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읽기 -한애자의 '빵 굽는 여인, 제3회'

한애자의 소설 - <빵굽는 여인> 제3회

 

어느 날, 노인숙이 외모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기 위하여 마음껏 멋을 부리고 출근하였다. 상의는 리본으로 된 블라우스에 하의는 플레어스커트로 청순한 소녀 같은 분위기였다. 그 차림은 너무도 나이에 맞지 않은 어색한 분위기라 매우 역겨웠다. 그러나 노인숙의 사람들은 몰려와서 그녀를 한껏 추켜세워 주었다.

“오, 정말 오늘 패션 아주 멋져요?”

“부장님, 그렇게 차려 입으시니까 이십대처럼 너무도 젊고 세련돼 보여요.”

두말할 것 없이 노인숙은 황홀감에 취했다.

“응, 이거 명품이야. 남편의 특별 보너스로 사 입은 거야. 명품이라서 그런지 입어보니까 확실히 느낌부터 달라!”

“그렇지요! 비싼 것은 역시 표시가 난다니까요. 부장님은 늘씬하니까 무엇이든 잘 어울려요!”

노인숙은 황홀감에 헤어나지 못했다.

‘난 아직도 아름다운 여자야.’

또 한 번 확인을 받아 흡족해 했다. 나이 먹은 오십대 중반의 여인에게 자존감을 세워주는 이처럼 황홀한 찬사가 어디에 있겠는가!

“패션의 여왕, 저기 또 있잖아?”

누군가 홍신애를 가리켰다. 이때 수업 종이 울렸다. 홍신애가 복도로 향하였다. 모두 그녀의 뒷모습을 주목하였다. 홍신애는 엷은 분홍색 레이스로 된 꽃무늬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것은 하얗고 투명한 그녀의 피부에 아주 잘 어울렸다. 예쁜 조가비 같은 귀에는 진주귀고리가 걸려 있어 그녀를 더욱 우아하게 만들었다. 모두 그녀의 아름다운 위엄에 압도되었다.

“저 원피스 말인데, 허 선생이 보았다는데 교회 바자회에서 거의 헐값으로 샀답니다.”

“정말?”

“네, 만 원이래요. 저 선생님을 보면 누가 그렇게 싼 값이라고 하겠어요?”

“아무튼 옷이 매일 바뀌는 멋쟁이야.”

“월급을 타면 맨날 옷만 사는 여자야. 살림 거덜 나게 시리!”

노인숙은 순간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날카롭게 쏘아 붙이듯 신경질적으로 말하였다.

“멋쟁이라서 모두 명품인가 했더니 모두 바자회 때 싸게 구입한 거래요.”

“그래서 명품에 대해서 말이 없었구나!”

“저 선생은 항상 말이 없잖아요.”

그들은 이런 식의 홍신애에 대한 화제를 되풀이하곤 하였다. 시험기간이라 일찍 채점을 마치면 오후에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노인숙은 이때도 항상 빵과 과자류를 준비하여 자신의 사람들과 잡담을 하면서 티타임을 가졌다. 다섯 명의 고정멤버로 구성된 그녀의 측근들은, 그녀의 들러리로 성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때도 홍신애는 아무런 동요 없이 책을 읽거나 교재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교사들 중 홍신애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도 몇 명 있었다. 그들은 홍신애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녀의 말에는 세속적으로 벗어나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신비한 힘이 깃든 것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그들은 홍신애에게 가정사나 개인문제들을 상담하였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기보다 개인적으로 찾아오곤 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문제해결의 지혜를 얻을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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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에게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에는 민감하다. 그리고 유익한 것에 관심과 시간을 투자하게 마련이다. 홍신애는 무리를 지어 다니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동료들과 접촉하여 심오한 정서적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들은 홍신애야 말로 왕 언니요, 자신들의 지도자라고 여겼다. 그들은 은연중에 노인숙은 약하니까 꼭 떼를 지어 다니는 약한 개체로 여겼고, 홍신애는 혼자 당당하게 다니는 사자와 같은 위엄을 지닌 사람으로 여겼다.

노인숙과 대화를 하고 나면 떠들고 재미는 있지만, 영양가 없는 허무함을 그들은 느끼곤 하였다. 그러나 홍신애와 대화를 나누면 자신의 심장을 뜨겁게 하는 삶의 정열과 아름다움,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노인숙의 무리는 모였다 하면 음담패설이나 연예인 이야기를 나누거나, 남의 허물을 들춰내고 깔깔거리는 게 전부였다.

“변산반도에 여름에 연수 갔을 때 허 선생의 그 남산만한 배보았어?”

노인숙이 화제를 돌렸다.

“아, 그때 배꼽 뺐었죠!”

“그 배를 가지고 블루스를 춘다고 나섰던 거 기억 나? 정말 꼴불견이었지. 체육부장 장혁진이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 거절은 못하고 춤을 추는 척하면서 그 고역스러워 하던 표정 말이야!”

“정말 푼수야. 춤도 못 추면서 뭐 하러 나서서 추태를 보였는지……. 정말 혐오스러워!”

“맞아. 생긴 대로 논다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이야. 하하하하.”

그때 지나가던 홍신애가 다부지게 말했다.

“그래도 그 선생님이 남을 미워하거나 흉보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냉담한 어조에 깔깔거리던 노인숙 무리는 홍신애의 당당한 기세에 눌려버렸다.

“으응, 그렇긴 그렇지. 좀 어수룩해 보이고 푼수 같기는 하여도 남을 나쁘게 얘기하는 건 못 보았지.”

