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정당에 투표하지 마라

지과필개(知過必改)라는 말이다. ‘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고치라’라는 뜻이다. 천자문에 나온다. 선량한 사람은 이 격언을 금과옥조와도 같이 여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와 오류, 더 나아가 죄악을 범하며 산다. 인간이 저지르는 수많은 잘못은 의도하지 않은 게 훨씬 많다. 의도와 다른 결과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방법이 잘못되거나 판단이 어긋날 때 생기는 일이다. 그런 경우조차도 대부분 사람은 후회하고 반성한다. 또 다른 이에게 피해줬다는 자책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잘못에서 교훈을 얻는다. 

4·10 총선
4·10 총선

최근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당당하게 잘못을 되풀이하겠다고 나선 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위성정당(통합비례당) 창당 공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재명 대표는 ‘남의 탓’하면서 ‘불가피하게 잘못을 되풀이하게 됐다’라면서 용서를 빌었다. 이재명 대표는 국민의힘의 위성정당 창당 준비를 ‘칼을 들고 덤비는데 행위’라고 규정했다. “냄비 뚜껑이라고 들고 칼을 막아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상대가 먼저 위성정당을 만드니 불가피하게 하게 된 것’이라는 주장인 셈이다. ‘합의하지 않은 게임 규정을 따를 이유가 없다’라고 막무가내로 버티는 국민의힘 탓에 ‘위성정당 금지법’을 개정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일면 이해는 간다. 이재명 대표도 그런 결정하기까지 속앓이가 없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고충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한 ‘상인적 현실감각’에 비유했다. 그렇다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 사이 고민의 흔적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 보기엔 그렇지 않았다. 고뇌의 흔적보다 손익계산을 따진 것처럼 보인다. 오해 살만한 일이 그동안 너무 많았다.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라고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선회를 암시했다.

선거제 결정을 전 민주당 당원 투표에 부치려는 시도도 있었다. 당심을 앞세워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였다. 또 민주당 의원 80여 명은 위성정당 방지법을 발의했다. 이를 외면했다. 민주당 소속 의원이 과반이 지지하는 법안을 무시했다. 민주당을 위한 게 아니었다. 선당후사가 아니었다. 과반 의석을 거느린 이재명 대표에게 못할 게 없다. ‘잘못’을 고치려는 의지만 있다면 위성정당 방지법 처리는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민주당은 물론 국민적 전폭적인 지지도 받았을 것이다. 

▶ 위성정당은 반칙에 반칙으로 맞선 담합

어떻든 이재명 대표는 국민의 바람과는 동떨어진 결정을 내렸다. ‘위성정당’은 반칙에 반칙으로 맞서는 ‘담합’이다. 다수당이 소수당의 원내 진출을 방해하는 합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위성정당은 특정 정당의 지배받는 ‘꼭두각시 정당’이다. 그것은 첨예한 진영 대결은 강화할 것이다. 선택지는 민주당과 ‘제2의 민주당’, 국민의힘과 ‘제2의 국민의힘’ 밖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결국 국민에게 지탄받고 있는 양당의 기득권과 독과점 구조를 공고히 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을 셈이다. 

사진: 미래통합당 황교안 - 미래한국당 한선교 공천 갈등= 2020년 21대 총선 때 위성정당 대표를 맡았던 한선교 전 의원이 비례대표 공천 명단에서 모(母) 정당의 영입 인재를 당선 가능성이 낮은 후순위로 빼는 등 이른바 '한선교의 난'을 일으켰다가 총선 전 위성정당 대표를 원유철 전 의원으로 교체하고 공천 명단 발표를 번복했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 미래통합당 황교안 - 미래한국당 한선교 공천 갈등= 2020년 21대 총선 때 위성정당 대표를 맡았던 한선교 전 의원이 비례대표 공천 명단에서 모(母) 정당의 영입 인재를 당선 가능성이 낮은 후순위로 빼는 등 이른바 '한선교의 난'을 일으켰다가 총선 전 위성정당 대표를 원유철 전 의원으로 교체하고 공천 명단 발표를 번복했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1대 총선 결과가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은 19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은 17석 비례대표 의석을 가져갔다. 위성정당에 참여하지 않은 정의당은 6석을 차지했다. 위성정당이 없었다면 정의당은 의원교섭단체(20석) 확보도 가능했다. 이로써 거대 정당의 과잉 대표성을 막으려는 연동제 비례대표의 취지는 사라졌다. 민의가 왜곡된 국회가 구성됐다. 제3당의 중재와 캐스팅 보트도 볼 수 없게 됐다. 

