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새삼스럽지만 놀랄 일이 상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에 의해서다. 그는 지난 8일 한 방송 인터뷰를 했다. 거기서 “민주당 의원의 44%가 전과자”라고 말했다. 12일 탈당에 앞서 도덕성에 둔감한 민주당을 공격한 것이다.

정확한 숫자는 아니었다. 41%가 정확했다. 그는 사과하고 수정했다. 또 ‘41%’에는 민주화와 노동운동 과정에서 ‘처벌’ 받은 ‘억울한 전과자’(41명)까지 포함된 것이다. 이들을 제외한 순수전과자는 27명(16.4%)이다. 

27명도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민주당이 ‘범죄자의 집단’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수치다. 국민은 단 한 명의 범법자라도 국회에 진출하는 걸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법을 우습게 보는 사람이 법을 만드는 국민대표가 될 수 없다는 게 국민 정서다. 문제는 21대 국회에 그치지 않는다. 민주당이 22대 국회의원 공천과정에서 ‘범죄자 옹호 집단’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어 왔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지난 1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당 및 신당 창당을 선언한 뒤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지난 1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당 및 신당 창당을 선언한 뒤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불행하게도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민주당은 ‘공직선거후보자 검증위원회’(검증위)를 설치했다. 검증위는 22대 국회의원 총선거 예비후보자 및 후보자의 자격심사와 도덕성 검증을 담당하는 기구다. 공천에 앞서 공천 적격 여부를 가리는 사전 심사에 나섰다.

정당사상 없던 일이다. 그 어떤 선거보다 엄격하고 철저하게 예비 후보를 검증하겠다는 민주당의 의지로 해석됐다. △강력범 △음주 운전자 △뺑소니 운전자 △성폭력·성매매 △가정폭력 아동학대 범죄 △투기성 다주택자를 부적격 기준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검증위의 최종결과는 국민을 크게 실망하게 했다. 국민의 도덕적 수준과는 큰 격차를 보인다. ‘범죄자’ 다수가 검증 절차에서 무사히 통과됐다. ‘미투 파문’으로 실형을 산 정봉주 민주당 교육연수원장, 폭행과 음주 운전 전과가 있는 서철모 전 화성시장이 적격 대상으로 분류됐다.

그는 술자리에서 깨진 병으로 후배의 머리를 내리친 폭력전과자다. 음주 운전으로 200만 원 벌금도 받았다. 

▶ 공천 공정성 논란 낳은 민주당 검증위 

재판 중인 예비 후보 적격자도 다수다. 주로 귀에 익은 사람이다. 1심 재판에서 선거 개입 의혹으로 실형받은 황운하 의원, 뇌물 수수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된 노웅래 의원, 음주 운전 처벌을 강화하는 ‘윤창호법’을 공동 발의한 후 음주 운전 사실이 적발돼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이용주 전 의원도 적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물론 대장동 의혹 등으로 재판 중인 이재명 대표도 포함된다.

‘눈 가리고 아옹’ 식으로 검증을 한 게 아닌가. 국회의원 자질 검증이 빠진 하나 마나 한 검증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검증위가 비난을 감수하면서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 궁금하다. 당과 지도부가 미리 정해놓은 가이드라인대로 판정한 게 아닌가. 정치적 계산으로 급조된 검증위가 정치적으로 이용된 것인가. 아니면 이재명 대표의 전과 경력과 비리 혐의 때문인가. 검증이 부실했는가.

어느 경우든 국민을 무시한 판정이다. 공천은 정당이 선거에서 후보를 추천하는 제도다. 공천은 각 선거 후보자 선택과정에서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 결정에 도움을 준다. 정당의 다양한 이념과 정책을 보다 구체적으로 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유권자의 선택을 받고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게 공천의 기능이다. 그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면 당원과 유권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셈이 된다. 그것은 결국 정당민주주의에 발전에 도움이 된다. 그래서 ‘공천혁신’을 정당민주주의의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사진: 지난 12일 국회에서 '원칙과 상식' 조응천 의원 등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왼쪽부터 이원욱 의원, 정태근 전 한나라당 의원, 김종민 의원,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 조 의원
사진: 지난 12일 국회에서 '원칙과 상식' 조응천 의원 등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왼쪽부터 이원욱 의원, 정태근 전 한나라당 의원, 김종민 의원,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 조 의원

유권자 처지에서 보자. ‘정당 추천 후보’에게 신뢰를 보낸다. 정당의 검증과정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권자는 후보 개인보다는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게 보통이다.

특히 지역주의가 지배하는 특정 지역에서는 ‘공천=당선’이다. 그만큼 공천의 영향력이 크다. 국민이 납득할 만한 공정한 공천규칙에 따른 인물이 선택해야 한다. 공천작업이 투명하고 공정했다면 전과자는 물론 재판 중이거나 비리 혐의가 있는 사람이 검증위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뒤집어서 말해보자. 재판 중인 비리 혐의자도 출마할 수 있다. 최종 확정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공직 후보자가 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국민의 심판을 받으면 된다. 단 정당은 그런 사람을 공천해서는 안 된다. 공천에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 법을 무시하는 국민대표 용납 못 한다

민주당이 검증위를 만든 건 비판할 일이 아니다. 실행력을 갖춘 기구가 아니라면 만들지 않은 만 못한 것이다. 검증위가 그렇다. 보란 듯이 국민 바람을 외면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공천은 검증위의 결정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검증위의 적격판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공천자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이 정치개혁의 하나로 도입한 시스템의 공천과정을 거쳐야 한다. 시스템 공천은 당원 투표, 국민참여 경선 활용한 상향식 공천, 그리고 전략공천심사위원회를 통한 하향식 공천을 가미해서 최종적 공천자를 결정한다. 

민주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운 시스템 공천을 제대로 수행하라. 저절로 공천혁신이 될 것이다. 민주당의 불신을 불식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전과자와 비리 혐의자를 공천에서 배제하는 게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원칙대로 하면 된다. 그러면 전과자가 감히 국회의원 되려는 망상도 갖지 않게 되고, 정치지망생들이 처신에 더욱 조심하는 효과도 가져올 것이다.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은 “대한민국 최초로 ‘국민 참여 공천제’를 실현하겠다”라고 약속했다. 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경선은 물론 공천 기준 마련에도 국민이 참여하겠다는 의미다. 신선하다. 기구나 제도가 문제가 아니다.

실행력으로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입바른 구호가 아닌 실천을 요구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선거기간에만 유권자를 두려워하는 듯한 위선일 뿐이다. 

민주당에 묻는다. 진정 국민이 정한 공천 기준을 존중할 것인가.

법을 무시하는 사람이 법을 만드는 헌법기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국민의 공천 기준이다. 국민에게 전과자를 선택해달라는 요구만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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