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국회 본회의 통과, 최종 입법 가능성은 낮아

9일 국회 본회의 개의 선언하는 김진표 의장(사진=연합뉴스)
9일 국회 본회의 개의 선언하는 김진표 의장(사진=연합뉴스)

이슈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들이 9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 법안'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상정해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이 법안의 강행처리를 시도하면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를 위한 무제한 토론)에 들어가겠다며 60명 이상의 발언자 명단을 준비해뒀다.

국민의힘은 그러나 오후들어 필리버스터를 전격 철회했고 법안은 통과됐다. 이에 따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가 주목된다. 국민의힘은 앞서 법안 처리가 강행되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실은 이미 "노란봉투법은 양곡법이나 간호법(윤석열 정부에서 이미 거부권 행사한 법안들) 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서 국회 통과시 거부권 행사를 예고했다.

대통령이 법안에 대해 다시 논의해달라는 거부권(재의요구)을 행사하면 국회는 재의 요구를 받은 날로부터 30일내에 같은 법안에 대해 재의결을 한다. 여기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찬성으로 의결하면 법률은 확정된다. 대통령은 확정된 법률를 지체 없이 공포해야 한다.

2009년 쌍용자동차 노조 파업 진압 장면(사진=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제공)
2009년 쌍용자동차 노조 파업 진압 장면(사진=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제공)

맥락

이른바 '노란봉투법안'은 파업 노동자에게 회사측이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물리지 못하도록 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약칭 노동조합법)' 2조와 3조의 개정안을 말한다. 

이 법안은 2009년 5월 22일부터 77일간 이어진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원들의 파업과 이에 대해 2014년 법원이 파업 참가 노조원들에게 47억원을 배상하도록 한 판결에서 비롯됐다.

쌍용차 파업 이후 해고 노동자들은 33명이 자살 등으로 숨지고 손해배상 판결에 따른 가압류에 시달렸으며 '블랙리스트'에 올라 재취업도 어려운 상황을 겪었다고 호소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 시민이 거액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된 노동자들에게 전해달라며 언론사에 과거 월급봉투를 상징하는 노란 봉투에 성금 4만7000원을 담아 보낸데서 '노란 봉투 캠페인'이 시작됐다. 

10만명이 같은 금액을 내 47억원을 모으자는 취지였고 실제 모금액이 15억원에 가까웠다.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은 법원 판결 이후 파업 참여자들을 뭉뚱그려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노동조합법을 개정해 기업이 노조 무력화 수단으로 손배소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후 19대와 20대 국회에서 이런 취지를 담은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2022년에 정의당 이은주 등 의원 56명이 노조법 개정안을 다시 발의했다. 이 법안 역시 여당의 반대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6월 30일 민주당 노웅래 의원 등 13명이 대안으로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 법안이 환노위를 거쳐 9일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손해배상 20년, 하청 20년, 죽음 내몰린 20년 특별사진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손해배상 20년, 하청 20년, 죽음 내몰린 20년 특별사진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개정안은 ▲손해배상 제한 ▲사용자 범위 확대 ▲노동쟁의 범위 확대를 규정하고 있다.

먼저 손해배상의 경우 거액 청구를 하지 못하도록 제한한다. 법원이 노조의 파업에 대해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노조원들이 공동 책임을 지도록 하는 현행 조항을 각 배상 의무자별로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도록 바꿨다.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회사 측이 손해에 대한 개별 노동자의 책임을 입증해야 한다.   

다음으로 법상 사용자의 범위를 '근로조건에 실질적 지배력이나 영향력이 있는 자'로 확대했다. 원청업체를 사용자로 보고 하청 업체 노동자가 교섭이나 쟁의를 할 수 있게 된다. 택배기사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도 택배 업체를 상대로 교섭과 쟁의를 할 수 있게 된다.

노동쟁의의 개념은 현행법의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분쟁'이라는 정의에서 '결정'을 삭제해 쟁의의 범위를 넓혔다. 

현행법상으로는 노사가 교섭에서 근로조건을 '결정'하지 못할 경우에만 쟁의를 할 수 있다. 임금협상이나 단체협약 협상에서 앞으로의 근로조건을 협상하다가 결렬되는 경우에만 파업 등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쟁의 개념을 '근로조건에 관한 분쟁'으로 하면 이미 협상이 이뤄진 과거의 근로조건에 대해서도 노조가 쟁의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사측이 노동관계법 절차를 지키며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에 들어간 경우 노조가 파업을 하면 현행법에선 이미 결정된 근로조건에 관련된 집단행동이어서 불법이 된다. 그러나 개정안에 따르면 합법이 된다.

윤석열 정부와 재계는 이런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파업이 일상화하고 기업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특히 재계는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집을 수 있다며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전망

노란봉투법은 입법하겠다는 야권의 의지가 강하다. '이번엔 끝까지 밀어부친다'는 분위기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은 올해 4월 국회를 통과했던 양곡법과 5월에 통과한 간호법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결국 폐기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국회가 노란봉투법안 등을 재의결해 통과시키려면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이번 법안에 찬성한 야당의 의원들은 모두 참석해도 현재 전체 298석의 3분의 2인 199석을 채우지 못한다. 국민의힘 의원 111명도 모두 참석해 반대할 것이기 때문에 법안은 통과되지 못할 전망이다. 

정병일 기자 jbi@newsfreezo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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