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칼럼] 국민들이 원하는 건 청와대 이전이 아닌 대장동 사건 재수사

검찰 개혁도, 대통령 집무실 이전도 특권층만의 화두

윤석열 정부가 정식으로 출범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극렬 지지자들까지 뒤엉켜 또다시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현재의 청와대로부터 용산에 위치한 국방부 건물로 옮기는 정책을 둘러싸고 곧 정식 여당으로 자리매김할 국민의힘과 조만간 야당의 지위로 내려앉을 더불어민주당이 전면전을 방불하게 하는 격렬한 갈등을 빚고 있는 탓이다.

이번 논쟁에서 특이하고 이채로운 부분이 있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가 낮에는 국민의힘을 편들고, 밤에는 더불어민주당을 두둔하는 식으로 줏대 없이 수시로 입장을 오락가락하며 이중플레이에 열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청와대의 혼란스러운 조변석개가 대통령 임기를 마치면 정치무대를 떠나는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를 나오면 친정인 더불어민주당으로 복귀해야만 하는 참모들 사이의 거취 차이에서 근본적으로 비롯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향인 양산으로 돌아가 새로 지은 사저에서 편안한 은퇴생활을 하길 바라는 까닭에 뜨는 권력인 윤석열 당선인과 구태여 무리하게 척을 질 이유가 없다. 반면, 청와대 보좌진은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가 당권을 장악할 개연성이 농후한 더불어민주당 방면으로 진로를 잡아야만 하는 터라 대선불복이라는 민심의 비판을 받을 걸 감수하고서라도 윤석열 당선인에 맞서 결사항전의 의지로 싸웠다는 알리바이를 확보할 필요성이 있다.

필자는 머잖아 퇴임할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서는 특별히 주문하고 싶은 내용이 없다. 지금쯤 그는 ‘정치는 허업’이란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명제를 곱씹고 있을지 모른다. 문 대통령이 서쪽 하늘로 뉘엿뉘엿 저무는 석양을 바라보며 쓸쓸히 서 있다면, 윤석열 당선인은 동해바다 위로 힘차게 솟구치는 아침햇살을 맞으며 희망과 의욕에 들떠 있으리라.

그런데 당선인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청와대 집무실 이전은 일단은 여론전에서 완패한 것으로 분석된다. 찬성하는 여론과 견주어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은 까닭에서이다. 윤석열에게 한 가지 위안거리가 있다면 반대하는 측에는 청와대 이전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의견과,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과 서민경제 회생 등의 더욱더 시급하고 절박하며 본질적인 의제들에 차기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견해가 반반씩 섞여 있다는 사실이다.

후임 윤석열 정부의 청와대 집무실 이전 고집은 전임 문재인 정부가 집착한 검찰 개혁과 민심의 지형에서 실질적으로 동일한 좌표를 점유하고 있다. 집권세력과 골수 지지자들에게는 나라의 운명과 자신들의 자존심이 걸린 중차대한 역사적 과업일 테지만, 남한의 대다수 평범한 인민대중에게는 우리와는 상관없는 당신들만의 뜨거운 쟁점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문재인 정권이 보통의 일반인들은 살면서 갈 일도 없는 검찰에 쏟은 신경과 에너지의 10분이 1이나마 부동산 가격 안정과 청년실업 해소에 기울였다면 박정희 소장의 5ㆍ16 군사쿠데타로 무너진 장면 정권 이후로 가장 단기간에, 그것도 투표로 국가권력을 내주는 굴욕적이고 치욕스러운 기록은 쓰지 않았으리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옮기고, 국방부를 이전하겠다고 공언한 데 대해 상당히 큰 리스크가 줄곧 지적되고 있다. 사실상 '국방부 해체'나 다름없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옮기고, 국방부 이전을 강행함에 따라 정국의 급랭하고 있다. 윤 당선인의 용산 집착의 배경에 대해 논란이 분분하다. 사진=연합뉴스

이와 매한가지로 필자는 윤석열 당선인이 왜 그토록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목을 매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대통령 집무실이 북악산 밑에 있든, 광화문거리 한가운데 있든, 옛 삼각지 로터리 근처에 있든 국민들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대통령의 집무실 소재지가 어디에 들어서는지는 최고통치권자와 얼굴 맞대는 높으신 분들에게나 밀접하게 피부에 와 닿을 사항일 뿐이다. 검찰 개혁도, 청와대 집무실 이전도 알고 보면 남조선에서 출세하고 성공한 극소수 특권적인 특수계층들만의 한가한 신선놀음에 불과할 따름이다. 당사자에 해당할 서울 용산구 주민들이라면 당연히 얘기가 달라지겠으나….

