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총선을 25일 앞두고 있다. 선거일을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여야의 전선은 압축되고 있다. ‘심판론’으로 단순화되고 있다. 중간평가의 성격을 띠는 일반적 선거 프레임인 ‘정권심판론’과 여당의 ‘정권안정론’이다. 정권심판론과 정권안정론은 유권자에게 집권, 여당의 국정 능력과 성과에 대한 평가를 요구하는 전략이다. 

윤석열 정부의 중간 점수는 ‘낙제점’이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국정지지도가 40%를 밑돌았다. 하지만 야당도 무능한 국정 운영에 대해 공세 일변도로 가는 데 부담을 느끼는 듯했다. 거대 야당이 끊임없이 발목을 잡은 탓이라는 역공을 받았다. 그리고 집권 여당은 ‘집행할 능력’을 앞세워 야당의 공세를 피해왔다. 거기다가 윤 대통령은 민생토론회라는 명목으로 전국 순회하면서 선심성 공약을 남발해왔다. 그린벨트를 풀었다. 철로의 지하화를 약속했다. 경기 김포시의 서울 편입을 공언했다. 해당 지역구 유권자에게 귀가 솔깃한 약속이다. 여·야간의 치열한 공방만 있을 뿐 승패가 뚜렷이 갈리지 않았다. 

프레임 싸움에서 민심이 어디로 기우냐에 따라 총선 승패는 갈린다. 이번 총선은 여야의 정치적 운명이 걸린 승부다. 국민의힘이 진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잔여임기 3년 내내 레임덕에 시달릴 것이다. 레임덕은 대통령 ‘임기 말 증후군’이다. 임기 말에 벌어지기 일쑤인 리더십 공백 현상을 말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패배의 쓴맛은 윤 대통령에 못지않다. 정권 재창출의 기반을 잃게 된다. 거기다가 선거 결과가 그의 사법리스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결코 져서는 안 되는 ‘전쟁’이다.

선거는 흔히 구도·인물·이슈 대결이라고 한다. 제일 중요한 건 바람의 원천인 구도(프레임)다. 구도가 간결할수록 바람도 세다. 표심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야권의 주도했던 정권심판론의 약발이 약해졌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등장으로 선거 구도가 여·야 대표(한동훈 대 이재명)대결로 전환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 현장에서 비켜나갔다. 거기다가 민주당 공천 파동 영향을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민주당 지지층이 이탈했다. 정권 교체론은 힘을 잃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돌발변수가 발생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신당 창당과 조국혁신당의 돌풍이 그것이다. ‘매운 민주당’을 자처한 조국혁신당과 조국 대표는 윤 대통령을 저격했다. ‘검찰 독재정권 조기 종식’을 선거 캐치프레이즈로 내 걸었다. 조국혁신당은 1호 법안 공약으로 ‘한동훈 특검법’을 제시했다. 이 특별법은 윤 대통령은 물론 김건희 여사도 겨냥하고 있다. 사실상 윤 대통령을 선거전에 불러낸 것이다. 그러자 급격히 프레임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정권심판론에서 ‘윤석열 심판론’으로 바뀌고 있다. 윤석열 심판론은 이재명 심판론의 이면이다. ‘윤석열 심판론’에는 ‘이재명 심판론’이 따라온다. 그래서 ‘윤석열 대 이재명 대결’ 프레임이 형성되는 것이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의 잦은 언론 노출도 프레임 전환에 한몫했다. 윤 대통령은 민생토론회를 이어왔다. 올해 들어 20차례 투어를 마쳤다. 당연히 윤 대통령의 선거 개입 논란이 일었다.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두 번째는 의대 정원 증원 문제다. ‘의료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추진되고 있는 사안이다. 의료파업이 길어지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가 격화되고 있다. 국민의 피로도는 높아졌다. 당연히 윤 대통령과 정부의 강경 일변도의 대응에 비난이 제기됐다. 용산의 부담이다. 세 번째는 이종섭 호주대사의 임명이다. 그는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받는 전 국방부 장관이다. 출국금지가 해제됐다. 그는 임명장 원본도 받지 않은 채 호주로 떠났다. 용산이 이 대사에게 해외 도피처를 마련해 준 것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5일 전남 순천시 웃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인사하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5일 전남 순천시 웃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인사하고 있다.

