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남미 ‘유일한 미수교국’

한국이 쿠바와의 수교를 전격 발표했다. 지난 2월 14일 늦은 밤, 미국 뉴욕에서 양국 주유엔대표부가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했다는 소식은 극비의 보완 속 예고 없이 깜짝 발표됐다. 이로써 중남미 국가 중 유일한 미수교국이던 쿠바는 한국의 193번째 수교국이 됐다. 이제 회원국 중 남은 UN의 미수교국은 단 1개국 시리아뿐이다.

쿠바 아바나 도로 위의 클래식 자동차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 = 한국과 쿠바가 전격적으로 외교 관계를 맺었지만, 관광 목적의 쿠바 방문이나 체류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쿠바를 방문한 뒤 비자 없이 미국에 입국하는 것이 거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쿠바 아바나 도로 위의 클래식 자동차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 = 한국과 쿠바가 전격적으로 외교 관계를 맺었지만, 관광 목적의 쿠바 방문이나 체류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쿠바를 방문한 뒤 비자 없이 미국에 입국하는 것이 거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번 한국과 쿠바의 수교는 과거 동구권 국가를 포함해 북한의 우호 국가였던 대(對)사회주의권 외교의 완결판이다. 1988년 8월 당시 공산권이던 헝가리에 상주 대표부를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추진된 북방 외교가 30여 년 만에 최종 퍼즐을 맞췄다는 평가이다.

한국은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쿠바를 방문해 양국 간 첫 공식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지만, 수교로 속개되지는 못했다.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 수교 제안을 했고,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영사 관계 수립을 요청 바 있다. 윤석열 행정부 들어 2023년 5월 박진 당시 외교부 장관이 과테말라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쿠바의 외무부 차관을 만나 수교를 타진한 바 있다.

결국, 이번 한-쿠바 수교는 국제사회에서 한층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북한의 외교적 고립의 심화는 물론 더 나아가 치명타가 됐다는 평가이다. 북한의 ‘형제국’이라 불리는 쿠바가 북한 몰래 한국과 은밀하게 수교를 맺었다는 사실은 북한에게는 수용하기 매우 힘든 큰 상처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북-쿠바 관계의 분수령이자 하이라이트는 김일성 시대였고, 이후 쿠바가 개혁개방을 추구하면서 외교가 약화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이념’과 ‘전통성’의 영속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만큼 이번 한-쿠바 수교가 북한에게 뼈아픈 실책이 된 것은 자명하다.

이와 함께 한국에게 중남미 카리브 지역 국가 중 유일한 미수교국인 쿠바와의 외교관계 수립은 우리의 대중남미 외교 강화를 위한 중요한 전환점으로서,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우리의 외교지평을 더욱 확장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쿠바 수교는 우리 기업 진출 지원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양국 간 실질협력 확대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 쿠바 경제난 ‘한국의 기대’

쿠바는 카리브해에서 가장 큰 섬나라로 면적은 한반도 절반 정도인 11만 860㎢, 인구는 1123만여 명이다. 언어는 스페인어를 쓰며, 전체 인구의 65%는 백인이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연간 약 1만 4000명의 한국인이 쿠바를 방문했다. 실제 최근 쿠바 현지에서 한국 드라마와 K팝 등 한류가 큰 사랑을 받으면서 규모 약 1만 명의 한류 팬클럽도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지난 8일(현지시간) 정전된 골목길을 휴대전화 불빛에 의지한 채 지나가는 쿠바 주민 [베후칼 로이터=연합뉴스]
사진: 지난 8일(현지시간) 정전된 골목길을 휴대전화 불빛에 의지한 채 지나가는 쿠바 주민 [베후칼 로이터=연합뉴스]

쿠바에는 현재 약 1100여명의 한인 후손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1921년 일제강점기 당시 멕시코에서 쿠바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쿠바는 1949년 일찍이 대한민국을 승인했으며, 1950년 6.25 전쟁 발발 때 당시 바티스타 정부가 UN의 대한민국 지원에 적극 동참하여 물자원조를 보내주는 등 남한과 우호적인 나라였다. 

