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 연희동 자택서 지병으로 사망
[전두환 사망] "광주는 폭동" "전재산 29만원"…논란의 어록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대한민국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했다. 향년 90세.

지병을 앓아온 전씨는 이날 오전 8시 40분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숨졌다.

그는 자택 내에서 쓰러져 오전 8시 55분께 경찰과 소방에 신고됐으며 경찰은 오전 9시 12분께 사망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시신은 곧 연대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될 예정이다.

한편, 지난달 26일 12·12 군사 쿠데타 동지 관계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한 데 이어 한 달도 되지 않아 전 전 대통령도 세상을 떠났다.

1931년 1월 23일 경남 합천군에서 태어난 전씨는 1955년 육사 11기로 졸업한 뒤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만들고 무인'(武人)으로서 출세 가도를 달렸다.

이후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피살 사건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 된 데 이어 정권 찬탈을 위한 '12·12 군사반란'을 획책했다.

군사 반란을 통해 집권한 전씨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했으며 1988년 초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퇴임 후 내란과 살인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1997년 12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 1931년 1월 18일 =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출생
    ▲ 1951년 = 육군사관학교 11기 입학
    ▲ 1955년 = 육군 소위 임관
    ▲ 1959년 = 이순자 여사와 결혼(슬하에 3남 1녀 둠)
    ▲ 1961년 = 육사 생도들의 5·16 군사쿠데타 지지 시위 주도
    ▲ 1963년 = 중앙정보부 총무국 인사과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인사과장
    ▲ 1967년 = 수도경비사령부 제30대대장
    ▲ 1969년 = 육사 11기 중 첫 대령 진급
    ▲ 1970년 = 육군 제9보병사단(백마부대) 29연대장으로 월남전 참전
    ▲ 1973년 = 육군 준장 진급
    ▲ 1976년 = 청와대 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
    ▲ 1977년 = 육군 소장 진급
    ▲ 1978년 = 육군 제1사단장. 북한 제3땅굴 발견해 '5·16 민족상' 수상
    ▲ 1979년 = 국군 보안사령부 사령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 10·26 사태 수사. 수도권 지역 무장병력 6천명 동원 육군본부·국방부·수경사·특전사 등 점거해 정승화 계엄사령관 체포하는 등 12·12 군사반란 주도
    ▲ 1980년 = 전국에 비상계엄령 선포. 3김(김영삼·김종필·김대중) 가택 연금 또는 구속. 전국 대학에 휴교령. 국회 봉쇄. 계엄군과 공수특전여단 광주 투입, 5·18광주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삼청교육대 설치. 육군 대장 진급 뒤 예편. 민주공화당·신민당 등 강제해산. 대통령 간선제 및 7년 단임제 골자로 한 8차 개헌 실행.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간접선거로 11대 대통령 선거 당선. 대통령 취임
    ▲ 1981년 = 민주정의당 입당, 초대 총재로 추대.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로 제12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 대통령 취임
    ▲ 1982년 = 한국프로야구 창설. 국풍 81 개최
    ▲ 1983년 =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공식·비공식 수행원 17명 사망
    ▲ 1984년 = 홍수 피해 북한에 식량지원
    ▲ 1985년 =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으로 첫 이산가족 상봉 성사
    ▲ 1986년 = . 3저 호황(원유가격 하락·달러 가치의 하락·국제금리 하락)으로 무역수지 흑자 전환. 서울 아시안게임 개최
    ▲ 1987년 =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발생. 4·13 호헌조치. 이한열 열사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 6월 민주항쟁 전국 확산.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6·29 선언 발표해 직선제 개헌 요구 수용
    ▲ 1988년 = 대통령 퇴임. 백담사 첩거. 민주정의당 탈당
    ▲ 1989년 = 국회 '5공 비리 청문회' 참석
    ▲ 1990년 =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복귀
    ▲ 1994년 = 5·18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이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고소
    ▲ 1995년 = 검찰,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불기소 처분. 헌법재판소, 불기소 처분 취소. 검찰, '12.12 및 5.18특별수사본부' 설치 후 재수사 개시. 사전구속영장 발부돼 안양교도소에 구속 수감
    ▲ 1996년 = 5·18 사건에서의 내란죄·내란목적살인죄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 1심에서 사형과 2천259억원 추징금 선고. 항소 후 2심에서 무기징역 감형과 추징금 2천205억원 선고
    ▲ 1997년 = 대법원 2심 선고 확정. 특별사면 후 석방
    ▲ 1999년 = 백범기념관 건립위원회 고문
    ▲ 2003년 = 법원 재산 명시 명령에 '예금자산 29만원' 기재. 검찰, 진돗개 2마리, TV·냉장고·피아노 등 경매 처분
    ▲ 2004년 = 이순자씨, 추징금 200억원 대납
    ▲ 2006년 = 세무 당국을 상대로 80억원대 증여세 부과 취소소송 제기
    ▲ 2013년 = 대검찰청, 고액 벌과금 집행팀 마련. 서울중앙지검에 전씨 미납 추징금 1천672억원 집행을 위한 전담팀 구성. '전두환 추징법'(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별법 일부개정안) 국회 통과. 전씨 추징금 환수 시효 2020년 10월까지로 연장
    ▲ 2017년 = 회고록 출간. 조비오 신부 유족 등이 사자 명예훼손 혐의 형사고소. 광주지법 전두환 회고록 출판·배포금지 결정. 회고록 5·18 일부 내용 삭제 재출간
    ▲ 2018년 = 알츠하이머 진단 사실 공개하며 첫 공판 불출석
    ▲ 2019년 = 광주지법 형사재판 3차 공판, 이순자 여사와 함께 출석
    ▲ 2020년 11월 30일 = 사자명예훼손 혐의,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유죄판결
    ▲ 2021년 8월 9일 = 사자명예훼손 혐의 항소심 재판 출석
    ▲ 2021년 11월 23일 사망

23일 사망한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은 12·12 군사반란을 통해 집권한 군부 출신으로 수많은 논란의 어록을 남겼다.

