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단식과 최병렬ㆍ황교안의 단식은 어떻게 달랐나

이재명의 단식투쟁과 윤석열의 폭식행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3년 8월 31일을 기해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건물 앞에서 비장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정부에 의해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사태를 막을 마지막 수단은 자신의 무기한 단식뿐이라며 현재의 집권세력을 향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① 민주주의 훼손을 멈추고 민심과 소통할 것

②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천명하고 일본의 행위를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할 것

③ 국정의 전면적 쇄신과 개각을 단행할 것

조금 성급한 느낌은 있지만 필자의 결론을 먼저 얘기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전무하다.

원내에서 압도적 다수 의석을 점유한 제1야당의 당수가 정권의 무능과 폭주에 항의해 곡기를 끊겠다고 전격적으로 선언한 바로 그날, 윤 대통령이 수산물 소비를 장려하겠다며 김대기 용산 대통령실 비서실장 등을 대동하고서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을 방문해 우럭탕 등으로 웬만한 인터넷 유튜브 먹방 못잖은 푸짐한 오찬을 즐긴 일은 윤석열과 이재명, 이재명과 윤석열이 당분간 접점 없는 평행선을 달릴 것임을 상징적으로 예고하고 있다.

정치의 세계에서는 진선진미하게 이타적 정치인도 없고, 완벽히 이기적 정치인도 없다. 아주 특이한 경우를 예외로 한다면 대다수 정치인은 공적 사명감 반, 사적 욕심 반으로 움직이기 마련일 테고,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 모두 그러한 유형에 속한다. 따라서 이재명이 순수하게 나라와 국민만 생각하며 단식을 결행했다고 분석하는 건 과도한 정략적 칭송이, 검찰의 수사망을 피하려는 꼼수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고 해석하는 건 한 지나친 악의적 폄하가 각각 될 터이다.

1987년에 탄생한 현행 헌법 체제에서 현역 제1야당 대표의 단식은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재명 대표의 경우까지 포함해 통틀어 네 번째이다.

첫 번째는 1990년, 노태우 정부에 지방자치제의 실시를 촉구했던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의 단식이다. 두 번째는 노무현 정부에 측근비리 특검법안 채택을 압박했던 2003년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단식이다. 세 번째는 문재인 정부에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폐기 철회와 공수처법 추진 취소를 채근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농성이다.

유력 정치인이 벌이는 농성투쟁의 흥망은 나중에 집권의 꿈을 실현했는지 여부로 판가름 되는 법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단식은 그가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된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성공한 단식이었다. 반면, 최병렬 전 대표와 황교안 전 대표의 단식은 그들의 정치적 운명이 이후 급전직하했음을 고려한다면 철저히 실패한 단식으로 끝나고 말았다. DJ의 단식투쟁과 비교해 최병렬과 황교안 두 보수 정치인의 단식농성은 명분과 당위성이 부족하다는 국민적 평가를 받은 탓이었다.

성공한 단식과 실패한 단식의 뚜렷한 차이는

이재명 대표는 무척이나 절박한 심정으로 단식농성의 결단을 내렸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가 서 있는 정치지형은 그리 녹록하지가 않다.

당장 9월 1일 금요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정기 여론조사 지표를 살피면 더불어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27퍼센트까지 하락했다. 윤 정권이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친정이 연루된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에서부터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의 총체적 부실운영에 이르기까지 온갖 악재에 사면초가로 휩싸인 상태임을 감안하면 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워도 너무나 실망스러운 성적표일 것임에 틀림없다.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에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 비율도 1퍼센트가 떨어진 33퍼센트로 기록됐다는 점이다. 이재명도 죽을 쑤고 있지만, 수렁에서 헤매고 있기는 윤석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는 본인과 윤 대통령이 50보 100보라는 데 마냥 만족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이재명은 윤석열과 다르게 아직 대통령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잣집과 가난한 집이 나란히 돈을 못 벌면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쪽은 언제나 후자이듯이, 여당도 국민의 외면을 받고 야당도 민심의 눈 밖에 나면 결국은 야당만 손해다.

이재명 대표는 배수진을 쳤다. 더는 뒤로 물러날 곳이 없다는 뜻이다. 군인의 배수진은 적을 무찌르기 위해 치는 것이다. 정치인의 배수진은 민중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재명의 단식농성은 어떻게 해야 폭넓은 민심의 공감과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

김대중의 단식이 성공한 이유와 최병렬과 황교안의 단식이 실패한 까닭을 다시금 반추해보자. DJ의 단식은 민주주의의 필수적 토대인 풀뿌리 지방자치의 부활이라는 일반 대중의 보편적 염원을 관철하려는 목적의 단식이었다. 정치권 용어로 중도층까지는 바라보는 확장성 충만한 단식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최병렬과 황교안의 단식은 전통적 지지층의 결속을 도모하려는, 곧 집토끼들의 이탈을 방지하려는 목표를 띤 내수지향형 단식이었다.

제1야당 대표이자 직전 대통령 선거에서 박빙의 표 차이로 2위에 머문 후보자의 돌연한 단식은 언론의 이목과 여론의 관심을 잡아끌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표에게는 간만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기회인 셈이다. 한동안 무대 중앙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을 이재명이 얼마나 확장력 있는 메시지를 발신하느냐가 이번 단식의 성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할 전망이다. 정치인이 지지층을 넓히면 살고 지지층을 좁히면 죽는 현상은 선거 때나 단식 때나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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