여기에 용산발 악재가 또 터졌다.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이 결코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말을 뱉었다. 황 수석은 “MBC는 잘 들으라”라면서 기자들 앞에서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했다. 오홍근 회칼 테러 사건이다. 1988년 당시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로 칼럼을 쓴 오홍근 기자가 군 정보사령부 상관들의 명령을 받은 현역군인들에 의해 회칼로 습격받은 사건이다. 사실상 언론에 대한 협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준석 개혁혁신당 대표는 “정권 입맛에 안 맞으면 회칼로 찌르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실의 언론관인가”라고 따졌다. 이런 ‘악재’가 이어지면서 윤 대통령에 대한 심판론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그만이 아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힘이 빠진 것도 윤석열 심판론의 부상한 이유 중 하나다. 한 위원장은 취임 직후 수직적 당·청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총선 구도는 ‘한동훈 대 이재명의 대결’로 꾸려지는 듯했다. 하지만 공천 윤곽이 드러나면서 한 위원장의 위상이 흔들렸다. ‘친윤불패’ 공천이었기 때문이다. ‘윤핵관’ 중 불출마 선언한 장재원 의원만 공천받지 못했다. 용핵관(용산 출신 비서관·행정관) 상당수는 텃밭에 단독 공천됐다. 공천과정에서 주도권은 윤 대통령에게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한 위원장은 사진 모델”이라는 푸념이 나왔다. 

혹자는 ‘정권심판론 대 정권안정론’과 ‘윤석열 대 이재명의 대결’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옳은 지적이다. 하지만 ‘이름을 부른다’라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김춘수 시인의 ‘꽃’을 상기해보라. ‘이름’을 부를 때 비로소 ‘표’가 된다. 불행스럽게도 불리는 사람은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다. 국민의힘의 적극적 지지자에게 ‘이재명’은 ‘범죄 혐의자’다. 권력형 토착 비리, 정경유착 등 무려 9가지 혐의를 받는 ‘피고인’이다. 구속수사를 면하기 위해 방탄 정당과 방탄 국회를 만든 장본인일 뿐이다. 그럼 이 대표의 펜덤에게 ‘윤석열’은 어떤 사람일까. ‘변절자’ 혹은 ‘검찰개혁을 훼방 놓은 기득권자’, ‘공정과 원칙을 무시한 검찰 카르텔’이다. 그들에게 ‘이재명’은 무도한 윤석열 정권의 최대 피해자이다. 어떻든 두 진영은 정서적 양극화되어 있다. 서로는 배척의 대상이다. 결코 공존하거나 용납할 수 없는 존재라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여야의 처방은 갈라치기다. 갈라치기를 통해 확실하게 집토끼 우리에 가두는 전략인 셈이다. 갈라치기는 선거철에 극성을 부린다. 진영 간 총력전에 가까운 총선인데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 사례를 이 대표가 확실히 보여줬다. 이 대표가 지난 8일 인천 계양의 한 식당에서 지지를 호소했다. 식사 중인 시민과 인사를 나눴다. 한 청년에게 ‘설마 2찍은 아니겠지?’라며 웃었다. 민주당 지지자임을 확인하는 반어적 물음이었다. ‘2찍’은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에 대한 비하 발언이다. 일종의 멸칭이다. 이 대표는 이에 대해 “부적절했다”라고 사과했다. 그런데 사과 6일 만에 또다시 비슷한 실언을 했다. 지난 14일 세종 전통시장에서 “살만하다 싶으면 가서 2번 찍든지 아니면 집에서 쉬시라”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우리 아니면 적’이라는 이 대표의 본심이 드러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위원장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한 위원장은 이 대표의 상처 주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죽하면 ‘틱톡 화법’이라는 비난받을까. 질문에 기계적으로 이 대표를 비난하는 답변이 나온다는 힐난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한 위원장은 이 대표를 ‘해로운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진보당과 비례대표연대를 겨냥, “진보당에게 민주당의 숙주를 내줬다”라면서 한 말이다. 민주당 공천과 관련해서는 ‘대장동 공천’ ‘구정물 공천’ ‘패륜공천’이라고 품평했다. 연일 장외에서 벌이는 설전의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국정 비전 제시는 상대적으로 적다. 여야 대표가 똑같다. 적대와 증오, 조롱이 담겨 있다. 묘사할 수 있는 가장 자극적인 표현이다. 마치 누가 더 심한 상처 주기 경쟁하는 듯하다. 정치 도의도 망각하고 있다. 몰상식의 극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언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은 다르다. 당 대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그것이 되풀이된다면 그 본심을 의심받는다. 만일 정당의 집단정서를 반영했다면 더 큰 문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15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당감시장을 찾아 서은숙 부산진갑 후보와 이성문 연제구 후보 등 부산지역 후보들과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15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당감시장을 찾아 서은숙 부산진갑 후보와 이성문 연제구 후보 등 부산지역 후보들과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결국 선거의 승부는 산토끼에 달렸다. 중도층로부터 어떻게, 얼마나 지지받느냐에 달려 있다. 여기에서 ‘윤석열 대 이재명 대결’이 ‘정권심판론과 정권안정론’ 구도와 대응 차이를 보인다. 정권심판론은 한마디로 말하면 윤석열 정부의 성과에 대한 평가다. 프레임이 전환되면서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일까. 윤석열 정권의 도덕성이 심판대에 오르고 있다. 즉 ‘윤석열 검사’라면 이종섭 대사 출국이 공정하냐, 김건희 여사 명품 수수 의혹에 대해 대통령 가족이 아니면 어떻게 했겠냐고 묻는 식이다. 거기에 분노를 창당 명분으로 삼고 있기 조국혁신당도 편승하고 있다. 정당심판론과는 거리가 멀다. 

