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정수동 기자]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사고, 프레스 기계에 끼어 숨진 사고, 이마트에서 무빙워크 수리 도중 몸이 끼어 숨진 사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사망자들은 다름 아닌 특성화고 청년노동자라는 점이다. 이 같은 젊은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막아보자면서 제 128주년 세계노동절을 맞아 특성화고 졸업생 노조가 출범했다.

사진제공 =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2018년 5월 1일 노동절 맞아 특성화고 졸업생 노조 출범.

128주년 세계노동절인 오늘 국내 최초로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조합원 20여명은 오늘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조합 설립의 취지와 이후 활동계획을 발표했다.

이들은 구의역과 제주, 남양주에서 일어난 특성화고 청년노동자들의 사고에 분노하고 추모하는 마음으로 모였고, 졸업이후 현장에서 겪는 부당한 대우로부터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사람이 죽어가는 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당일 참가한 이은아 조합원은 정당하게 취업시장에 나가더라도 ‘특성화고 졸업생을 마치 ‘쉬운경로’, ‘특혜’를 받은 것처럼 여기고 무시하는 풍조‘가 있다고 발언했고, 이학선 조합원은 이학선씨(20)는 “차별받지 않고, 모욕을 당하지 않고 사람답게 살게 해 달라고 말하기 위해 나왔다”며 “근로기준법도 지키지 않은 채 우리를 쓰고 버릴 부품으로 대하는 회사에서 우리는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이 취합한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엔 전공과 상관없는 업무배치, 특성화고(고졸) 취업자. 혹은 실습생' 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시하는 경우, 신체부위를 때리거나 툭툭 치고서 "어리니까 내 아들, 딸 같아서 그래." 라는 핑계를 대는 성추행, 똑 같은 업무를 하는데도 연봉차이가 심각하게 벌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은 현재까지 100여명의 조합원이 가입했으며 오늘 설립총회를 진행하고 고용노동부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사업계획으로는 먼저 매년 10만명씩 졸업하고 있는 특성화고 졸업생 취업환경 전수조사를 요구할 계획이다. 전국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밝혔다.

사진제공 =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 다음은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설립선언문이다.

<우리는 생각합니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시간도 없이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열아홉살 특성화고 졸업생 청년노동자를 생각합니다. 무거운 감정노동에 시달리다 "콜수를 다 못채웠다"는 문자를 남기고, 끝끝내 숨진 열아홉살 전주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노동자를 생각합니다. 생일을 닷새 앞두고 살벌한 프레스 기계에 끼어 숨진 열여덟살 제주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노동자를 생각합니다. 다음달엔 여행을 갈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작은 행복을 바라던, 이마트에서 무빙워크 수리 도중 몸이 끼어 숨진 특성화고 졸업생 스물한살 청년노동자를 생각합니다.

또래 친구들보다 조금 일찍 세상에 나선 그들은 채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죽어야만 했습니다. 행복을 바라며 부푼 꿈을 안고 세상에 나섰지만, 열심히 일했다는 이유로 죽어야만 했습니다. 무서운 세상이 그들의 죽음을 막지 않아서, 어쩌면 사람의 생명보다 돈이 우선인 어른들의 탐욕과 이기심이 죽음을 부추겨서 그들은 죽어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막을 수 있었던 죽음들을 다시 떠올립니다.

<‘너는 나다’ 우리는 그들입니다>

우리는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새 출발을 시작하며 부푼 꿈을 안고 세상에 나선 특성화고 졸업생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강제야간근로, 임금체불, 새벽까지 이어지는 장시간 노동이었고, 성희롱과 성추행을 비롯한 폭언과 폭력 속에서, 특성화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당하는 모욕과 차별 속에서, CCTV로 노동하는 모습을 감시 당하는 가운데에서, 과도한 노동을 당연한듯 강요받는 분위기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가운데에서. 그저 운 좋게 살아남았을 뿐입니다. 구의역 김군, 전주 홍양, 제주 이군, 이마트 이군. 너는 나다! 우리가 그들입니다.

<우리는 바랍니다>

우리는 꿈을 꾸고 싶습니다. 행복하고 싶습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 말들을 힘겹게 내어놓는 일은 슬프기만 합니다. 상식이 상식이지 못한 현실에 분노합니다. 특성화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특성화고 졸업생이라는 이유로 사회 속에서 온 몸으로 맞는 견고한 불의의 벽이 두렵기도 하지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이곳에 섰습니다. 분노를 느끼면서, 서러움을 느끼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조금 더 일찍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두배 세배 노력하며 살아가는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전국 곳곳에서 값싸게 쓰고 버릴 부품쯤으로 여기는 회사가 없기를 바랍니다. 위험한 곳에서 일을 하고,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열악한 노동환경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특성화고 졸업생이기 때문에 이렇게 해도 돼! 라는 차별과 무시, 편견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성희롱, 성추행을 비롯한 폭언과 폭력을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정말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우리가 바꾸겠습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은 멀고 험난할 수도 있습니다. 불의한 세상에서 오늘 우리의 선언이 우리의 목을 조르는 일이 될지도 모를 것입니다. 그래도 두려움 속에서 외칩니다. 혼자가 아니라 우리라는 이름으로 용기를 내봅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니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야기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이 사회에서 이제 더 이상,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마땅히 그래야 하기 때문에. 손톱만큼이라도 고쳐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생애 첫 노동을 시작한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모여 우리의 걸음을 시작합니다.

2018년 5월 1일 세계노동절, ‘사람다운 삶’이라는 꿈을 향해,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의 설립을 선언합니다.

2018년 5월 1일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조합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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