그는 '5·18 피고인'으로 처벌받은 후인 2003년에도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라고 발언해 공분을 샀다.

1997년 법원이 뇌물 수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2천205억원의 추징금 납부를 명령하자 "예금자산이 29만 원밖에 없다"며 버티기로 일관했다.'

다음은 생전 고인이 남긴 주요 발언들.'

▲ "김종필은 흠이 많고 경솔하며, 김영삼이는 아직 어리고 능력이 부족하고, 김대중이는 사상을 도무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절대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1980.1 대통령 당선 전)
▲ "범인은 들어라. 윤상이를 데리고 파출소로 와서 자수하면 최대한의 선처를 베풀겠다. 윤상이가 살면 네놈도 살 것이고 윤상이가 죽으면 네놈도 죽을 것이다!"(1981년. 이윤상군 유괴 사건 발생 후 출연한 방송의 대범인선언에서)
▲ "국민 여러분, 아동유괴 살인에 대해서는 앞으로 무조건 이렇게 조치할 것입니다"(1981년. 이윤상군이 주검으로 발견되자 범인의 사형판결 확정 후 열흘 만에 집행한 뒤 출연한 방송의 대국민선언에서)
▲ "자기 자식도 제대로 교육 못 시킨 교직원은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 공교육이 우선이다. 사교육이 흥하는 순간 제대로 된 인재를 기대하기 힘들다"(대통령 재임 중 교육계를 향해)
▲ "나도 인간인데 동네북처럼 두들기지 마라. 노태우가 그런 식으로 하면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나한테 귀싸대기 맞는다. 나를 도청하다니 내가 빨갱이냐"(1988년. 대통령 퇴임 후 백담사로 가기 전)
▲ "...검사, 나 처음 재판받는데 어떻게 해야 해, 좀 가르쳐 줘. 재판에서 너무 날 다그치지 마"(1996. 2. 25 비자금 사건 1차 공판 전날 한 수사검사에게)
▲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내가 돈을 받지 않으니 기업인들이 되레 불안을 느꼈다. 기업인들은 내게 정치자금을 냄으로써 정치 안정에 기여하는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1996. 2. 26. 비자금 사건 첫 공판에서)
▲ "노태우가 일을 그르쳤어. 그렇게 쉽게 검찰에 가는 것이 아닌데. 끝까지 버텼어야지"(1996년 안양교도소에 구속 수감 직후)
▲ "그들은 아무 죄가 없다. 내가 다 책임지겠다."(1996년 1심 최후진술에서)
▲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구호 아래 과거 정권의 정통성을 심판하고 있으나 현실의 권력이 아무리 막강해도 역사를 자의로 정리하고 재단할 수는 없다"(96년 8월 5일 비자금 뇌물 수수, 121·2 사태 및 5·18 사건으로 10개 죄목으로 기소된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사형' 구형 후)
▲ "지금 대통령께서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하신다고 하는데 대통령 본인의 역사부터 바로잡으시길 바란다" (1997.4.17 김영삼 대통령에게)
▲ "예금 자산이 29만원밖에 없다"(1997년. 추징금 2천205억원 중 532억원을 납부한 뒤)
▲ "나 자신의 인권도 탄압받고 짓밟히면서 살아왔다. 내가 인내심이 있고 성질이 좋아 이렇게 살아 있지, 다른 사람이라면 속병이 나서 제풀에 죽었을 것이다"(1999.1.13. 자택을 방문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게 대통령 퇴임 후의 마음고생을 토로하며)
▲ "국민이 믿을 수 있는 그런 정치를 해야지. 그때그때 필요한 대로 거짓말하고 그러면 안 되지" (2000.3.10 김대중 정권에게)
▲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달빛정책이라도 내놓으면서 비판해야 한다"(2001.9.26. 한광옥(韓光玉) 민주당 대표의 신임인사 방문을 받고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햇볕정책 성과를 높이 평가하며)
▲"하나님이 하라신다는데 부처님인들 어떻게 하겠어요?"(2002.10.23. 가나아트센터의 '한국 근현대미술에 나타난 불교사상'전을 관람하고 나오던 중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의 대통령선거 출마에 대해 언급하며)
▲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 계엄군이기 때문에 계엄군이 진압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2003.2. KBS 인터뷰)
▲ "기자들이 내 사진은 꼭 비뚤어지게 (찍는다). 젊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아직 감정이 안 좋은가 봐.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2008.4.9. 국회의원 선거 투표를 마치고 취재진 앞에서)
▲ "이 사람아, 나를 알아보시겠는가"(2014년 8월 9일, 병상에 누워있는 노태우 전 대통령을 연희동 자택에서)
▲『전두환 회고록』 서문에서 전 전 대통령은 "어떤 이들에게는 아직도, 12·12와 5·17이 내 사적인 권력 추구의 출발점이라고 단정되고 있겠지만, 나를 역사의 전면에 끌어낸 것은 시대적 상황이었다(2017.4. '전두환 회고록' 서문에서)
▲ "내가 광주에 내려갔다면 작전 지휘를 받아야 했을 현지 지휘관들만큼은 나를 만났거나 봤어야 했는데 그런 증언을 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2017.04. '전두환 회고록'에서)
▲ "조비오 신부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2017.04. '전두환 회고록'에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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