바보야, 문제는 대장동이야

정작 국민들이 차기 정부가 제일 시급하게 착수해야만 할 급선무로 꼽은 일은 문재인 정부에서 부실수사로, 축소수사로, 봐주기 수사로, 깃털만 뽑는 지엽말단 수사로 점철된 성남 대장동 게이트의 전면적 재수사이다. 대장동 사건은 일확천금의 부동산 투기와 관료조직의 부정부패, 그리고 정치권이 개입한 권력형 비리 같은 한국사회의 온갖 구조적 병폐와 심각한 모순들이 얽히고설켜 녹아들어간 일종의 종합선물세트이기 때문이다.

대장동 게이트의 전면적 재수사가 시작되면 사정기관의 칼날은 결국에는 대장 지구 택지개발 사업이 진행되던 당시 성남시장을 역임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겨냥하기 마련이다. 최종적으로는, 이재명 후보의 경기지사 시절 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해 무죄선고를 내린 판결을 주도한 김명수 대법원장,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권순일 전 대법관의 대법원 3인방도 수사의 객체가 될 수밖에 없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전방위적인 검경 합동 수사가 예약된 것이다.

이래저래 대장동 재수사는 윤석열 정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정치보복 시비를 부를 위험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게 마땅하다. 그렇지만 죄인들을 전부 모조리 벌주다가 나라가 결딴나는 일만은 결단코 피해야 한다. 헌법에는 대통령이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으로 명시돼 있다. 허나 제헌헌법을 기초한 헌법전문가들이 차마 헌법에 드러내놓고 공개적으로 포함시키지 못한 문구가 있다. 대통령은 한 나라의 수석 정치인이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윤석열 당선인에게는 정의는 구현하면서도 정치 보복 프레임에는 걸려들지 않는 고도의 정치력과 정무감각을 발휘할 것이 요구된다. 검사는 저울만 갖고 있어도 충분하다. 정치인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게끔 뒷주머니에 고무줄 하나쯤은 챙겨두고 있어야 한다. 때에 따라선 불가피하게 고무줄 잣대를 적용해야만 하는 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정치인이 직면한 달갑지 않은 숙명이기 때문이다.

관공서 법인카드를 부당하게 마구 사용하고 공무원들을 불법적 의전에 함부로 동원한 행동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범법행위이다. 한데 그러한 범법행위를 현직 대통령의 정치적 경쟁자의 가족이 저질렀다면 사정이 미묘하고 복잡해진다. 더군다나 경쟁자 본인을 법의 심판대에 반드시 세워야 한다면 부부를 동시에 사법처리해만 하는 곤혹스러운 경우가 발생하고 만다.

필자는 법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이다. 대신 남에게 법을 준수하라고 종용하는 ‘내로남불’은 하지 않는다. 나도 못 지키는 법을 어떻게 타인에게 지키라고 강요할 수가 있겠는가?

법률과 도덕과 상식을 우습게 알기로는 이재명 후보 배우자 김혜경 여사나 윤석열 당선인의 아내인 김건희 여사나 국민들 시각에서는 피차일반이다. 대중의 인식에서 부인들 층위에서는 윤석열과 이재명 간에 아무런 차별성과 변별력이 없는 셈이다.

배우자들이 불미스러운 방향으로 난형난제 형국인 형편에서 김혜경 여사까지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는 사태는 대장동 사건의 총체적이고 발본적인 재수사를 정치보복 프레임의 소용돌이 속으로 필연적으로 끌어들이게 된다. 국민들이 염원하는 명확한 진상규명과 일벌백계의 책임자 처벌은 간데없이, 소모적이고 낭비적인 여야의 정략적 이전투구만 남는 것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검찰총장으로 재임하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수사와 기소를 진두지휘한 경력이 있다. 정 전 교수는 법원에서 유죄선고를 받고 여전히 영어의 몸으로 있다. 이런 와중에 김혜경 여사까지 사법적 단죄를 받는다면 윤석열 정부는 ‘정적들 배우자 킬러’라는 썩 아름답지 못한 평판에 임기 초반부터 시달릴 우려가 있다.

국정 운영에서건, 사업체 경영에서건, 심지어 대학입시 준비에서건 선택과 집중은 성공의 길에 확실하게 도달하는 필수전략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작금에 너무 많은 전선에서 너무 많은 적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가뜩이나 방대하고 방만하게 펼쳐진 전선에 대선에서 경쟁했던 후보자의 배우자와의 지루하고 지저분한 전투까지 추가되어선 안 될 것이다. 대통령 5년 임기 금방이다.

* 글쓴이는 정치웹진 '서프라이즈' 초대편집장,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이준석이 나갑니다> 공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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