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계(木鷄)

자유한국당이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임명 강행에 반발해 ‘릴레이 단식’에 들어간 것을 두고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월 25일 공개된 ‘좌파독재 저지 및 초 권력형 비리규탄 릴레이 단식 계획안’에 따르면 한국당은 오전, 오후로 조를 나눠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 계단 이순신 장군 동상 옆에서 단식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오전 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30분까지, 오후 조는 오후 2시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단식을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한 조당 5시간 30분씩입니다. 2월 1일까지 농성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라네요. 이렇게 짧은 시간 단식하는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 비판이 나왔습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당은 보이콧을 어린아이 밥투정하듯 한다.”며 “웰빙정당의 웰빙 단식”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 눈에는 릴레이 단식이 아닌 릴레이 다이어트로 보인다.”며 “놀면서 세금으로 월급타고 웰빙을 위한 간헐적 단식으로 건강까지 챙기겠다는 심보냐. 목숨을 걸었던 숱한 단식농성 정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다른 야당도 질타에 나섰습니다. 김수민 바른미래당 원내대변인은 “‘밥 먹고 와서 단식’, ‘앉아있다 밥 먹으러 가는 단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며 “단식 농성의 새로운 버전을 선보인 한국당의 쇼에 어이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문정선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한국인들의 평균 식사 간격이 5~6시간이니 5시간 30분 릴레이 단식은 단식이 아닌 30분 딜레이 식사”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정치가 안 되니까 개그로 승부를 보려는 수작이냐”며 “집회와 시위를 탄압해온 자들의 시위 희화화가 도를 넘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국민들의 여론도 싸늘합니다. 온라인에서는 “나도 오늘 무려 7시간 단식에 성공했다” “국제적인 망신이다” “저런 발상은 누가 하는 건지 궁금하다” 등의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왜 이렇게 한국의 정치인들은 얄팍하기가 유리잔 같을까요? 조금 더 의연한 이 나라 정치지도자는 없는 것일까요? 옛날 주(周)나라 선왕은 닭싸움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한 번은 왕이 당대 최고의 투계(鬪鷄) 조련사인 기성자를 불러서 자신의 싸움닭을 맡기며 최고의 싸움닭으로 훈련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열흘이 지나자 왕은 기성자에게 닭싸움을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지금은 한창 사납고 제 기운만 믿고 있어 기다려야 합니다.” 열흘이 다시 지나고 왕이 묻자 기성자가 대답했습니다. “다른 닭의 소리를 듣거나 그림자만 보아도 바로 달려드니 아직은 더 기다려야 합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고 왕이 묻자 기성자가 대답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아직도 다른 닭을 보면 곧 눈을 흘기고 기운을 뽐내고 있으니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40일이 지났을 때 왕이 그를 불러 물었습니다. “이제는 닭싸움에 내보낼 수 있겠느냐?” 그러자 기성자가 왕에게 대답합니다. “이제는 다른 닭이 소리 지르고 위협해도 쉽게 동요하지 않고 평정심이 있어 마치 나무로 만든 닭, 목계(木鷄)와 같습니다. 그래서 그 덕이 온전하여 다른 닭이 가까이 오지 못하고 보기만 해도 달아나 버리고 맙니다.”

목계는 나무로 만들어진 닭이라는 뜻으로 상대의 도발(挑發)에도 동요하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지도자가 되면 유난히 조급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하 직원들이 자신을 욕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동료 중에 자신을 제치고 올라오는 사람은 없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염려하고, 불안해합니다.

지도자는 목계처럼 의연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정치지도자는 더 그렇습니다. 그래야 그 덕이 온전해지며, 조직이 동요 없이 잘 운영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계처럼 의연한 지도자가 되려면 어찌하면 좋을까요? 그것은 ‘중용(中庸)의 도’를 실현하는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중용이라 함은 모든 면에서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 [덕화만발]에서는 <덕화만발의 주인은 다음 네 가지의 강령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 우리는 맑고, 밝고, 훈훈한 낙원세상을 지향한다.

-. 우리는 편협한 종교, 이념, 정치를 배격하고 중도를 지향한다.

-. 우리는 서로 돕고 이끄는 상생상화의 정신을 지향한다.

-. 우리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으로 활동한다.

아리스토텔레스(BC 384∼BC 322)는 세계 최초의 체계적인 윤리학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행복’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중용이 덕의 핵심’이라고 설파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명예와 불명예에 관해 말하면, 그 중용은 긍지요, 그 과도는 이른바 허영이요, 그 부족은 비굴이다.

노여움에 관해 말하면, 그 중용은 온화요, 그 과도는 성급함이며, 그 부족은 성질 없음이다. 진리의 중용은 진실이요, 그 과도는 허풍이며, 그 부족은 거짓 겸손이다. 돈을 주고받는 일에서 중용은 너그러움이며, 그 부족은 인색함이고 그 과도는 방탕이다. 이 같은 중용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몸에 젖은 행동의 습관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시적으로 어쩌다가 우연하게 ‘중용의 덕’을 행했다고 하여 항구적일 수 없는 것입니다. 시종일관한 자세, 언제 어디서나 중용에 맞는 언행, 덕 있는 행동을 거듭하는 가운데 덕의 습관, 중용의 덕을 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용의 습관에 맞춰 신뢰성 있는 삶을 사는 자를 일컬어 우리는 인격자라 부릅니다.

물론 ‘가운데 중(中)’은 산술적인 평균치가 아닙니다. ‘마땅한 때에, 마땅한 대상에 대하여, 마땅한 동기로 그리고 마땅한 태도와 자세로’ 대하는 것이 참된 중용이요, 덕인 것입니다. 가짜 단식이나 하며 국민들을 우롱(愚弄)하는 행동으로는 국민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국민을 감동시키는 것이 정치입니다. 거짓단식을 보며 목계처럼 의연한 이 나라의 진정한 지도자는 없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自愧感)이 드네요!

단기 4352년, 불기 2563년, 서기 2019년, 원기 104년 1월 2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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