거기에 그치는 게 아니다. 어느 나라에도 볼 수 없는 퇴행적 정치 현상이 반복될 것이다. 지난 21대 총선에서처럼, 의원 꿔주기가 횡행할 것이다. 국고보조금을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비례정당 상위 순번을 얻기 위해. 그렇다 보니 컷오프된 의원이나 출마 포기한 의원이 좀비가 되어 살아났다. 또 검증되지 않은 시민단체 인사가 의원 배지를 단 경우도 적지 않았다. 윤미향·김의겸·이수진 의원, 최강욱 전 의원 등이 대표적 사례다. 유독 재판받거나 구설에 시달린 의원 중에 비례대표 출신이 많은 게 이상할 일이 아니다. 그만이 아니다. 창당에 필요한 물적 원조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졸속성을 둔화시킬 수는 없다. 졸속으로 만들어진 비례정당에 지속성을 기대할 수 없다. 지난 21대 총선에서도 졸속창당은 졸속 해체됐다.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은 두 달 열흘 만에 민주당에 흡수됐다. 

이런 일이 제22대 총선에서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번에는 재판받고 있는 인사들이 비례정당 창당을 예고하고 있다. ‘조국의당’과 ‘송영길 정치검찰해체당’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이 ‘조국의당’과 ‘송영길 정치검찰해체당’과 손을 잡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협의를 받은 조국 전 법무장관은 지난 8일 2심에서 징역 2년 선고받았다. 조국 전 장관은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겠다”라고 말했다. 그런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이재명 대표의 입장은 모호하다. 이재명 대표는 “조국의 강을 안 건너는 게 아니다”라면서 “워낙 강폭이 넓어 못 건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한발 더 나아갔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윤석열 정권 심판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에게 저희는 열려 있다”라고 말했다. 비례통합당을 통해 ‘민주당 진영의 세력 결집’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모든 세력’으로 개혁연합신당과 녹색정의당, 조국 신당 등을 언급했다.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으로 구속된 송영길 전 대표도 ‘모든 세력’에 포함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위성정당이 헌법의 보호 아래 있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럼 이재명 대표는 뻔히 보이는 국민적 공분과 비난을 무릅쓰고 왜 위성정당 창당을 추진한 것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국민을 너무 만만하게 본 때문이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보았듯이 위성정당이 기득권 정당의 지지율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 통합비례당은 이 대표에게 남는 장사

만일 국민을 무시하고 위성정당을 만든 모정당에 따끔한 맛을 보여줬다면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했을 때 획득한 의석 및 득표가 급조된 위성정당으로 얻은 의석 및 득표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만일 지난 총선에서 위성정당에 표를 주지 않거나 위성정당의 모당 득표율이 조금이라도 떨어졌다면 이재명 대표가 공공연히 위성정당 창당을 공언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당 지지율 하락은 의원 수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수천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리는 수도권 의석 판도에는 지금과 크게 달랐을 수도 있다.

사진: 민주, 준연동형·통합비례당 창당 당론에 만장일치 추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의원들이 6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 민주, 준연동형·통합비례당 창당 당론에 만장일치 추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의원들이 6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민주당이 아니라 이재명 대표의 필요에 의한 결정이다. 이재명 대표는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사법 리스크의 전도는 4·10총선 결과에 따라 전혀 판이하게 전개될 여지가 크다. 그만큼 이재명 대표의 통제 욕구는 커진다. 통합비례당을 만들어 ‘반윤세력’을 줄 세우기하고 싶을 것이다. 이재명 대표 자신이 직접 공천권까지 행사할 수 있는 ‘비례통합당’을 만드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친명 일색의 공천을 위한 ‘자객 공천’도 불사하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당내 세력도 불안한 상황에서 범진보 연합 세력의 도움은 천만대군을 얻는 것이 될 것이다. 우군이 많을수록 이재명 대표는 사법 리스트를 쉽게 넘어갈 수 있음은 당연하다.

또 통합비례당 공천은 친문 인사에게 이재명 대표 자신이 직접 선심을 쓸 수 있는 통로로 활용할 수 있다. 친문을 끌어 앉는 포용력도 보여줄 수 있다. 어차피 비난을 피할 수 없다면 범진보 세력을 ‘반윤석열 연대 전선’에 묶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적의 적은 나의 동지’이니깐. 그게 바로 위성정당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사법 리스크를 잘 넘긴다면 야권의 대선 구도는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구축할 수 있다. 이래저래 통합비례당 창당은 이재명 대표에게 남는 장사인 셈이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의 생각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국민이 한 번 속지 두 번 속지 않는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국민은 ‘준연동제 선거법’도 몰랐다. ‘위성정당’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무지가 낳은 결과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질을 얼마나 떨어뜨렸는지 지난 4년 동안 확인했다. 그동안 정치권이 국민의 주권인 참정권을 갖고 장난했던 작태를 훤히 알고 있다. 정치권만의 야합이 얼마나 치졸했는지를 낱낱이 기억하고 있다. 두 번 똑같은 일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생각은 정치권의 오만이고 독선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을 이길 수 있는’ 정당이나 정치인은 없다. 정치인과 정치를 판단하는 것은 이재명 대표나 민주당이 아니다. 주권자인 국민이다. 국민은 제 잘못을 모르는 정당과 정치인을 심판할 것이다. 한마디 덧붙이자. 노파심이다. 위성정당에 투표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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