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중심의 정당은 신당 성공을 위한 필요악이다

최진석의 안철수 학습효과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주도하는 「한국의 희망」이 2023년 8월 28일 월요일, 여의도에 자리한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중앙당 창당대회를 거행했다. 지난 6월 발기인 대회를 개최한 한국의 희망은 중앙당 창당대회에 앞서서 서울, 부산, 광주, 경기, 전남의 5개 지역 시도당 창당대회를 치른 바 있다. 이로써 한국의 희망은 다양한 신당 추진 세력들 가운데 최초로 공식적 정당의 틀을 갖추게 되었다.

양향자 의원과 금태섭 전의원 모습
양향자 의원과 금태섭 전의원 모습

한국의 희망이 출범한 일이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이 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의힘에 사실상 흡수합병되면서 소멸한 제3지대 부활의 화려한 신호탄이 될지, 아니면 양향자 의원 개인의 몸값만 올리고 싱겁게 마무리되는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고 말지는 현재로선 정확히 예측하기가 어렵다.

한국의 희망은 양향자 의원과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의 공동대표 체제로 첫발을 내디뎠다. 최진석 교수는 작년 대선 정국에서 안철수 의원의 멘토로 활동하며 ‘안철수 대통령 만들기’에 힘을 보탰었다. 안철수가 후보 단일화를 이유로 대통령 후보직을 중도 사퇴하고, 그 후 국민의당이 사라지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자연스럽게 정리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치인 안철수는 주변 사람들과 매끄럽지 못하게 결별해온 걸로 유명하다. 이를 감안하면 최진석은 안철수와 비교적 뒤끝 없이 깔끔하게 헤어진 셈이다.

그럼에도 확실한 부분은 최진석이 ‘안철수 학습효과’를 경험하면서 독자생존이 가능한 신생 정당을 반드시 만들어야겠다는 신념을 더욱더 강하게 굳혔으리라는 것이다. 만에 하나, 한국의 희망이 기성 거대 양당들 중 하나와 손을 잡으려고 시도할 시에 최 공동대표가 강력히 제동을 걸 것으로 필자가 전망하는 까닭이다.

신당은 정치적 평등주의에 매몰되지 말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대표해온 기득권 거대 양당 체제는 멀리는 이승만 정권의 자유당 시절부터, 가까이는 현행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1988년 이래로 한국정치의 최우선적 극복 대상이었다.

사진: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은 16일 야권 통합신당의 당명을 '새정치민주연합'으로 결정했다.
사진: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은 16일 야권 통합신당의 당명을 '새정치민주연합'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조봉암의 진보당부터 시작해 안철수의 국민의당에 이르는 제3당의 역사는 그야말로 시시포스의 고되고 비극적 운명을 방불하게 했다. 힘들게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놓으면 해당 정당은 대선 패배나 당수의 갑작스러운 유고 등으로 말미암아 순식간에 허망하게 허물어지기 일쑤였다.

식자층을 중심으로 지금의 선거법을 개정해야만 한다는 운동은 오래전부터 전개되어온 터이다. 그런데 현재 시스템의 수혜자인 거대 양당이 순순히 변화를 수용할 리 만무하다. 아래로부터의 선거법 개정이 실제로는 불가능한 연유이다. 따라서 정답은 적대적 공생체제를 구축ㆍ만끽해온 기존 거대 양당에 몸담지 않은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위로부터의 선거법 개혁을 밀어붙이는 길뿐이다.

신당을 하려는 사람들은 좋은 정책과 공약을 만들고, 합리적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면 민심의 지지가 저절로 따라올 것으로 믿는 경향이 짙다. 과연 그럴까? 지난 30년 동안 신당이 성공한 주요한 경우로 두 가지가 손꼽히고 있다. 첫째는 1992년 제14대 총선 국면에서의 통일국민당의 약진이다. 둘째는 2016년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불었던 국민의당 돌풍이다.

두 사례의 공통분모는 정주영과 안철수라는 기업인 출신의 유명인이 각각 당을 이끌었다는 데 있다. 메시지가 강했던 것이 아니라 메신저가 강했던 것이다. 성공하는 신당일수록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인물 중심의 정당이 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사회 구성원 전부가 비슷한 수준의 소득을 누리고 비슷한 수준의 재산을 가져야 한다는 경제적 평등주의는 본래의 선하고 유토피아적인 의도와 달리 모두가 못사는 참담하고 디스토피아적 결과를 빚어내곤 했다. 이러한 경제적 평등주의의 해악에 대해선 이미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반면 정치적 평등주의의 폐해와 관련해서는 상대적으로 인식이 희박하다. 정치적 평등주위를 경계하자는 게 독재를 옹호하거나 혹은 왕정을 부활하자는 의미는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기 바란다. 여기에서의 정치적 평등주의란 특정 정당이나 정파 안에서 특정 인물이 독보적인 대중적 인기를 누리게 되면 당내 민주주의가 훼손될 것이라고 지레짐작으로 걱정하는 흐름을 가리킨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신당이 망하는 제일 중요하고 일차적 원인은 대선주자의 부재에 있다. 그러므로 신당과 존속과 성공을 위해선 대선주자의 존재는 필수라 하겠다.

신당의 구심점 겸 접착제 역할을 담당할 대선주자가 반드시 현재 기준으로 유력 대선주자일 필요는 없다. 관건은 유력 대선주자와 군소 대선주자 사이엔 샛강이 흐르고, 군소 대선주자와 대선에 도전할 의향이 없는 일반 정치인 사이에는 한강이 흐른다는 점이다.

민중이 인터넷과 모바일로 자신의 의사를 활발하게 표현하는 작금의 SNS 시대에서 정당은 대중음악 시장에서의 아이돌 그룹과 유사한 성격을 띤다. 거대 정당이 굴지의 대형 유명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아이돌 그룹이라면, 신생 군소정당은 이름 없는 군소 기획사에서 가요계에 데뷔시킨 아이돌 그룹이다.

군소 기획사의 아이돌 그룹은 구성원 중 한 명이 먼저 선도적으로 인지도를 쌓은 다음 팀도 인기를 얻도록 추동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채택해왔다.

신생 군소 정당의 처지도 마찬가지이다. 정당에 속한 인사들 중 누군가가 대선주자로 발돋움함으로써 당이 더 많은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확보하도록 견인해야 한다. 바람직하지는 않을지언정 그게 신생 군소 정당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민심에 뿌리를 내리는 검증된 지름길이다.

한국의 희망에 이어 금태섭 전 의원이 주축이 된 ‘새로운 선택’도 곧 창당될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새로운 선택이 내년 총선 시기에 유권자들의 선택지 안에 들어가려면 금태섭이 어떻게든 대선주자 반열의 말석이라도 차지해야만 한다. 이는 한국의 희망에게도 당연히 적용될 절박한 생존의 원리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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