자신들의 행동에 약간의 수치심을 느꼈는지 수그러졌다.

“참으로 순수한 사람입니다.”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위엄이 있었다.

홍신애가 노인숙의 무리에게 면박을 주며 왕언니 노릇하니 노인숙이 어찌 미워하지 않겠는가! 자신을 망신시킨 그녀에 대해 반감과 혐오감이 날로 깊어만 갔다.

‘저 얄미운 년이 나에게 쫑크를 주고 있어. 지가 뭔데 우리를 가르치고 말고 지랄이야.’

홍신애가 왕언니 노릇하는 게 분통이 터졌다.

‘저것이 없어졌으면 좋겠어. 다른 학교로 전보 가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지식이 많아 똑똑한 소리를 잘하는 홍신애가 더욱 미웠다.

“좀 특이한 여자 아냐?”

“맞아. 신용카드도 안가지고 다니고 모두 현금거래 한다는 소문이 있어.”

“정말 시대에 뒤떨어진다. 요즘은 신용카드를 써야 포인트도 붙고 할인혜택도 받는데 말이야.”

“자가용도 집에 있으면서 안가지고 다닌대. 걸어야 건강하다면서…….”

“독불장군이라니까. 아휴, 답답해.”

홍신애는 평소에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녔다. 그래서 홍신애는 날씬하다고 수군거렸다. 자가용 없이 다니는 것을 창피해하지 않는 듯하였다. 오히려 그것이 더욱 현명하게 살아가는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사람들에게 권하였고 그것들을 소유하지 않았을 때의 장점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곤 하였다.

“자가용이 없으면 걸어서 다니면 건강에 좋습니다. 그리고 걸어 다니면서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대하게 되고 여러모로 배울 수가 있지요. 게다가 걸어 다니면 기름도 절약하고 교통난을 조금이라도 해소해 주는 좋은 방법이지요.”

“현금을 가지고 다니면 불편하지 않아요?”

“저는 카드가 없습니다. 현금으로 생활하게 되면 지출이 눈에 보이니 살림을 더욱 알차게 할 수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월급날에 생활비를 현금으로 떼어놓고 그 돈으로 한 달 동안 사는 거죠.”

“맞아요. 신용카드를 쓰면 우선 긁고 보니까 소비도 늘고 쉽게 돈을 낭비하게 되지요.”

무리들은 정말 그렇다고 맞장구를 쳤다. 노인숙은 그것은 모범답안 같은 자기만의 표현이라고 콧방귀를 뀌었다. 홍신애가 자기의 방식을 사람들에게 권장하는 것이 참으로 얄미웠다.

노인숙은 홍신애가 꽉 막히고 사회성 없는 여자라고 비웃었다. 그리고 자신들과 다른 차원에서 사는 듯 일상사에 대해서는 문외한 듯 보였다. 평소 말이 없던 홍신애가 유일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은 바로 이런 종류의 화젯거리였다. 자신이 밥맛 없어하는 맹한 이야기에 그녀는 관심을 보였다. 베일에 싸인 위선자라고 홍신애를 몰아붙였다. 홍신애는 가정사를 하소연하는 것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그저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할 뿐이며, 그들 중 질문을 할 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 줄 뿐이었다.

“난 말이야. 저런 부류의 인간을 제일 경멸해!”

시대에 뒤떨어지는 구식! 뻔히 아는 내용을 되풀이 하여 사람들의 선생 노릇하는 얄미운 족속들! 노인숙은 소위 목사니, 스님이니, 정치인, 언론인이니 하는 그들은, 남을 선도한다고 장광설을 펴서 약한 사람들을 가르치는 같잖은 존재들이라 여겼다. 그들은 마치 인생의 모범답안을 알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고 달콤한 언어유희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자신들은 올바르게 살고 청중들은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는 듯 책망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여서 노인숙에게는 꼴불견이었다.

그런데 홍신애가 바로 그런 부류의 인간이었다. 홍신애의 독서 취향을 보아도 자신과는 정반대 성향이었다. 논어, 맹자, 삼국지, 수호지, 파우스트, 셰익스피어의 희곡 등 동서고금의 고전을 읽는 홍신애였다. 노인숙은 무겁고 고리타분한 홍인애의 책상 위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을 보며 답답해했다.
노인숙은 자신의 책꽂이에 꽂힌 책이야 말로 현대인의 지혜가 가득 찬 수준 있는 책이라고 여겼다. 다이어트의 성공법, 젊게 사는 방법, 부자가 되는 방법, 새로운 영양 빵의 비법 등, 이러한 내용의 책을 탐독하면서 그녀는 커다란 교양을 섭렵하고 있다고 자부하였다. 홍신애의 고전읽기는 실리가 없는 무의미한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비웃었다. 차라리 애완견 백과사전을 보면서 약한 짐승에게 선을 베풀며 사는 것이 현명하지 않은가! 참으로 생각할수록 홍신애는 자신과 영 맞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노인숙의 홍신애에 대한 적대감은 우물처럼 깊어만 갔다.

 

<인간극장> 속의 홍신애는 여전히 차분한 분위기에, 머리를 턱 선에서 가지런하게 자른 모습이었다. 입양한 아이들에게 주려고 자장면을 만들고 있는 모습은 10년 전의 홍신애의 모습과 달리 현숙함이 베어나고 있었다. 자신이 언제나 자주색 커튼으로 내다보던 그 뒷모습이 바로 홍신애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한애자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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