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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눈 감은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 인문학적으로 풀어본 매춘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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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눈 감은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 인문학적으로 풀어본 매춘문화사
  • 어깨걸이극락조
  • 승인 2018.11.21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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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식민지 조선은 해방되었다. 그러나 해방된 조국에서 변한 건 없었다. 얼마간의 혼란 뒤에 찾아온 건 과거의 답습이었다. 일본이 떠난 자리에 미국이 들어섰고, 부역자들은 일본어 대신 영어를 쓴다는 것 빼고 달라진 게 없었다. 반민특위와 특경대가 노덕술의 군홧발에 짓밟혔다는 사실이 당시의 정국을 웅변했다.

세상은 달라진 게 없었다. 그렇다면, 집창촌은 어떻게 됐을까? 역시나 달라진 건 없었다.

1945년 9월 8일 하지 장군의 지휘하에 미군들이 한반도에 상륙했다. 이들의 가장 시급한 주제는 ‘일본군 무장 해제’와 ‘소련군의 남하 저지’였다. 이건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문제였다. 국제 정치는 장군들이나 워싱턴 DC에 있는 정치인들이 고민하면 될 문제였다.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군대를 통솔하기 위해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역시나 ‘성병’이었다.

미군정 시기 한반도에 주둔한 미군의 숫자는 공식적인 통계로만 77,600명이었다. 이들이 가장 원하는 건 성욕 해소였다. 군 지휘부에서는 이들을 막을 생각도, 의지도 없었다. 다만, “제발 성병에만 걸리지 마라.”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만 일어나지 않게 해라.”

라는 전제가 붙을 뿐이다. 35년간 일본 식민지로 살아오다 이제 막 해방된 나라에게 어떤 ‘발언권’이 있었을까? 미군 병사가 사고를 치더라도 어지간한 건 다 넘어갈 수 있었다. 1966년 조인된 주한 미군 지위 협정. 즉, SOFA 이전의 사건 사고들을 보면 미군을 막을 수 있었던 건 오로지 하나, 미군들의 ‘호의’ 뿐이었다. SOFA가 체결된 이후에도 미군들에 대한 처벌은 쉽지 않았다.

‘집창촌’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사건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게 1992년 10월 28일 동두천에서 벌어진 윤금이 사건이다.

당시 20살이었던 이병 케네스 리 마클 3세(2사단 1연대 의무병)는 윤금이를 잔인하게 살해했다(콜라병으로 가격하고 음부에 콜라병을, 항문에 우산을 쑤셔 넣었다). 이후 살해 현장을 은폐하기 위해 세제를 뿌렸다.

마클 이병은 15년 형을 받았고(미군 당국이 윤금이 유가족에게 배상금을 지급했다는 이유였다), 잔여 형기를 1년여 앞둔 2006년 8월 가석방된다. 한국 교도소에 수감됐던 마클 이병의 수형 태도는 꽤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형 생활은 꽤 괜찮았다. 스스로 요리를 해서 먹을 수 있는 배려를 받을 정도로 그는 나름 ‘대우’를 받았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간 직후 SOFA 개정에 대한 반대 의사를 개진한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효순 미선이 사건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물론, 아직 부족한 부분도 많지만 지금은 주한미군이나 그 가족들의 사건에 대해서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고, 이빨이 안 먹히더라도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미군 측에 항의를 할 수 있는 상황까지 왔다. 그러나 SOFA 이전의 미군 범죄. 특히나, 주한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이 피해자인 범죄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라고 보는 게 맞다. 아니,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쉬쉬하며 이들의 범죄를 은폐했었다고 보는 게 맞다. 당시 미군은 우리나라를 일본에게 해방시켜 줬고,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구해 준 천조국이었다. 아울러, 우리의 주요한 외화 획득 창구였다. 이런 미군을 함부로 대할 수 있었을까?

수차에 걸쳐 강조했지만,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후 성병에 대해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였다. 이후 참전한 전쟁에서 미군이 가장 신경 썼던 것이 ‘성병 예방’이었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45년 9월 11일. 한반도 도착 사흘 만에 미군정은 서울에 군 의무대(Office of corps surgeon)를 개소했고, 뒤이어 성병 진료소들이 문을 열었다. 이들은 군 의무대의 통제 아래 유곽 지역과 술집을 비롯한 ‘화류계’ 업소들을 면밀히 조사했고, 미군 의무장교들은 유곽을 찾아가 매주 성병 검사를 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당시 집창촌은 미군 출입 금지 지역이었다.

