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용서

요즘 저의 안 사람이 조금 아픕니다. 아마도 자꾸 노쇠해지니까 우울증이 찾아 온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일이 짜증이 나는 가 봅니다. 걸핏하면 남편인 제가 밉고 하는 일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가까운데 사는 작은 딸 애에게 퍼붓는 모양입니다.

집사람의 불만 겸 하소가 조금 지나쳤는지, 아니면 딸애가 보기에 여러 가지로 민망했던지, 엄마를 위로하며 달래 준다는 것이 도가 지나쳐 그 소리가 제 귀에 들려왔습니다. 그 모든 것이 평생 제가 아내에게 저지른 죄업의 결과이고, 제가 감당할 몫인데 딸애의 큰 소리가 귀에 거슬렸습니다. 당장 제 방으로 불러 호되게 질책을 하고 말았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참았어야 하는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효녀 딸에게 큰 소리로 야단을 치다니요? 결국 세 부·모·녀(父母女)가 부둥켜안고 한바탕 회한(悔恨)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쌓이고 쌓인 집사람의 한(恨)과 남편에 대한 원망심이 풀렸는지, 그 후 비로소 아내가 정상으로 돌아 온 것 같아 한숨 돌린 것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닙니다.

가족 간의 사랑과 용서란 어떤 것일까요? 한우를 많이 키우던 어떤 사람이 축산업이 잘 안되어 쫄딱 망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빚을 안게 된 그는 죽을 결심까지 했지만 그것마저도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그는 가족들이 더 많은 피해를 당할까봐 모든 것을 버리고 아무도 연락이 되지 않는 곳으로 멀리 잠적해 버렸습니다.

처음에는 막노동판에 나가 일을 하며 그런대로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도 점점 더 힘들어져 결국에는 노숙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낮에는 구걸을 일삼았습니다. 밤에는 산에 올라 잠을 자는 그런 생활을 무려 20년 동안이나 하였습니다. 노숙자 생활이란 여름에는 그런대로 견딜 수 있지만, 겨울에는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얄팍한 이불과 비닐 한 장을 덮고 혹독한 추위를 견디는 밤이란 너무도 고통스런 나날이었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가 닥친 어느 겨울날! 구걸도 제대로 못해 며칠을 굶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무작정 걷고 걸어서 도착한 곳이 강원도 횡성 이었습니다. 그곳의 한 마을을 지나다가 소를 키우는 축사가 보였습니다. 그는 옛날 생각이 불현듯 나서 축사 쪽으로 걸어가자 축사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거지 행색이지만 용기를 내어 그 사람에게 먹을 것과 겨울을 지내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하였습니다. 물끄러미 쳐다보던 주인이 따뜻한 밥을 내어주면서 지낼 곳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는 예전의 경험을 되살려 겨울동안 소를 정성껏 돌보았습니다. 그가 돌보던 소는 너무나 우량종으로 잘 자랐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더 머물 것을 권유했고 그도 거기서 몇 년을 지냈습니다. 어느덧 노숙자의 티도 벗어나고 주인은 이 사람이 지나온 시절을 알고 암암리에 가족을 수소문 하였습니다. 그리고 송아지 두 마리를 주면서 자신의 소유물로 따로 잘 키워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 송아지들이 무럭무럭 잘 클 무렵인 어느 날, 키 크고 잘생긴 젊은이가 찾았습니다. 그가 바로 이 남자의 아들이었습니다. 둘은 얼싸안고 한참이나 울었습니다. 아들은 20여 년간 아버지를 찾아 안 가본 곳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비로소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한 것이 도리어 가족에게는 엄청난 고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어느 모임에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가족이란, 특히 부부는 사랑이 30%, 용서가 70%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부인이 벌떡 일어나서 “사랑은 10%, 용서가 90%입니다.” 라고 다시 말했지요. 이처럼 가족이나 부부의 관계도 살아오면서 사랑보다는 용서 할 때가 더 많지 않은가요?

또한 서로에게 물어보면 이해하고 용서한 경우가 사랑했을 때보다 비중이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2013년 박지성이 소속한 ‘맨유의 퍼거슨 감독’이 은퇴를 선언했을 때, 그는 은퇴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아내를 위해 감독직을 그만 두려 합니다. 저는 남은여생을 아내와 함께 지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아내와 같이 가정생활을 해본 것이 수 십 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는 아내를 위해 수많은 상패와 그리고 영광의 휘장을 창고에 넣어 두어야만 했습니다. 그는 감독시절 연말연시 수많은 지인에게는 문안 인사와 격려 인사를 하였지만, 정작 자신의 가족에게는 감사와 고마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다고 합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런 저런 핑계로 가족에게 따뜻한 인사 한번쯤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내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 종종 기회를 만들어 가족에게 따뜻한 말이라도 서로 나누면서 사랑하고 용서하고 살아가면 어떨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6월 25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키워드
#사랑 #용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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