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은의 한·중·일 생활이야기  

‘성난 사람들’ 에미상 11개 중 8개 분야 석권

지난 15일 한국 영화사에서 또 하나의 낭보가 날아들었습니다. 미국 LA 피코크 극장에서였습니다. 한국계 감독과 주연배우가 활약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이 프라임타임 에미상을 석권했습니다. 작품상과 작가상, 남녀 주연상, 캐스팅상, 의상상, 편집상을 포함해 8관왕을 차지했습니다. 후보에 오른 11개 부문 가운데 남녀 조연상과 음악상을 제외한 모든 상을 휩쓸었습니다. 

넷플릭스 '성난 사람들' 에미상 작품상 수상= 드라마 '성난 사람들'이 15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 피콕 극장에서 열린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미니시리즈·TV영화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2024.1.16
넷플릭스 '성난 사람들' 에미상 작품상 수상= 드라마 '성난 사람들'이 15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 피콕 극장에서 열린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미니시리즈·TV영화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2024.1.16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에미상은 ‘드라마계의 아카데미상’입니다. 에미상은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칸·베를린·베니스 영화제와 맞먹는 권위를 가진 상입니다. ‘성난 사람들’은 75회 에미상 수상작입니다. 한국계 이성진 감독이 감독상과 작가상을 받고, 한국계인 스티븐 연이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감독을 비롯한 수상자 모두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과 재미교포의 영예이기도 합니다.

혹시 ‘You guys were still beefing?’의 의미를 아시나요. ‘너희들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니?’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beef’가 바로 ‘성난 사람들’의 원제(BEEF)입니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소한 시비에서 남녀 주인공의 ‘분노’는 시작됩니다. 분노는 대응에서 저주로, 다시 응징으로 발전합니다. 끝내 복수극으로 치닫죠. 하지만 살인이 살인을 낳는 폭력 영화는 아닙니다. 블랙코미디죠. 인간의 밑바닥 감정인 분노가 적나라하지만 재미있게 표현됩니다. 

드라마에는 주제 의식을 담는 대사가 있게 마련이죠. 필자는 ‘분노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이었어’라고 생각합니다. 외로움, 불안, 죄책감, 질투, 자기혐오, 인정욕구‥‥‥. 이 모든 게 심리적 벼랑으로 몰리면 화가 치밀게 마련입니다. 분노가 과격한 다툼을 부르죠. 이 다툼 끝에 남녀 주인공은 비로소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이 작품의 시나리오도 쓴 이성진 감독은 이 작품에서 초지일관 ‘사람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을 말했던 것 같네요. 사람에 대한 이해 없이 모두 공멸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이죠. 

에미상은 우리에게도 친숙합니다. 이미 2022년 ‘오징어게임’이 에미상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이정재)을 비롯하여 6개 부분을 수상한 일이 있습니다. 비영어 작품으로 첫 수상 작품이었죠. 당연히 아시아권에서 수상 작품이 나오지 못했습니다.

기생충, 오징어게임 그리고 성난 사람들

이 때문에 에미상을 주제로 ‘한·중·일 3국의 생활이야기’를 이어갈 수 없습니다. 대신 2019년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칸국제영화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기생충>이 아시아 영화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6번째였습니다. <기생충> 이전에는 일본 영화가 5편, 중국 영화 한 편이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일본 영화로는 <지옥문>(기누가사 데이노스케 감독), <카케무샤>(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나카야마 부시코>, 우나기(이상 이마무라 쇼헤이), <어느 가족>(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등이 있습니다. 중국 영화는 첸 카이커 감독의 작품인 <폐왕별희>가 유일합니다. 이들 영화 모두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와 글로벌 이슈를 다루고 있는 게 특징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고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들 작품은 인간과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따져보는 일종의 도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위트홈' 시즌2(왼쪽)와 '파친코' 시즌1 /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1
 '스위트홈' 시즌2(왼쪽)와 '파친코' 시즌1 /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1

우선 각 작품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지옥문>은 12세기에 일어난 하이닌 반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전쟁이 나자 공주를 성에서 빼내기 위해 가짜 공주를 만듭니다. 공주를 돕던 사무라이가 그녀와 사랑에 빠집니다. 공주는 유부녀였습니다. 사무라이는 가족을 모두 죽이고 결혼하겠다고 난리를 칩니다. 어느 날 실제로 무장한 채 집으로 들어와 공주의 남편을 죽입니다. 하지만 살해된 사람은 가짜 공주의 남편이었습니다. 침입 사실을 알고 잠자리를 바꾼 것입니다. 왜곡된 사랑의 결말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일본 5회, 한국과 중국 1회 수상

