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은 NFZ수첩

지난달 13일 대만 총통(대통령) 선거 구도는 보수와 진보 대결이었다. 거대 이념전쟁으로 포장됐다. 여야는 친미냐, 친중이냐를 두고 싸웠다. 분리독립이냐 통일이냐를 두고 다퉜다. 막상 선거 결과는 의외였다. ‘제3세력 돌풍’이었다.

[대만 민중당 커원저 총통 후보]= 대만 총통 선거(대선)에서 제3 후보인 민중당의 커원저(64)가 현실에 불만을 품은 2030 세대의 지지를 얻고 있어 선거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고 홍콩 언론들이 보도했다. 홍콩프리프레스(HKFP)는 1월 7일 "대만 정치가 독립 성향의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과 친중 제1 야당 국민당으로 양극화된 상황에서 일부 유권자가 힘의 균형을 유지할 제3당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대만 민중당 커원저 총통 후보]= 대만 총통 선거(대선)에서 제3 후보인 민중당의 커원저(64)가 현실에 불만을 품은 2030 세대의 지지를 얻고 있어 선거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고 홍콩 언론들이 보도했다. 홍콩프리프레스(HKFP)는 1월 7일 "대만 정치가 독립 성향의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과 친중 제1 야당 국민당으로 양극화된 상황에서 일부 유권자가 힘의 균형을 유지할 제3당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제3세력의 대표주자인 커원저 후보가 무려 26.46%를 득표했다. 철통같던 거대양당 구도에 금이 간 것이다. 국민은 이념 대치보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민생에 관심을 보인 셈이다.

이번 선거로 제3세력으로 뿌리를 내린 대만민중당은 민심에 부합하는 정책에 집중해 왔다. 이를테면 세금 감면과 근로자 임금 인상, 정부의 투명성 제고 같은 것이다. 

이로써 대만에서도 패권정치가 위협받게 됐다. 반대로 정치의 실용성은 높아졌다. 여야 양당의 대립 구도에서 중재와 협력이란 공간이 열렸기 때문이다. 대만 정치에 희망을 연 것은 역설적이다. 그 원인이 거대양당에 있다.

여당인 민주진보당은 무능하고 부패했다. 경제정책 실패했다. 행정은 불투명했다. 거기다가 도덕성마저 무너졌다. ‘성추행 당’이란 비난받았다. 야당인 중국국민당은 무기력했다. ‘꼰대’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야 양당은 국민의 요구를 외면한 셈이다. 결국 국민은 거대양당에 경고를 보냈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 정치환경과 선거환경은 대만과 샴쌍둥이다. 거대양당이 정쟁으로 날을 샜다. 정치의 본질인 민생을 외면했다. 국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갈등 해소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거대 야당은 입법 독주했다. 이재명 대표의 방탄을 위한 사당화도 서슴지 않았다.

여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의 당무 개입이 비일비재했다. 국회의 입법권을 거부권 행사로 맞섰다. 여기에 여야 협치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거대양당이 증오와 혐오에 휩싸여 있었다. 피를 부르는 싸움에 세월 가는 줄 몰랐다. 그러면서도 서로 이득을 챙기는 데 혈안이 됐다. 적대적 공생 관계를 유지해 온 셈이다. 거기에 맹목적으로 지지를 보내는 팬덤이 편승했다. 극한 대립은 확대 재생산됐다. 혐오와 대결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폭발 직전에 이르게 된 원인이다. 

▶ 국민의 25%가 신당을 지지한다

우리나라도 총선거를 앞두고 있다. 불과 60여 일 남았다. 우리 유권자는 대만처럼 ‘제3세력’에 캐스팅보트 역할을 부여할 것인가. 지난달 26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가 주목받고 있다. 직접적으로 “‘제3지대’ 정당 후보의 당선을 바라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유권자의 24%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제3지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어느 선거 때보다 높다는 게 확인됐다. 이번 조사에 드러난 ‘24%’는 무당층이 아니다. 분명하게 지지 의사를 밝힌 숫자다. 반면 여당과 제1야당은 33% 동률을 얻었다.

거대양당을 위협하는 지지율임이 틀림없다. 거기에 제3세력이 하나로 결집한다면 그 위력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나중의 문제다. 여론조사에 국민은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거대양당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 ‘거대양당의 패권정치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라는 게 국민적 요구다.

그렇다면 ‘제3세력’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을까. 신당 추진 세력은 거대양당의 약점을 겨냥해 왔다. 이들은 한결같이 “거대양대의 기득권 동맹을 깨겠다”라고 역설했다.

3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에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와 양향자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정책 홍보에 나서고 있다.
3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에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와 양향자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정책 홍보에 나서고 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양당 체제란 불판을 갈아야 한다”라고 일갈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국민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드리겠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 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탈당할 때 강조한 일성이었다. 다당제로의 전환을 통한 양당 독점구조를 타파하겠다는 의미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만들겠다는 다짐인 셈이다.

4·10총선을 임박해 올수록 제3세력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신당 세력이 결집하는 양상이다. 거대양당에 대적할 근육 불리기에 나섰다.

이준석 신당(개혁신당)과 이낙연 신당(가칭 개혁미래당)으로 중텐트가 쳐졌다. 개혁신당에 ‘한국의 희망’(양향자 의원)이 합류했다. 이낙연 전 대표와 ‘원칙과 상식’(김종민·이원욱·조응천 의원)이 손을 잡았다. 개혁미래당 창당 준비에 힘을 합치기로 했다. 아직 결정을 미루고 있는 ‘새로운 선택’(금태섭·류호정 전 의원)도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새로운 선택’은 개혁미래당보다는 개혁신당과 더 가까워 보인다. 이준석 대표와 금태섭 전 의원의 멘토 역할을 한 김종인 전 의원이 그들의 배후에 있기 때문이다. 중텐트가 ‘종착역’이 될 것인지, 아니면 빅테트로 가는 ‘환승역’이 될지 아직 속단하기는 어렵다.