1958년에는 주중국(대만) 상주 쿠바 대사로 부임한 로센도 칸토 에르난데스가 주한 공사 겸임을 부임 받아 1959년 1월 한국 정부에 신임장을 제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1959년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 이후 두 나라 간 교류는 단절됐다. 북한과 쿠바는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에 성공한 지 1년 만인 1960년 8월 29일에 공식 수교를 맺었다. 

이후 양국은 냉전 시기를 거치면서 혈맹에 버금가는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다. 특히 양국에서 혁명 1세대로 불리는 김일성 주석과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은 상호 ‘반미·반제노선’에 지지를 분명하게 하면서 비동맹·제3세계 외교를 펼쳤다. 실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체 게바라(1960년)를 비롯해 라울 카스트로(1966년), 피델 카스트로(1986년) 등 쿠바의 주요 인사들이 북한을 방문했다. 

김정은은 2016년 피델 카스트로 사망 당시 북한 주재 쿠바 대사관을 직접 찾아 “탁월한 지도자는 비록 서거하였지만, 그의 이름과 업적은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영생할 것”이라고 애도를 표했다. 또한 북한이 핵 개발로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초하던 2018년에도 미겔 디아스카넬 당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평양을 찾자 김정은 위원장의 환대를 받았다. 그는 현재 쿠바의 대통령이다.

당시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과의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었음에도 사흘간 일정을 함께하며 돈독한 양국관계를 과시했다. 북한은 2024년 첫날에도 김정은 명의로 디아스카넬 대통령에게 쿠바 혁명 65주년을 축하하는 장문의 축전을 보냈다. 또한 북한이 불법 핵 개발로 갈수록 고립돼 가던 와중에도 쿠바는 꾸준히 호의적 태도를 유지했다. 

그럼에도 북한의 오랜 우방 쿠바가 수교를 결단한 배경에는 한국-쿠바 간 경제협력이 커지고 한국인 관광객 증가와 함께 쿠바 내에 널리 퍼진 한류의 현실을 보면서 이념적 의리가 아닌 경제적 실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방국인 북한의 반대에도 한국과의 경제협력 강화를 선택해 경제를 회복해 보겠다는 뜻이다.

쿠바 경제난의 원인은 수십 년째 계속된 미국의 경제 봉쇄 정책이다. 현재 쿠바는 물가 폭등에 식량난과 전력 부족까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많은 전문가는 미국의 대(對)쿠바 정책 변화가 쿠바인 이주 위기를 악화시킨 주요인으로 꼽는다. 쿠바인의 미국 탈출 급증은 미국에도 골칫거리다. 쿠바인들은 현재 미국-멕시코 국경의 이주민 단속에서 멕시코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해 바이든 행정부에도 정치적인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미국은 이전 트럼프 행정부가 남플로리다의 쿠바계 미국인 유권자를 의식해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한 대쿠바 외교관계 회복, 여행 허용 같은 정책을 방기하고 제재 강화, 송금 제한 등을 시행해 쿠바인들의 탈출을 촉발했다는 것이다. 

현재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2023년 1월 미국 정부는 미국 내 쿠바인들의 송금 금액 제한을 없애기로 하는 등 미봉책을 내놓았다. 쿠바 경제를 회복시키는 근본 대책이 아닌 이런 임시 대책이 쿠바인들의 탈출 행렬을 줄이는 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와 함께 특히 쿠바의 전략난은 코로나19 사태로 한층 악화된 경제난과 맞물려 주민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더욱이 코로나19로 관광산업이 크게 위축된 데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의 지원마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 쿠바는 전기뿐 아니라 식량, 기름, 의약품 등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고질적인 경제적 어려움이 단시일 내에 극복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미국의 봉쇄 못지않게 국가가 주도하는 쿠바식 사회주의 경제가 가진 문제도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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