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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가다,. 남북통일의 대통로를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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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가다,. 남북통일의 대통로를 열자!
  • 김현태 기자
  • 승인 2018.08.01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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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프리존= 김현태기자] 한반도의 뼈대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시작점이자 압록강의 발원지인 백두산을 갔다.

2018년은 국조 단군이 왕검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연 지 4천350주년, 일제의 국권 침탈에 맞서 독립투쟁을 이끌어 나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9주년, 나라를 되찾은 광복 73주년, 그리고 세계 최빈국에서 10대 무역강국으로 발돋움한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수립)한 지 70주년이 되는 8 15의 8월의 시작이다. 이러한 뜻 깊은 시기에 마침 민족의 영산(靈山)인 백두산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무척 기뻤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은 '애국가' 구절이고 '백두에서 한라로 우리는 하나의 겨레 헤어져서 얼마나 눈물 또한 얼마 였던가'는 민중가요가 된 북한 가요 '다시 만나요'의 한 구절이다.

 백두산은 중국에서는 장백산으로 불리고 있으며 해발 2750미터의 휴화산으로써 우리 민족의 개국설화가 서린 곳이요, 일제 강점기엔 민족독립을 위한 투쟁의 흔적이 배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름 모를 꽃과 풀과 바위들이 역사 속에서 함께한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품고 있으며 압록강, 두만강 발원지이자 백두대간의 시발점으로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불리고 있다.

연길에서 꼬박 3시간을 달려 백두산산문에 도착하니 오전 9시쯤, 주변은 이미 관광객천지다. 같이 동행해준 재중동포가이드는 산문에 대기하는 인원이 수만여명에서 천지에 올라가 있는 인원만 해도 수천명은 될 것이라며 6·7·8월이 성수기인 것을 감안해도 주말과 중국노인절이 겹쳐 평소보다 사람이 더 많다고 했다. 출발할 때부터 안타까움은 보고자한 백두산은 북한 관할도 아니고 중국의 관광지였다. '백두산'이 아닌 '장백산'으로 중국 관광의 명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몇 백 미터나 이어지는 관광객이 부럽다 못해 화가 날 정도였다. 최근 금강산 관광도 중단된 상황에 북한 땅을 경유한 백두산관광은 생각조차 못할 현실이지만 모두 분단으로 초래된 우리의 비극이다. 인천공항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약 2시간 정도 걸려 심양공항으로 올 때도 서해로 나가 중국영공으로 비행하는 관계로 거의 곱절 정도 우회하는 것 같았다.

산문에서 산중턱까지 올라가는 환경버스를 타고 올라가며 창문을 통해 바라본 백두산은 벌써부터 짙은 안개를 드리우며 스산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한차례 더 봉고차를 갈아타고 10여분을 이동한 후 천지산문에 도착한 것이 오후 2시반, 해발 2500미터에 달하는 백두산천문봉의 칼바람은 한여름인 8월중순에도 온몸을 떨게 만들었다. 한해에도 3-4개월을 제외하곤 솜옷을 입어야할 정도로 매서운 바람과 지나가는 이의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하는 깎아지를 듯한 절벽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도백하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가는 길 양쪽에는 자작나무숲이 장관이었다. 도로만 뚫려있는 산악도로에는 가로수 역할도 가드레일 역할도 모두 자작나무숲이 하고 있는 듯 했다. 얼마를 달려 중간 환승장에서 내려 6인승 짚차로 천문봉쪽으로 달렸다. 비좁은 도로는 아스팔트도 시멘트 포장도 아닌 주로 차도 블럭을 깔아 포장을 하여 승차감도 매우 좋지 않았고, 굽은 도로를 달릴 때마다 요동을 칠 정도였다. 엉덩이가 떠오를 정도로 심하게 덜컹거리며 공포의 폭주를 하는 사이에도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경치를 살펴보았다. 아래쪽엔 고산식물도 있었지만 올라갈수록 점점 식물은 없었고 척박한 흙과 바위 뿐이었다.

생명을 한껏 머금은 활달한 분위기와 생동감 넘치는 조경을 선보이는 남쪽의 산들과는 사뭇 다른 백두산의 분위기, 곡선이 아닌 삐죽하게 날이 선 산등성이의 모형과 자욱한 안개사이묘한 긴장감속에 흐르는 스산한 기운들, 신비스러우면서도 한껏 위엄을 뿜어내는 백두산의 자태는 가히 민족의 영산이라 부를만 했다. 드디어 정상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강인하다고 하는 잡초 한 포기 발견할 수 없고, 화산의 잔재들만 널려 있었다. 백두산 천지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아주 다행으로 날씨가 무척 좋았다. 그날처럼 날씨가 좋은 날은 일 년을 통틀어도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래에서는 날씨가 좋은 날에도 천지부근에 오르면 구름이나 안개가 가리어져 잘 볼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행운이라고 환호하였다. 깎아지른 절벽과 기암들로 둘러싸인 천지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광활하였으며,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로웠다. 쪽빛이라고 해야 할까 옥빛이라고 해야 할까? 이 세상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신비롭고 장엄한 것이 바로 천지라는 감회에 탄성을 지르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 같다.

 하산하는 길에 우리의 모습을 보고 뒤따라와 안위를 걱정하는 동포들과 통일이 빨리 되면 좋겠다고 응원하던 사람들을 보며 다시한번 통일에 대한 염원과 의지를 다진다. 휴화기에 들어간 백두산처럼 우리는 믿는다. 역사의 주인은 언제나 민중이었음을. 진흙속에서 연꽃을 피워내는 것이 운동이라 했던가. 그러고 보니 해발 2500m 나루 한그루 보이지 않던 백두산천지자락에도 풀뿌리민중들처럼 야생화는 흐드러지게 피웠더라.

가지고 간 카메라로는 도저히 천지 전체를 담을 수 없어 안탁 까웠지만, 여러장을 찍어 놓았다. 단체사진도 개인사진도 찍으며 처음으로 접하는 백두산 천지 경치에 흠뻑 취했다. 천지 맞은 편 절벽이 가물가물하게 보이고, 상하로 하얀 선이 그어져 있었다. 중국과 북한의 경계라는 말에 또 한번 가슴이 아프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 애국가에도 나오는 백두산의 일부도 중국에게 빼앗겼단 말인가! 백두산 천지에도 아직 분단의 비극이 남아있었다. 북한은 개방을 안해서인지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 관광도 고스란히 중국에게 빼앗긴 듯 하다.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세계적인 우리의 관광지로 개발하였으면 하는 소망을 백두산 천지에서 간절하게 기원하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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