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찻사발의꿈! 세계를 담다'

박윤일 조선다완연구가

‘문경찻사발의 꿈! 세계를 담다’라는 주제로 성황리에 개최된 문경찻사발 축제는 올해로 20회를 맞고 있다.

전국 최우수축제로 수차례나 지정되고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선정되기도 한 문경찻사발축제의 위상은 결코 만만치 않다. 그런데 막상 축제의 중심이 되고 있는‘찻사발의 예술적 가치나 의미’에 대하여는 정작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참고로 찻사발의 한자식 표기는 ‘다완(茶碗)’이라고 한다. 명칭과 관련하여 茶道에 찻사발이 주로 쓰이는 것으로 볼 때 ‘다완’이라고 한자명으로 표기하는 것이 찻사발축제의 품위를 좀 더 높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니까 문경찻사발축제를 [문경다완축제] 내지는 [문경조선다완축제]로 개칭해 볼 것을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필자는 찻사발을 접하면서 학이나 구름무늬, 꽃과 새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는 청자나 백자가 아닌 투박한 조선찻사발이 오늘날 왜 도자기계에 각광을 받는 가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일본대사관에서 개최하는 차회에 초대받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차회를 주관하는 한 미모의 일본다도선생이 투박한 조선찻사발을 너무나 소중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그 까닭을 물어보았다. 그가 설명하는 조선찻사발에는 그러한 대접을 받고도 남을 충분한 가치와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조선찻사발은 ‘외적인 아름다움보다 내적인 아름다움이 있다’고 하였다. 조선다완을 사람의 옷으로 비유한다면 청자나 백자는 어린아이가 좋아하는 색동저고리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설명하면 도를 추구하는 스님이나 성숙된 어른은 색동저고리와 같은 화려한 옷을 좋아하지 않는다. 또 조선다완을 계절로 비유한다면 청자나 청화백자는 화려한 봄이나 여름으로 비유할 수 있으며 조선찻잔은 낙엽지는 쓸쓸한 가을로 비유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계절 중 어느 계절이 가장 성숙한 계절이냐고 물으면 누구나가 가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니까 茶道에 있어서도 외형적으로 화려한 청자나 청화백자보다도 소박하고 쓸쓸하게 보이는 조선다완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즉, 배려와 下心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접대하는 다도는 소박한 조선다완이 더 격조가 있고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道를 추구하는 사람이나 덕망이 높은 사람은 결코 세인과 같이 화려한 옷이나 물건을 선호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내면적 가치에 신경을 쓰지 않는 세인들이 사치스럽고 화려한 것들을 찾는 경향이 많다.

성철 스님은 비록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살았지만 세상 사람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다. 성철 스님이 세인들처럼 사치스럽거나 화려한 것을 가까이 하였다면 과연 그토록 사후에까지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을까? 그러니까 운학이 그려져 있는 청자처럼 기교적이고 인위적인 美는 세인들이 선호하는 아름다움이고, 소박한 아름다움은 道를 추구하는 성숙한 미라고 이해하면 된다는 것이다.

일본 전국의 성주를 제압하고 일본 천하를 통일한 또요또미 히데요시는 황금으로 찻잔을 만들고 차실을 짓게 하여 그곳에서 차를 마셨다. 교오또오에 있는 황금차실인 금각사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 일본에는 정신적으로 추앙을 받는 센노리큐라는 다도 대스승이 있었다. 어느날 그는 다도 스승으로부터 화려한 차생활이 다도정신과는 거리가 있다는 충언을 듣게 된다. 그는 그의 오만한 자존심을 건드린 다도 스승을 마침내 할복자살하게 한다. 그러나 결국 그의 충언이 올바른 것이었음을 깨닫고 소박한 조선찻잔으로 다도를 하다가 조용히 여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茶道는 자기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修道,德行의 의미를 담고 있다. 때문에 자기를 과시하는 듯한 화려한 황금찻잔으로 다도를 한다는 것은 다도정신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다도정신에 가장 적합하다고 평가받는 소박한 조선찻잔은 마침내 일본 상류층 차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다. 그리하여 '황금보다도 더 귀한 보물(Treasured above gold)'로 여겨져 일본의 국보 또는 중요문화재로 떠받들어 지게 된 것이다.

일본의 상류층 다도 선생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조선찻사발을 능가하는 찻잔은 이 세상에 없다고 격찬하고 있다. 얼마 전 일본의 국립박물관장은 그곳에서 개최된 ‘조선다완전 기조강연’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일본인의 가슴 깊숙이 들어와 감동을 주고 경건한 신앙의 대상으로 떠오른 물건 가운데 조선의 찻사발과 같은 것이 세상에 또 어디 있으랴”라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르짖었다고 한다. 그의 집안은 수백년간 조선다완을 가보로 소중히 간직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투박하기 이를데 없는 조선찻사발이 화려한 일본의 황금찻잔을 이긴 것이며, 일본다도정신의 핵심인 와비사비의 美, 즉 쓸쓸한 아름다움을 지닌 찻잔으로 일본도자기계에서 황제적 위치에 오르게 된 것이다. 조선찻잔은 청자 등과 같이 누구에게 잘 보이게 하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기교를 부리지 않아 가식적이거나 기교적인 미가 아니다. 무심무작(無心無作)의 아름다움, 아름다움과 추함을 넘어선 예술성을 간직하고 있다. 즉, 조선다완에는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예술에서의 진실미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예술에서 최고의 가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다완전문가의 전언이다. 소박하고 쓸쓸한 미로 대변되는 문경찻사발에는 바로 내면적 예술미의 핵심인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문경은 오늘날 이러한 조선찻사발을 가장 완벽하게 재현하는 곳으로 높이 평가되어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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