선거 프레임이 바뀐 뒤 이 대표에게 어떤 질문이 던져지고 있을까. 도덕이 아니라 능력(리더십)의 문제가 부상되고 있다. 윤석열 정권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을 따지고 이재명에 대해서는 잘했느냐 못했느냐를 따지는 양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천을 둘러싼 논란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두 개의 지역구 공천이 대비되고 있다. 서울 강서을과 서대문갑이 그곳이다. 공천 기준의 들쑥날쑥해서 생긴 일이다. 민주당은 정봉주의 전 의원의 막말과 거짓 사과 논란으로 공천 취소된 서울 강북을을 전략공천지역으로 지정했다. 30% 감점받고도 차점을 받은 박용진 의원의 후보 승계를 불허했다. 대신 친명 인사의 단수공천 가능성이 제기됐다가 전략공천지역으로 바뀌었다. 다만 자유경선(지역 관계없이 경선 참여 가능)을 하기로 했다. 이는 서대문갑의 절차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서대문갑의 최종 후보로 선출된 김동아 변호사는 예비후보 공개 오디션에서 4등을 했다. 성치훈 전 청와대 행정관이 과거 안희정 충남지사 성폭행 2차 가해 논란으로 예비후보 자격을 박탈당했다. 차점자인 김 변호사가 승계됐다. 그리고 본선 경선에서 승리했다. 문제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경선 규칙을 두 차례나 변경했다. 특정인을 위한 절차를 바꿨다는 비난이 일었다. 특히 김동아 변호사는 친명, 그것도 ‘대장동 변호사’이기에 제기된 의혹이다. 수 없이 논란이 된 ‘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의 또 하나의 증거였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이념교체, 세대교체를 이룬 공천혁명’이라고 자찬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 선거는 합법적으로 갈등을 표출하는 제도다. 노출된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경쟁의 공간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인적 자산과 자금, 그리고 조직을 총동원한다. 또 외적 갈등이 격화될수록 내적 통합은 강화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왜 22대 총선에서 여야 어느 당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일까. 더욱이 총선 결과가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운명을 좌우하는 걸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전략적 사고 없이도 이길 자신이 있다는 의미일까.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