<카케무샤>도 가짜 무사가 등장합니다. 다이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가짜 다이묘를 한두 명 두는 게 관례입니다. 그게 ‘카케무샤’인데요, 전국시대 때 다케다 켄지라는 다이묘가 있었습니다. 마침 그가 죽었습니다. 그를 대신하는 카케무샤의 정체성이 변화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나카야마 부시코>는 70세 먹은 어머니를 산속에 벌리는, 일명 ‘일본식 고려장’에 관한 얘기입니다. 이 영화에서 ‘어머니가 가는 날 눈이 와서 다행이다’라는 대사가 가장 가슴을 울렸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고통이 줄어들어 다행이라는 얘기지요. 가족애와 함께 고령화 사회의 문제를 정확하게 집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나기>는 삶과 사랑의 본질을 생각게 하는 휴머니즘 드라마입니다. 우나기(장어)가 알을 낳기 위해 수천km를 가는 것처럼 진심으로 살면 언제가 그 보람을 얻는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어느 가족>은 가족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입니다. 원제는 <좀비키 가조쿠>입니다. ‘좀비키’는 좀도둑입니다. 6명이 한 방울의 피도 섞이지 않은 ‘이상한 가족’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얘기입니다. 이상한 가족을 형태를 통해 정상 가족의 이데올로기 이면에 숨겨진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질문하고 있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가족 내 폭력과 아동학대, 외로운 노인 문제, 형제자매간의 불평등한 차별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이들이 선택한 이상한 가족 안에 담아냈습니다. <패왕별희>는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 아닙니까. 경극 배우의 성장 과정을 통해 중국 근대라는 시대적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준 영화죠. 

모두가 영화를 사회에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습니다. 필자는 무엇보다 <ㅊ>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비정하고 비인륜적이어서 그랬는데요. 나라야마는 산골 마을을 의미합니다. 부시코는 산을 경외하는 노래입니다. 노인을 버리는 전설을 토대로 만든 영화입니다. 나라야마에도 70세가 된 노인을 산에 버리는 인습이 있었습니다. 작품 속 주인공은 69살이 됐습니다. 너무 건강했습니다. 스스로 절굿공이로 생이를 뽑습니다.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죠. 이 역을 맡은 배우는 사카모토 스미코였는데요, 그동안은 주연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무명 배우였습니다. 자신을 캐스팅한 감독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것이었을까요. 사카모토는 자신의 생이빨을 뽑으며 열연을 펼쳤습니다. 그의 연기는 강하고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가 여우주연상을 받고 귀국할 때 기다린 것은 팬의 환호가 아니었습니다. 경찰의 포승줄이었습니다. 마약 복용 혐의를 받았습니다. 일본 경찰이 너무 야박한가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해야 하니까요.

수상 작품들, 인간의 문제를 따져보는 도구였다

‘나라야마 부시코’를 ‘일본식 고려장’이라고 소개했는데요. 우리나라에는 노인 유기라는 인습이 있었을까요. 없었습니다. 한 서양인이 일제강점기 때 일본 동화 ‘어매를 버린 남자’를 우리 민화로 각색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장례를 지내지 않는 자식은 귀향 보내고 상복을 입지 않으면 옥살이시켰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나옵니다. 유기한 시체를 거두어 초상 치루는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황금종려상의 미 크리틱스초이스 시상식 작품상 수상하는 이성진 감독
황금종려상의 미 크리틱스초이스 시상식 작품상 수상하는 이성진 감독

2018년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어느 가족>도 적지 않은 에피소드를 만들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가장 흥미로운 게 있습니다. 당시 아베 수상이 수상작 발표 때 축하 메시지를 보내지 않은 것입니다. 국민적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비난을 이기지 못한 아베 전 수상은 나중에 축하 인사를 보냈습니다. 기분이 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런 메시지는 받지 않겠다”라며 수령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또 <우나기>의 메가폰을 잡은 이마무라 감독은 황금종려상 수상식에 참석 못했습니다. <우나기>의 수상을 예상 못하고 먼저 귀국했기 때문입니다. 수상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는 마작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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