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리 징수’ 득보다 실이 크다 

대통령실이 지난 6월 5일 KBS(한국방송)의 TV수신료 분리 징수 방안을 마련하라고 방송통신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권고했다. 지금까지는 월 2500원의 TV수신료를 전기요금에 합산해 징수하고 있는데, 관계 법령을 개정해 전기요금과 별도로 징수하라고 사실상 재촉한 형편이 되었다.

사진:  국민의힘은 8일 대통령실이 추진 중인 TV 수신료 분리 징수 도입을 철회하면 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한 김의철 KBS 사장을 향해
사진: 국민의힘은 8일 대통령실이 추진 중인 TV 수신료 분리 징수 도입을 철회하면 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한 김의철 KBS 사장을 향해 "조건을 달지 말고 당장 사퇴하라"고 촉구했다.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여당 간사인 박성중 의원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김 사장의 행태는 'KBS가 망하든 말든 간에 관심 없고' 자신의 정치적 몸짓을 키우려는 정치 활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김 사장이 더불어민주당에 내년 공천이라도 약속받은 것인지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비난했다.

대통령실은 지난 3월 9일~4월 9일 국민참여토론을 통해 ‘TV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함께 징수하는 현행 통합 징수방식의 적절성과 합리적인 수신료 징수 방안’에 대한 여론을 수렴했다. 그 결과 전체 참여 8251표 가운데 96.5%(5만6226표)가 징수방식 개선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적법성 여부는 여전히 물음표이다.

이해 당사자인 KBS 김의철 사장은 지난 8일 “전임 정권에서 사장으로 임명된 제가 문제라면, 사장직을 즉각 내려놓겠다”며, “분리징수 추진을 신속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다. 사실상 현 정부의 방송장악 시도를 간접적으로 항의한 셈이다.  

TV 수신료를 전기요금에 통합 징수하는 제도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부터 한전에 수신료 징수를 위탁해왔다. TV 수신료와 전기요금을 통합 징수하는 제도가 도입된 것은 공영방송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효율적으로 충원하기 위해서였다. 방송법 시행령은 한국방송의 위탁을 받은 기관이 수신료를 징수할 때 ‘(자기) 고유 업무와 관련된 고지 행위와 결합하여 이를 행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런 법령에 따라 한국전력이 한국방송의 위탁을 받아 전기요금 고지서를 통해 수신료를 함께 징수해왔다. KBS에 따르면, 한전 위탁징수 전인 1993년 52.6%였던 수신료 납부율은 2021년 기준 99.9%다. 한국방송의 자료를 보면, 한전 위탁 이전에는 수신료 수입액의 33%가량을 징수 관련 비용으로 지출했는데, 위탁 이후 그 비율이 10% 수준으로 낮아졌다. 

현재 KBS 수신료 수입은 지난해인 2022년 기준 전체 재원의 45%인 6934억원 규모다. 이처럼, 공영방송이 공정하고 품격 있는 방송을 구현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재원을 보장하자는 취지로 정착된 ‘수신료 통합징수’가 다시 ‘분리 징수’라는 위기국면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는 중이다.

▶ ‘법원과 헌법재판소’ 정당하다.

그동안 여러 차례 통합 징수가 부당하다는 취지의 소송이 제기됐지만,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한국방송 쪽의 손을 계속해서 들어줬다. 통합 징수는 수신료를 공평하게 징수하기 위한 것으로 실제로 도입 이후 징수율이 높아지고 비용은 절감되는 점에서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방통위 전체회의
사진: 방통위 전체회의

또 수신료는 특별부담금으로 당사자에게 납부 여부에 대한 선택권이 없고, 전기요금과 수신료를 분리해 납부할 권리도 없다는 점에서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수신료 징수 자체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는 민주주의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며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시대에 역행하는 분리 징수의 강행 움직임은 사회적으로도 굉장히 많은 비효율의 역기능이 예견된다. 또 공영방송 KBS가 스스로의 공적 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예측 불허의 수많은 제약이 속출할 수 있다. 만일 분리 징수가 현실화 되면 KBS 공영방송은 곧바로 재정적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수신료 수입이 줄면, 한국방송은 자구책으로 상업광고 의존도를 높이거나 공익성 높은 프로그램을 축소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수신료는 단지 KBS만의 문제가 아닌, 재난방송과 장애인 방송, 국제방송 등 공적 영역을 담당하는 공영방송을 국가가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중차대 문제이다. 

