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제5차 중동전 위기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 최소 1400명이 사망한 이후 레바논의 무장단체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국경을 넘나들며 포격을 주고받았다. 이제 전쟁은 요르단강 서안지구, 시리아·레바논 등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1973년 욤키푸르 전쟁 이후 50년 만에 5차 중동전쟁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사진: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난 19일(현지시간) 레바논 국경 인근의 도로를 걷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교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선이 친이란 국가 레바논의 무장세력 헤즈볼라의 가세로 이스라엘 북부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난 19일(현지시간) 레바논 국경 인근의 도로를 걷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교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선이 친이란 국가 레바논의 무장세력 헤즈볼라의 가세로 이스라엘 북부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동지역은 이미 지금까지 1948~1949년 제1차 중동전쟁(이스라엘 건국전쟁), 1956년 제2차 중동전쟁(수에즈 전쟁),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 1973 제4차 중동전쟁(욤키푸르 전쟁)까지 4번의 전쟁을 치렀다.  

이번 사태에서 최대의 복병이자 뇌관은 팔레스타인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전폭 지원하고 있는 이란이다. 이들 무장단체에 막대한 군사 지원을 해 온 이란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전면 기습 공격을 시작으로 무력충돌이 발발하자 서방과 대립각을 세우며 아랍 국가들에 이스라엘 압박 수위를 높일 것을 촉구해 왔다. 

이슬람 시아파의 나라인 이란은 그동안 이스라엘에 대적하고 이슬람 혁명을 확산시키기 위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이슬라믹 지하드,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물론 예멘 내 후티 반군, 시리아 바샤르 아사드 정권 등을 지원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국가들과 역내 패권을 다퉈왔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22일 미 NBC 방송에서 “이란 대리인들의 공격에 의해 갈등이 격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란은 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어느 선까지 개입해야 할지를 고심하는 모습이다.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지난 15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공격을 계속할 경우 헤즈볼라 등 저항 세력이 '선제 조치’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실상 저항세력을 내세워 이란이 이-팔 전쟁에 개입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몇 시간 후 유엔 이란 대표부는 “이스라엘이 이란의 이익이나 시민을 공격하지 않는 한 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24일에는 아미르압돌라히안 장관이 미국에 이-팔 분쟁에 개입하지 말라고 요청하는 공식 메시지를 두 차례 이상 보냈다며 확전 방지에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이란이 이-팔 분쟁에 다소 신중한 모습을 견지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만만치 않은데다, 미국 역시 2개의 항공모함 전단을 동지중해에 배치하면서 이란의 일거수일투족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을 공격한다면 이란 역시 존립을 위협받을 수 있고 경제난으로 인한 국내 반정부 여론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 이란 경제는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 핵협정 파기 후 대규모 경제 재제를 부활시키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히잡 시위’를 비롯한 반정부 시위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딜레마 상황에 놓인 것은 연일 지상전 엄포를 놓고 있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지상 작전을 강행해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나온다면 이란이 지원하는 헤즈볼라의 참전으로 ‘두 개의 전선’에서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와 전투를 벌이는 동시에 북부에서 헤즈볼라를 대적해야만 한다.

이스라엘과 이란, ‘협력과 대립'의 역사

사진: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로켓 포탄(왼쪽)과 아이언돔 요격 미사일(오른쪽)
사진: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로켓 포탄(왼쪽)과 아이언돔 요격 미사일(오른쪽)

이란의 팔레비왕조 붕괴 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과 이란은 관계가 비교적 좋은 편이였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로 1970년대까지 이란과 이스라엘 두 나라 관계는 비교적 원만했다. 이란은 투르키예(옛 터키)에 이어 이슬람국가로서는 두 번째로 이스라엘을 독립국으로 인정한 나라였다. 

당시 이란은 오늘날과 달리 친미성향에다 세속주의를 추구했고 수니파 위주의 이슬람 집단인 아랍연맹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때문에 1967년 이스라엘과 아랍국들의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에 석유를 제공할 정도였다.

이스라엘 역시 이슬람국가이지만 아랍국이 아닌 이란을 연대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군사협력도 활발해 1977년부터 79년 사이 두 나라가 함께 미사일 개발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런데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혁명이 일어났다. 친미 왕정을 붕괴시키고 혁명을 이끈 아야툴라 호메이니는 이스라엘에 대해 국가의 합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단교 조치를 취했다.

