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KBS

[뉴스프리존=이상윤 기자] 1592년 4월 13일, 평화롭던 부산에 일본군이 상륙한다.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은 보름 만에 조선의 마지막 방어 거점인 충주까지 무너뜨리고, 일본군의 빠른 진격에 조정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1592년 4월 30일, 급기야 선조는 도성을 버리고 피난을 떠나는, 이른 바 '몽진'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틀 뒤, 선조를 추격해오던 일본군은 한양에 입성하게 되는데. 간발의 차이로 일본군을 따돌리고 한양을 떠난 선조. 그의 몽진은 도망인가, 전략인가?

▶ 파죽지세 일본군, 속수무책 조선군

한 달도 안돼서 도성까지 입성한 일본. 일본의 공격에 조선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유는 일본에 대한 조선의 오판(誤判)이었다? 조선 건국 이후 200년 동안 평화를 유지했던 조선은 전쟁을 잊은 지 오래였다. 그 사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을 장악하고, 전국시대 실전으로 훈련된 정예병들을 구성하여 전쟁을 준비한다. 철저한 준비로 전쟁을 준비하는 일본군, 그들에게는 강력한 신무기인 조총이 있었다.    

▶ 운명을 가른 무기, 조총 vs 승자총통

조총의 공격 앞에 빠르게 무너졌던 조선군. 그런데 조선군에게도 총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현대식 모양을 갖춘 총, 승자총통이 존재했던 것. 조선의 개인용 화기인 승자총통과 일본에서 대량생산된 신무기, 조총. 둘의 차이가 임진왜란의 운명을 가르는데. 그동안 풍문으로 들었던 일본 무기와 조선 무기의 화력차이를 스튜디오에서 시연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본다. 

▶ 임진왜란은 ‘은의 전쟁’ 이었다?

“내가 명을 정복하면 (···) 영파(寧波)를 근거지로 삼아 인도까지 정복할 것이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 <천황 북경이주 계획>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철저히 계획된 전쟁, 임진왜란. 그런데 임진왜란의 최종목표는 조선이 아니었다? 한양 점령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꿈을 구체화하며 <천황 북경 이주 계획>을 발표한다. 

아시아를 제패하겠다는 그의 꿈은 허황된 꿈이었나? 당시 명나라는 은을 화폐로 사용했던 은의 나라. 유럽 상인들은 명나라로 은을 싣고 와서 금으로 교환해가며 이익을 챙겼고, 명나라에는 전 세계의 은이 모여들었다. 은(銀)의 나라, 명나라의 영파(寧波)를 점령한다는 것은 곧 국제무역을 독점하겠다는 것.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원대한 야망 아래 시작된 임진왜란은 ‘일본과 조선 간의 전쟁’이 아닌 은(銀)을 둘러싼 ‘국제 전쟁’이었다.

그동안 알고 있었던 임진왜란을 새롭게 조명한 이번 방송은 5월 27일 일요일 밤 9시 5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임진왜란 1편. 선조의 몽진, 도망인가? 전략인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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