그동안 한국전력에 위탁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게 되면, 수신료 수입이 절반 이하로 줄 것이 확실하다. 당장 5000억 가량의 재원 부족 상태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공영방송을 아예 없애지 않고 대안 부재인 상태에서 꺼낸 카드라면 이의 후폭풍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우선 재원 마련을 위해 KBS1의 광고를 전면 허용해야 하는데, 한정된 광고시장에 KBS라는 공룡이 들어가게 되면 결국 MBC, SBS는 물론, TV조선, 채널A 등 다른 방송사들의 광고 수익을 잠식하게 될 것이다. 수신료 분리 졸속 징수는 공적 시스템의 붕괴는 물론, 방송시장에 대한 대혼돈을 연쇄 파생시킬 것이다.

또한 여기에서 간과해서 안 될 것은 현 행정부와 여권의 방송장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농후 하다는 점이다. 지난 5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은 한상혁 방통위원장 면직안을 승인하며 지난 1년 넘게 지속된 ‘한상혁 찍어내기’에 방점을 찍었다. 

대통령실의 한상혁 위원장 면직 사유는 ‘검찰의 기소’다. 검찰은 5월 2일 한상혁 위원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2020년 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점수가 수정되었는데, 이것이 고의적으로 이뤄졌으며, 이 과정에 한 위원장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방통위법) 제8조는 방통위원 신분과 관련해 “방통위법 또는 다른 법률에 따른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면직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한상혁 위원장이 국가공무원법상의 의무를 위반했기에 면직 대상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한 위원장의 임기는 오는 7월 31일로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는데도 한 위원장을 면직시킨 것은 방통위 장악을 서두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방통위 상임위원은 위원장을 포함해 모두 5명으로, 대통령 몫 2명(위원장과 상임위원 1명), 여당 몫 1명, 야당 몫 2명이다. 현재 여당 몫 김효재 상임위원이 있으며,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이상인 변호사를 상임위원으로 임명했다. 

윤 대통령이 위원장까지 교체할 경우 여권 쪽 3명, 야당 쪽 1명(김현) 구조가 된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추천한 최민희 전 의원에 대해서는 ‘정치 편향성’과 ‘허위사실 유포’ 혐의 등을 들어 임명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면직된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6월 1일 서울행정법원에 면직무효소송을 제기하고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했다.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와 기소, 이후 대통령실의 면직 절차 돌입 등 지난 1년간 한상혁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의 언론 장악 논란의 최전선에 놓여 있다. 

▶ 당리당략에 ‘편중된 인사 배제’ 

언론단체들은 특히 정부·여당의 공영방송 장악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정점에는 이명박 정부 초대 홍보수석이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 직후 대외협력특별보좌관으로 위촉된 이동관씨가  면직된 한상혁 위원장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12일 오후 방송통신위원회가 위치한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등 노조 관계자들이 방통위의 공영방송 수신료 분리 징수 시행령 추진에 반대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12일 오후 방송통신위원회가 위치한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등 노조 관계자들이 방통위의 공영방송 수신료 분리 징수 시행령 추진에 반대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전 수석은 이명박 정부 시절 정연주 KBS 사장 해임, YTN 기자 해고 등 굵직한 언론 장악 시도의 선봉에 섰던 한국 언론의 흑역사를 쓴 인물이다. 아울러 지난 2월 자녀의 학폭 문제로 국수본부장 취임이 임명 하루 만에 무산된 정순신 변호사의 사퇴의 악몽을 생생히 떠올리게 한다. 이동관 특보의 자녀 학폭은 이전 정순신 변호사의 자녀 문제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여론에 맞서 강행 여부를 저울질 하는 것은 그 저의를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와 함께 요즘은 TV 수상기가 아닌 PC나 휴대전화로 TV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 수신료 일괄 징수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프로그램 채널도 수백 개로 폭증해 KBS를 안 보는 시청자들이 늘고 있는 만큼 수신료를 강제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때문에 “방만한 경영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시청자들에게 수신료 납부 선택권을 돌려줘야 한다”는 따끔한 지적의 일면만큼은 겸허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현재 한국방송 전체 재원에서 수신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45%에 이른다는 점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는 공영방송 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무책임한 발상이다. 돈줄을 죄어 공영방송을 길들이려는 의도라면, 언론 자유 훼손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이처럼, 언론 종사자들은 KBS는 수신료 징수 방법 변경은 공영방송 폐지 여부와 직결된 중요한 사안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되는 분리징수보다는 공영방송 재원 체계 전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가 “공영방송에 대한 신뢰가 비교적 크고, 조세에 대한 효능감이 존재하며, 국가나 정치가 미디어의 독립성을 침해하지 않는 전통이 있다”는 점을 홀대한다면, 이는 소탐대실의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상당하다.

그렇기 때문에 수신료가 특정 공영방송 종사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디어 환경 전반의 건강성을 담보하고 특히 ‘사회적 공공재’라는 인식을 지금보다 더 명료히 지각하고 개선하는 가열찬 노력이 필요한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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