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감사 결과 발표
56명 경찰청에 수사 요청

[서울=뉴스프리존]방현옥 기자= 수능 경향에 맞춘 양질의 문항을 공급받으려는 사교육업체와 금전적 이익을 원하는 일부 교원 간의 문항거래가 사실로 밝혀졌다.

지난해 6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학원 앞에 내걸린 광고 문구
지난해 6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학원 앞에 내걸린 광고 문구

감사원은 지난해 9월부터 연말까지 실시한 ‘교원 등의 사교육시장 참여 관련 복무실태 점검 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교원과 학원 관계자 등 56명에 대해 경찰청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11일 밝혔다.

감사원은 “교원과 사교육업체 간 문항거래는 금품 제공을 매개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며 “공교육의 신뢰성 회복과 교원의 복무기강 확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주요 위반 사항은 수능 출제과정에서 ▲집필 중인 교육방송(EBS) 교재 문항 지문의 수능 출제 ▲수능 문항과 사설 모의고사 문제의 중복 검증 누락 ▲중복 지문 출제에 관한 이의신청의 부당처리 등이다.

대학교수 A는 평가원의 의뢰로 2023년 1월 출간될 EBS 수능연계교재를 2022년 8월 감수하며 해당 교재에 수록된 지문을 확인했음에도 2023년도 수능 영어 23번 문제로 출제해 2022년 수능 직후 발생한 '수능 영어 23번 사태'의 장본인이 됐다.

이는 고교 교사 B가 출제한 ‘Too Much Information(이하 TMI)' 지문을 EBS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또 유명 학원강사 C는 교사 B와 친분이 있는 고교 교사 D로부터 동일하게 TMI 지문을 제공받아 9월말 모의고사에 내기도 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문제도 드러났다. 수능 문항 확정 전 사설 모의고사 문항과의 중복 확인을 위해 사설 모의고사를 구입해 철저히 검증해야 하나 2020년부터 2021년까지 구매·검증한 강사 C의 모의고사를 2022년에만 구매하지 않아 검증에서 누락했다.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EBS 교재 및 사설 모의고사 동일 지문 출제 과정 (이미지= 감사원 제공)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EBS 교재 및 사설 모의고사 동일 지문 출제 과정 (이미지= 감사원 제공)

더 큰 문제점은 문제가 되는 수능 영어 23번이 모의고사와 중복됐다는 이의신청이 전체 이의신청 349건 중 215건(61.6%)에 달했으나 평가원 영어팀 담당자 4명이 공모해 해당 안건을 이의심사위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감사원은 "사설학원에서 기출제한 지문은 수능에 출제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평가원 영어팀이 문제 유형이 다르다고 강조하고 개인 수강생만 접근 가능한 모의고사라 인지하지 못했다는 거짓 설명까지 덧붙여 제외 사안으로 종결 처리했다"며 "실무위원들을 기망한 것"이라 강조했다.

또 대학수학능력시험관리규정 등에 과거 3년간 수험서 집필(모의고사 문항 판매포함) 실적이 있는 경우 출제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는데도 교사 E는 사설 모의고사 문항 공급에 참여하고 있으면서 이를 속이고 평가원 파견교사로 근무한 사실이 밝혀졌다.

출판업체를 운영하는 배우자와 공모해 교재 집필진이나 수능 출제경력이 있는 교원에게 문항을 구입해 대형 사교육업체에 공급하며 금전적 이익을 수취한 고교 교사 F의 사례가 나왔다.

교사 F는 문항을 구매하지 않고도 문항 제작비 명목으로 허위 영업 비용을 계상하고 감사원의 검증 요구에 자신이 직접 문항을 만들어 제출하는 등 감사를 방해한 혐의를 함께 받는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모습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모습

이와 함께 EBS 영어 수능연계교재 출간 전에 변형 문항을 제작해 학원 강사에 공급하고 금품을 수수하거나 사교육업체에 제작·공급한 문항을 학교 시험에 출제하는 조건으로 금품을 수수한 사례와 교감 승진 후 문항제작팀을 조직해 수능대비 문항을 공급하고 금품을 수수한 사례도 적발됐다.

또한 현직 입학사정관이 사교육업체에 취업해 자기소개서 작성 등을 강의하고 금품을 수수한 사례가 드러났다. 

입학사정관은 퇴직 후에도 3년간은 입시업체에 취직할 수 없으나 현직 사정관이 불법으로 취업해 업무를 통해 알게 된 대학의 내부정보를 이용해 입시컨설팅을 제공하며 금품을 수수했다.

감사원은 “56명에 대해서는 청탁금지법을 위반과 업무방해, 배임수증재 등의 혐의로 지난 2월부터 3차례에 걸쳐 수사를 요청했다”며 “문항 거래를 통해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확인되는 다수 교원에 대해서도 감사위원회의의 의결을 거쳐 엄중히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이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감사위원회의의 의결을 거쳐 제도 개선 등을 조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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