출입 금지 구역이었음에도 미군 의무대들이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했던 이유가 뭘까? 간단하다.

“군인이 있고, 그 옆에 집창촌이 있다. 그러면, 집창촌에 들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군 의무대들은 곧 있을 미군들의 ‘방문’과 뒤이은 ‘성병 감염’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 당시 한국은 ‘섹스’에 있어서만은 나름의 시스템을 가진 나라였다. 일본이 지배하는 동안 공창제를 도입했고, 전쟁을 겪으면서 군인을 상대한 경험까지 더해졌기에 꽤 ‘체계적인’ 형태의 성매매가 가능한 나라였다. 시쳇말로 일본이 남긴 유산을 미군이 그대로 접수만 하면 됐다. 문제는 당시 한국의 ‘위생 수준’이었다. 당시 미군 의무대 표현을 빌리자면,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위생 수준”

이었다.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성병 위험 지대”

였다. 미군은 남한에 주둔한지 채 20일도 되지 않아 미군정령 제1호(Ordinance No.1) ‘위생국 설치에 관한 건’을 발표한다. 남한 주둔 미군의 ‘성병’을 관리하기 위한 첫발을 뗀 거다.

미군정령 1호로 설치된 위생국은 이후 복지 기능이 추가돼 ‘보건후생국’이 됐고, 1946년 3월이 되면 보건후생부로 확장된다. 이후 각 지역에 보건후생국이 설치된다. 이렇게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가던 미군의 의료 체계는 1947년 5월, 보건후생부 산하에 ‘성병 통제과(Section)’를 설립하며 성병 진료 체계를 완성한다.

이렇게 대외적인 성병 예방에 힘쓰는 한편으로 미군 병사들의 단속에도 힘을 썼다. 부대 지휘관, 군목(軍牧), 헌병 사령관 및 의무부, 특별 업무 사단(special service division : 미군 병사들에게 오락이나 시설들을 제공한다) 등등이 모여 성병 예방을 위한 테스크포스 팀을 꾸리게 된다.

『성병 통제 위원회(VD Control Councils)』

이들은 매달 회의를 열고, 각 부대 단위로 성병 감염 추이를 확인했다. 더불어 병사들의 성욕을 억제하는 금욕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성병에 대한 교육 자료도 배포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어디까지나 미봉책일 뿐이었다. 성욕을 통제하는 건 어려웠다.

성병 통제 위원회의 가장 큰 ‘업적’은 ‘안전한 업소’를 지정하고 이를 알려주는 거였다. 가급적 성적인 접촉을 최소화하고 성병 걱정 없이 관계할 수 있도록 미군이 미리 업소들을 확인하고 지정했다는 거다.

그렇다면 성병 걱정 없는 업소를 어떻게 확인했던 걸까? 1946년 3월 미군은 명월관, 국일관 등에서 일하는 서울시 내 4대 권번 기생들을 대상으로 채혈 검사를 했다. 성병 통제과(Section) 설립 이후에는 기생을 비롯해 창녀, 대선, 웨이트리스 등등 ‘성 접촉’이 예상되는 여성 접객원들에 대한 정기적인 검진과 건강증명서 발급을 ‘강요’했다.

문제는 성병 검사 후 병이 발견됐을 때 이 여성들이 어떻게 됐냐는 거다. 성병 통제과(Section)가 설립되자마자 미군들은 한국의 윤락 여성들에 대한 대대적인 성병 검사를 실시했다. 1947년 5월부터 1948년 7월까지 약 14개월 동안 14,889명의 성매매 여성들(혹은 성매매가 의심되는 여성들)에 대한 성병 검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놀라웠는데, 이들 중 60%가 성병에 감염된 걸로 확인됐다.

이 여성들은 어떻게 됐을까? 미군은 이 여성들을 '국립성병센터'로 보내거나 아예 교도소에 집어 넣어 치료를 시켰다. 어느 정도 증상이 호전돼 감옥에서 나오더라도 완치가 의심될 경우에는 추적 조사해서 강제적인 치료를 시행했다.

후술하겠지만, 1960~70년대 동두천에서 이름 모를 윤락 여성들이 ‘페니실린 쇼크’로 죽게 된 근간에는 이런 역사가 숨어 있다. 이때부터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이나 건강권에 대한 ‘권리’는 미군들에게 넘어가 있었던 상황이다.

민주주의를 말하는 미국이지만, 그 민주주의가 허리 아래까지 내려가지는 못했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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