그럼에도 두 나라의 협력은 실제로는 단절되지 않았다. 1980년 이라크가 이란을 공격하면서 8년간의 이란-이라크 전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서 이란을 은밀히 도왔다.

1981년 이스라엘은 ‘오페라 작전(바빌론 작전)’을 통해 이라크 오시라크의 원자로를 폭격했고 이란에는 무기를 공급했다. 이스라엘은 1981~1983년 이란에 5억달러 상당의 무기를 판매한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전쟁 기간 테헤란 북쪽의 비밀기지에 이스라엘 군사·기술자문관 100여명이 주둔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란-이라크 전쟁 및 냉전이 종식된 후 미국은 걸프전을 일으킨다. 1980년대에 미국의 지원을 받았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1990년대가 되자 갑자기 ‘세계의 악당’이 됐다. 이라크는 걸프전 당시 국토의 절반가량이 비행금지구역으로 묶였고 미국이 주도한 제재 속에 사면초가의 신세가 됐다. 

이라크가 무력해지면서 중동 한복판에 정치적 진공상태가 만들어졌고 이란은 그 틈을 교묘히 이용했다. 시아파 이슬람 무장투쟁 조직 헤즈볼라가 1980년대 초 이스라엘의 레바논 점령기 동안 이란의 재정적·군사적 지원을 받으며 등장했다.

헤즈볼라는 1982년 레바논 전쟁에서 당시 호메이니를 지지하며 이스라엘에 대항한 시아파 민병대에서 출발해 당시 이스라엘이 차지했던 레바논 지역에서 저항 활동을 벌였다.

레바논 정규군보다 강력한 무력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헤즈볼라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레바논 정부에 진출했으며 2008년 8월 레바논의 새 내각은 헤즈볼라를 공식 인정하며 ‘점령지를 회복하는’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을 승인했다. 

이해 당사자 ‘실리적 이해 공유해야’

사진: 지난  21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게 납치된 이들의 친인척들이 사진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지난 21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게 납치된 이들의 친인척들이 사진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1993년 9월 13일 체결된 오슬로 협정(Oslo Accords)은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아라파트 의장이 클린턴 미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백악관 정원에서 서명한 평화협정이다. 사전 협상이 오슬로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슬로 협정’으로 불린다.

하지만 오슬로 평화협정 이후 이스라엘은 오히려 갈수록 우경화했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탄압도 전쟁범죄 수준으로 치달았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이란과 유지해오던 ‘차가운 평화’가 균열되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이란을 고립시킨 것은 ‘핵 의혹’이었다. 2000년대 초반 미국과 유럽으로 망명한 이란의 반체제 인사들이 핵무기 개발 의혹을 제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2005년 취임한 이란의 강경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지도에서 이스라엘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발언했고 홀로코스트를 부인했다.

2011년에는 이란 이스파한의 핵 시설이 폭파됐다. 이듬해 2월 폭로된 위키리크스(WikiLeaks) 문건에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쿠르드 전투원들과 함께 이스파한 폭발공작에 관여한 것으로 명기돼 있다.

중동 패권을 둘러싸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오랜 기간 앙숙 관계를 이어왔다. 두 나라의 갈등은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파 싸움과 밀접하다. 사우디는 수니파, 이란은 시아파 종주국이기 때문이다. 수적으로 보면 주류는 수니파다. 

전 세계 무슬림(이슬람교도인)의 80%가 수니파에 속한다. 사우디와 시리아, 이집트 등이 수니파가 주류인 국가다. 시아파는 수적으로는 열세이지만 이란과 이라크, 바레인 등이 이를 따르며 수니파 국가들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이란의 군사력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이란은 핵 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로 핵무기를 포기했지만 여전히 최고급 첨단 미사일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또 53만4000명이 넘는 현역군인들이 정규군과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에 포진해 있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는 이스라엘의 편을 들어왔고 러시아와 중국은 팔레스타인 편에 서왔다. 이런 대립 구도 때문에 이-팔 분쟁은 자칫하면 세계대전을 부를 수 있는 폭발력이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뿐 아니라 이란이나 사우디 미국, 러시아 등 모든 이해 당사자가 파국을 피할 수 있는 안전장치 구축에 나서야 위기를 넘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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