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의 소설-<딱새의 성> 제2회

 

남편은 오토바이를 하나 장만하더니, 휴일이면 전국을 붕붕거리며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 그때부터 인영에게는 플라타너스의 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쓸쓸한 계절이었는지 모른다.

 

“출생일이 두 아이가 똑같은데 쌍둥인가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남자직원이 만삭인 여직원에게 다가왔다.

“자원봉사자 한 명을 추천하라는 것 마무리 되었나요?”

“아, 장애아 보조원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내일까지 복지관에 사람을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어쩌죠? 아직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해서요.”

“월 80만 원이면 극빈자에겐 좋은 일거리가 될 텐데요.”

“맞아요. 요즘은 일자리 얻기가 하늘에 별 따기처럼 힘든 세상이죠.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잠시 보았는데 지하철역에서 청소하는 아줌마의 힘든 생활을 보았어요. 한 달 근무하면 70, 80만원밖에 안 되나 봐요. 거기다가 종일 힘들게 노동을 하여 몸이 좀 아파서 결근하면 그 다음날 출근하지 못한 날짜를 빼버리고 월급이라고 받으면, 어떨 때는 60만원도 안 되나 봐요.”

“곧, 오겠죠. 좀 더 기다려봅시다.”

“저…… 괜찮으시다면 제가 그 일을 하면 어떨까요?”

인영은 선뜻 자신도 모르게 나섰다. 여직원은 엉뚱하고 염치없어 보여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기초수급자이니까 가능하지만, 쌍둥이는 누가 키워요?”

“친정어머님께 맡겨야죠.”

“그럼 여기에 작성하세요!”

문서를 받아 작성하며 인영은 자신답지 않은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앞으로 살아가려면 이 정도의 배짱은 있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돌아오는 길, 역시 플라타너스의 길이다. 저쪽 사거리의 길에서 분유통과 기저귀로 피범벅이 되어 나뒹굴어진 남편의 시체! 대형할인마트에서 아기의 분유와 기저귀를 사가지고 오토바이로 돌아오던 중, 트럭과 부딪친 교통사고가 남편과의 마지막 날이었다.

사고보상금도 하나도 없는 비참한 장례식이었다. 인영은 남편의 영전에서 오열하고 통곡하였다. 썰렁한 장례식에 상객은 친지들 몇 분으로 매우 초라하였다. 얼마 후에 고등학교 동창회 일동이 자리를 채워 주었다. 그들은 썰렁한 장례식에 두툼한 부조 봉투를 건네며 얼었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었다. 회장인 영자가 인영의 어깨에 손을 얹어 위로하였다.

“아직 젊으니까 괜찮아!”

눈물을 글썽이면서 영자는 의리 있는 모습을 보였다.

‘역시 나는 언제나 꼴찌야!’

인영은 더욱 서러워 통곡하였다.

“앙앙앙……. 으앙으앙…….”

짜증스럽게 젖먹이들이 더욱 큰 소리로 울며 보채었다. 동창회 일동이 돌아가고 맨 나중에 영자가 손을 따뜻하게 붙잡으며,

“아이들 분유 값에 보태 써!”

호주머니에 봉투를 재빠르게 넣어주었다. 미처 말붙일 시간도 없이 쏜살같이 영자는 홀연히 사라졌다.

인영은 악몽의 지난해를 상기해 보았다. 조만간에 영자를 한 번 만나서 감사의 표시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이제 홀몸으로 악바리처럼 돈 버는 데 뛰어야만 했다. 생활전선은 전쟁터처럼 험악하기 그지없다.

동이 트기 전인 새벽이슬이 발끝을 스쳤다. 가게마다 셔터로 굳게 닫혀있다.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은 낯설고 추었다. 오토바이를 몰며 배달할 신문 꾸러미를 한 아름 안았다. 맨 앞장의 신문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정치인의 ‘돈을 받았다, 안 받았다’에 관한 기사가 일면에 크게 보도되고 있었다.

‘돈 있는 사람들이 왜 불법으로 돈을 주고받는 것일까.  생존권을 위협받을 정도로 궁핍하여 남의 돈을 도적질한다면 모르지만…….’

사회면에는 연예인 최진실의 자살 사건이 보도되고 있었다. 세상은 참으로 알 수 없다. 미모이고 많은 사람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최진실이 왜 자살을 하였을까? 남편도 잘생기고 프로급 선수라던데... 언젠가 이혼하였다는 소문을 들은 것 같았다.


인간이 극한 상황이면 생명을 포기하고픈 생각이 들 것도 같았다. 외롭고 두렵다. 그러나 살아야 한다. 돈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그러나 살기 위해서는 이렇게 아침부터 돈을 벌어야 한다. 인영은 신문배달을 하면서 상념 속으로 잠긴다. 문득 동창회 모임이 생각났다. 아침에 동창회 모임이 있다고 규희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이다. 일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아이들을 챙기고 오랜만에 영자를 만나는 날이라 좀 설레며 약속장소에 도착하였다.

 

동창회 연회장의 분위기는 여전히 화려하였고 늘 모이는 동창들이 미리 와 있었다. 중앙의 영자가 황후처럼 환하게 돋보이고 있었고 모두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야. 모든 좋은 것을 가졌는데도 왜 이렇게 마음이 공허한지 너희들 아니?”

드디어 술에 취한 영자가 혀가 꼬부라지는 소리로 딸꾹질을 하며 울먹였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인데 무슨 소리야!”

“돈이 있어야 명예도 따라오고 사랑도 따라온다!”

“맞아! 요즘 남자들, 돈 없는 여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아!

“아냐! 인생이 허무해!”

화려하게 차려입은 친구들을 보면서 자신이 한 궁전의 하녀처럼 더욱 초라하고 구차하게만 여겨진다. 남편 장례를 치르고 처음 만난 영자는 놀랍도록 변신하였다. 주름살 개선의 화장품을 출시하여 대박을 터뜨려 돈방석에 앉았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소문처럼 영자는 전성시대를 열어가고 있었다. 언뜻 볼 때 70년대 전 필리핀 대통령의 영부인 이멜다와 같은 화려함이 풍겼다.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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