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 웅천 수도의 민족신앙 수도신당

창원시 웅천 수도신당 모습
창원시 웅천 수도신당.ⓒ강창원 기자

[창원=뉴스프리존] 강창원 기자=창원시 진해구 수도동 산82에는 웅천(熊川) 수도(水島)마을의 신당(神堂)이 있는 곳으로 당산(堂山)이라 부른다. 이곳은 GPS고도계로 해발 43m이고 위도 35°05'00"N 경도 128°44'52"E라 표시한다.

수도는 고려사 「원종4(1262)년 2월」 조항(條項)에는 ‘왜구가 물도(勿島)에 침범하였다.’고 해서 ‘물섬’의 표기를 ‘勿島’로 하고 있다. 이는 ‘물섬’를 ‘勿島’로 차자 표기되었다가 경상도속찬지리지부터 한자 이름으로 ‘수도(水島)’라 표기를 했다. 

웅천 앞 바다의 작은 섬에 수질이 좋은 물이 많이 나서 ‘물섬’으로 불렀던 것이 섬 이름으로 되었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는 조선 수군이 이 섬에서 물을 공급받았다고 전한다. 섬의 넓이는 46.4km², 해안선의 길이는 2.669km이다.

2015년에 섬 탐방으로 이곳 수도를 온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신당(神堂)을 보지 못했다. 그때는 신당 주위로 나무들이 에워싸고 있어 신당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번에 신당 주위의 나무들을 모두 베버리고 신당의 모습을 드러나게 했으며 약간의 수리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도신당(水島神堂)에 다시 접근해보니 예전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신당 둘레에 있었던 흔적이 보이고 뒤에는 회화나무도 심었는데 이번에 정화작업을 하면서 회화나무도 잘라 버렸다. 아마도 주민들이 회화나무를 심었던 뜻을 모르고 자른 것으로 보인다. 주민분에게 신당의 내부를 볼 수 있는지. 누구에게 알아봐야 하는지. 여쭸으나 제례를 할 때만 문을 연다는 답을 들었다. 

웅천 수도신당 내부 모습
웅천 수도신당 내부.ⓒ강창원 기자

2021년 2월 7일 다시 찾은 웅천 수도신당은 그믐날에 제례를 지내기 위해 마을 우물 청소와 더불어 신당 가는 길과 신당 내부의 집기 등을 물로 씻고 신당의 전반적인 청소를 했다.

오늘 이후부터 그믐날까지 마을에서 신당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전등으로 불을 밝히고 할매신이 노할만한 일은 하지 않는다. 제례에 사용하는 제물을 물어보니 흰쌀밥, 팥시루떡, 탕국, 마른명태, 과일, 나물 등 집에서 지내는 제사상 차림과 거의 같으나 전, 티김 등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1967년 문교부 소속 문화재관리국에서 조사한 『전국부락¹⁾제당조사질문지(全國部落祭堂調査質問紙)』의 내용에는 수도국민학교²(水島國民學校)에서 근무한 김순철(金順哲, 당시 34세)씨가 조사한 내용이 담겨 있다.당(堂) 이름은 상당(上堂)이고, 남동쪽 100m 지점에 위치하며, 내부에는 신패(神牌)가 있으며 제기들이 있다. 신단(神壇)은 없고 신령(神鈴)의 옷, 고무신 등은 동사(洞舍)에 보관한다. 당신은 할머니로 여기고 제주(祭主)는 1명으로 30대 이상의 부정 없는 결혼한 남녀 후보 중 동회(洞會)에서 결정한다.제주는 1주일간 목욕하고 부정한 것은 보지도 않고 접근도 하지 않는다. 음력 12월 말일 밤에 년 1회하고 제주에게는 마을 부역(賦役)을 면해 줬다. 상차림은 쌀밥(白飯) 과실(果實) 등이라 했다.”

웅천 수도신당에서 바라본 풍경
웅천 수도신당에서 바라본 풍경ⓒ강창원 기자

【주석】
부락¹⁾ : 부락(部落)이란 용어는 일제강점기 때 왜자(倭者)가 우리 민족을 천시하는 이름으로 부락(部落)이라 했다. 부락이란 용어는 왜국(倭國)에서는 천민이나 범죄자 및 지적장애인 등이 모여 사는 곳을 의미한다.

국민²⁾ : 국민(國民)이란 용어는 왜자(倭者)가 일제강점기 때 우리 민족을 ‘황국신민(皇國臣民)’으로 부르던 말의 준말이다. 황국의 ‘국’과 신민의 ‘민’을 따서 국민이라 했다. 즉 왜국(倭國) 천황(天皇)의 신하(臣下)된 자들이라는 뜻으로 우리 민족을 하찮은 민족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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