정치권에서 ‘빅텐트로 가는 중텐트’라는 시각과 ‘빅텐트로 갈 수 없어 중텐트로 간 것’이라는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물론 빅텐트로 가기까지는 험로가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빅텐트가 희망 사항이 되어가는 게 아니냐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해지고 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독자 행보’ 모드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빅텐트 대상인 개혁미래당 인사를 향해 “매우 실망했다”라면서 “또 다른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이라는 요지로 비판했다. 이준석 대표에게 ‘윤핵관’은 ‘가해자’나 마찬가지다. ‘윤해관’이란 표현에서 이준석 대표의 ‘적개심’이 느껴진다. 

▶ 이 대표, 이질적 요소를 지지기반 확장 기회로 활용하라

이준석 대표는 통합신당 논의의 주체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가 이런 인식을갖고 있다면 신당 통합은 물 건너간 것처럼 보인다. 어떻든 이준석 대표가 이처럼 불편한 심경을 드러낸 것일까. 이준석 대표는 나름대로 ‘시대정신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폐지,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 여성 희망복무제, 여성 공무원의 소방·경찰 의무 복무 등 나름 사회적 문제를 풀기 위한 제안을 하는 것도 인정한다. 개혁미래당은 이런 공약에 불편함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준석을 의심하고 있다. 수용할 수 없는 공약으로 신당 통합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이다. 이준석 대표는 이에 대해 “갈라치기”라고 맞서고 있다.

과연 그럴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폐지’를 예로 들어보자. 공수처 폐지는 이낙연 전 대표가 만든 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 때 공수처는 검찰개혁의 기치였다. 이 전 대표가 민주당 대표로 있을 때 공수처를 신설했다. 자기를 부정하지 않으면 수용할 수 없는 사안이다. 또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도 마찬가지다. 개혁신당의 차별성에 방점이 찍힌 공약이다. 이준석 대표의 문제의식에는 동감한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중소도시의 노인은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을 받지 못한다. 복지의 보편성 원리에 벗어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다분히 젊은이를 겨냥한 개혁신당의 공약임이 분명하다. 개혁미래당과 차별성이 부각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얘기다.

‘~ 때문에’가 아니라 ‘~임에도 불구하고’를 새겨라

이준석 대표의 막가파식 발언은 개혁미래당과 이질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 대표를 제외하고 이낙연 전 대표, ‘원칙과 상식’, ‘새로운 선택’, ‘한국의 희망’ 모두 민주당에 뿌리를 두고 있다. ‘통합 논의’의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5명 중 한 사람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걱정도 이해한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20일 오후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개혁신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이낙연 새로운미래 인재영입위원장,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20일 오후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개혁신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이낙연 새로운미래 인재영입위원장,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그런 ‘위험’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통합 논의의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해 독자 행보 강화하는 마음도 나름 전략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개혁신당이 중도와 젊은 층의 지지기반이 이준석 대표의 힘이 된다. 개혁신당이 개혁미래당 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위태로운 줄 타기식 주도권 싸움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척결의 대상으로 지목한 거대양당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신당 통합의 실패는 패권정치의 청산을 원하는 국민에 대한 배반이다.

개혁신당과 개혁미래당 사이에는 이념적 교집합이 없다. 이념만 그런 게 아니다. 지역과 세대로 배치된다. 하지만 이를 역이용하면 통합신당의 확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공동의 명분을 살리면 상호보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고착된 지역대결, 이념 대치, 세대 갈등을 무너뜨릴 수 있는 매력적 요소도 갖고 있다. 그것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통합 논의해야 한다. 또 제3세력이 추구하는 시대정신도 만들어야 한다.

이준석 대표 스스로 “다소 세대가 차이 나는 이들이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대한민국의 변화를 추구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라고 강조하지 않았는가. 그것이 바로 실용 정치라는 새로운 비전과 시대정신을 제시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게 아닌가. 

마지막으로 이준석 대표에게 질문 하나 하자. ‘두 개로 조각난 배’(신당)로 거함(거대양당)에 대적할 수 있는가. 신당 통합 논의 과정에서 진흙탕 싸움을 벌이면 공멸이 있을 뿐이다. 정쟁이 싫어서 지지하겠다는 국민에게 신당은 적어도 싸움만 하는 거대양당과는 다르다는 걸 확실하고 명확하게 보여줘야 한다. 벌써 신당 통합이라는 막중한 국민 요구 앞에서,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이해관계로 싸우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통합신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때문에’가 아니라 ‘~임에도 불구하고’라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만일 노인 복지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북 노선이나 경제정책처럼 중대한 사안에서 이견이 불거지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분열 요인을 줄여나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도발’에 대응을 자제해야 한다. 특히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거대양당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신당 통합을 방해하려는 ‘시도’가 시작됐다. 유튜브로 후원금을 받을 것으로 선거법 위반이라며 수사에 착수할 기미를 보이지 않은가. 신당을 무력화시키기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도입을 시도하고 있지 않은가.

이준석 대표는 “지혜는 듣는 데서 오고 후회는 말하는 데서 온다”라는 영국 소담을 새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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