가 약했다. 아니면 이 대표의 부인인 김혜경 여사와 작은 인연이라도 있어야 했다. 권향엽 예비후보의 얘기다. 그는 지난 대선 때 선대위 배우자실 부실장을 지냈다. 권 예비후보는 순천-광양-곡성-구례을 지역에 단수 공천됐다. 서동용 의원은 공천 배제됐다. 여성전략특구로 지정하면서 생긴 일이다. 254개 지역구 중 유일한 여성전략특구였다. 비판 여론에 두 예비후보의 경선으로 결정이 번복됐다. 이 대표의 재판과 이런저런 인연이 있는 박균택·조상호·임윤태 변호사가 출마와 클로즈업된다. 박 변호사만 경선을 통과했다. 어떻든 김 교수같이 세상에 드러나게 충성 맹세했든지 아니면 이 대표 부부와 사적 인연이 있다면 ‘개딸’들도 나에게 지지를 보냈을 것이다. 그럼 당연히 본선에서 국민의힘 후보를 겪고 나의 인생을 바꾼 국회의원에 도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위로되는 구석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의정부갑의 예비후보, 박지혜 변호사 사례가 그것이다. 그는 윤석열 정부가 망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모신’ 영입1호 인사다. 당은 그를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아들인 문석균 예비후보와 경선을 붙였다. ‘정치 세습’, ‘아빠 찬스’를 허용한 셈이다. 문 전 의장은 이곳에서 6선을 했다. 문 후보는 지난 총선에도 출마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인 셈이다. 그래도 박 변호사는 ‘1호’라는 상징으로 경선에서 승리를 거뒀다.

상처가 깊은 탓일까. 후회가 밀려온다. 괜한 상상까지 하게 된다. 만일 내가 국민의힘 후보였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굳이 남의 당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잔류하게 된 마당에 민주당의 총선승리에 도움이 돼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국민의힘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현역 탈락률이 현저히 낮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까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이 물러나기 전까지 국민의힘에도 ‘공천 칼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됐다. 하태경 의원의 험지 출마와 장재원 의원의 불출마 결단은 ‘변화의 사인’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누구도 기득권을 내놓거나 희생을 감수하려 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추락’이 없었다면 국민의힘도 민주당 못지않은 공천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국민은 수직적 당·청 관계를 청산할 수 있는 공천을 원했다. 국민의힘이 ‘용산의 출장소’에서 벗어나길 바랐다. ‘용핵관의 처단’을 바랐다. 그렇지 못했다. 대표적인 ‘윤핵관’인 권성동·이철규·윤한홍·박성민 의원은 공천에서 살아났다. 불출마와 험지 출마를 자진 선택한 ‘장재원과 하태경만 바보 됐다’라는 얘기가 나올 지경이다. 어떻든 국민의힘 공천은 조용했다. 변화와 쇄신을 느낄 수 없다. 기득권을 인정해준 결과다. ‘감동 없는 공천’, ‘조용한 공천’, ‘늙은 공천’으로 비판받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전체적인 공천 전략은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나았다. 여당 공천 특징 중 하나로 꼽히는 ‘현역 의원 재배치’가 그것이다. 중진 의원인 서병수·김태호·조해진·김영선 의원 등의 지역구를 옮겨 낙점했다. 무리한 축출로 반발을 사는 대신 ‘험지 출마’로 ‘물갈이’ 효과를 얻은 셈이다. 특히 ‘자객공천’ 효과까지 누림으로써 주목도를 높이는 일거양득 효과를 얻게 됐다. 이것도 일종의 ‘몸조심 전략’이라고 살 수 있다. 

하지만 물갈이 폭이 크지 않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공천=당선’으로 인식되는 TK지역에서 그렇다. 역대 선거에서 TK 국회의원 교체율은 40%를 상회했다. 현재까지 공천을 마친 19개 지역구 중 13곳이 현역 공천이다. 면면으로 봐도 그렇다. 친윤 색채가 짙은 의원 대부분이 살아남았다. 그 근거로 지난해 3·8전당대회를 들 수 있다. 용산의 지지받던 김기현 전 대표와 맞선 나경원 전 의원 대표 경선을 했다. 기류를 눈치챈 초선의원 48명이 불출마를 요구하는 연판장을 돌렸다. 그들이 대부분 살아났다는 것이다. 연판장은 곧 윤 대통령에게 바치는 충성 맹세다. 물갈이는 현역 교체를 뜻한다. 현역 교체는 쇄신과 혁신의 다른 말이다. 다선 의원은 기득권으로 인식된다. 

국회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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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갈등 관리 측면에서도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이 대표보다 비교우위에 있다. 국민의힘에도 낙천자의 거친 항의가 있었다. 후보 부적격 판정을 받아 공천에서 배제된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가 그다. 한 위원장은 김 전 원내대표에 대해 “단식으로 드루킹 특검을 관철함으로써 민주주의가 훼손된 것을 막았다”라며 위무했다. 김 전 원내대표는 그 소리를 듣는 즉시 승복했다. 또 장성민 전 비서관이 총선에서 150~160석을 얻을 것이라는 얘기가 전해졌다. 한 위원장은 “우리는 아직 쫓아가는 상황”이라며 입단속을 시켰다. ‘고개를 드는 행위’ 즉 낙관론을 경계한 것이다.

더 지켜봐야 하는 인물도 있다. 부산 수영구 총선 공천받은 장예찬 전 최고위원의 발언이다. 그는 옛날 ‘난교를 즐겨도 직무에 전문성과 책임성을 보이면 존경받을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는 취지의 글을 SNS에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도 장 후보 같은 사람이 없으면 더 어려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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