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한 달하고도 보름여 일 동안, 검찰과 언론은 ‘조국 패밀리’를 박멸하기 위해 미쳐 돌아갔다. 아니 이 시각에도 그 여진은 온 지면을 채우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열린 사회 속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이 악행은 전대미문이다. 이제 이 사태는 맞고 틀림의 문제를 벗어났다. 절망과 회의로 가득 찬 검찰과 언론에 대한 책임을 따져 물을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문제다. 아마 이 악명 높은 사건은 한국 검찰사와 언론사에 치욕으로 영원히 기록 될 것이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면, 열린 사회는 각자의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 비판이 작동하는 사회라는 뜻이다. 가장 명료하고 상식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이 당위적인 명제가 대명천지에서 망가져 버렸다. 이성은 비열해 졌고 판단은 파편화 되어 조각나 버렸다. 해서 검찰의 법전은 오염된 시궁창 법조문이 되었고, 언론은 막장으로 가공된 저질 드라마가 되어 버렸다. 한마디로 ‘천방지축 후안무치’라는 말이다.

또 다른 사회가 있다. 바로 ‘닫힌 사회와 그 적들’이다. ‘닫힌 사회’는 집단의 매몰된 확신과 배타적 비난이 폭주하는 사회다. 이 사회는 가장 저급하고 몰상식적이다. 그 적들은 숙주에 기생하며 기회를 노리는 세균들이다. 이 사악한 세력은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암약하고 결속되어 온 사적 이익 집단이다.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망나니짓을 해 온, 그리고 하고 있는 탕아들이다. 개개인의 욕망을 자극하여 집단적 광기로 몰아가는데 탁월한 세력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계략은 자신들과 결속되어 있는 세력과 영원한 동고동락을 하는데 있다.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패륜적 검찰과 언론과 막장 지식인(?) 말이다. 이름하여 미친 사회와 그 적들이다.

‘조국 패밀리’에 대한 비열한 피의사실공표와 융단폭격식 쓰레기 기사는 치졸하기만 하다. 그들은 이 사태에 대한 사실과 진실에는 관심도 없다. 오로지 의혹과 불신을 조장하는 짓거리를 통해 이익을 얻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그것이 그들만의 조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믿음을 준 ‘이너서클’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 음흉하고 사악한 ‘상판대기’는 어떻게 생겼을까? 정말 궁금하다.

이 숨어 있는 ‘상판대기’와 그 추종 세력들은 자신들의 적폐와 민낯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하여 ‘사법개혁’만큼은 모든 수단·방법을 이용해서라도 좌절시키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계획과 행동 강령을 사회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는 졸개들에게 하달하고 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말이다. 이 어둠의 두령은 누구일까? 경제계, 법조계, 대형 로펌, 매판 자본(지식인), 토호 세력(?), 정말 궁금하고 또 궁금하다.

늘 그래 왔다. 그들만의 나라사랑(?)과 태극기사랑(!) 방식 말이다. 그것은 자신들의 이익과 기득권이 영원토록 보장되고 대물림될 수 있는 나라다. 공공의 이익과 사회정의를 통해 모두가 공감하고 동행하는 나라가 아니다. 늘 지배자로 관리자로 살아가고 싶은 몰염치한 세력들이다. 그 끈적끈적한 욕망의 늪은 모든 것을 빨아 당기는 흡착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늪은 죽음의 구렁텅이에 불과할 뿐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걸어 들어가는 이 집단들의 머리털 자르기도 그렇다. 카메라 앞에서의 어정쩡한 행위에는 절박함과 진중함이 보이지 않았다. 감동도 결기도 없이 잘려 나간 머리털은 허공에 휘날렸을 뿐이었다. 삭발의 본래적 의미는 세속적 욕망을 버리고 불가에 귀의하는 의식이다. 바로 출가 정신의 상징이라는 말이다. 또한 이것은 사회정치적 약자가 지배 권력과 독재 권력에 저항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자신의 일부를 잘라내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저항하는 상징적 의식이라는 뜻이다.

이 숭고한 삭발의식이 대중에게 패러디(풍자)되고 조롱거리가 된 것은 슬픈 일이다. 자유당사(寺)의 황 방장과 그 수행승(僧)들의 삭발이 이렇게 웃음거리가 된 것은 단순하다. 세속적 욕망과 공천을 받기 위한 정치적 퍼포먼스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황 방장의 삭발은 ‘배교 의식’이라는 비판과 오해를 받을 수 있는 행위다. 근본주의 개신교인인 황 방장은 삭발이 아니라 단식이 더 어울리고 맞다. 지금이라도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한 예수의 고행을 되새기며 삭발 단식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 하루라도 말이다.

의회 혁명을 완수하는 그날 까지 싸우자

국가의 공적 시스템과 의회 제도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그들의 삭발 투쟁, 정치 선동, 시국 선언, 연대 서명은 최후의 발악이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이번 사태를 복잡하고 지저분하게 끌고 가려는 계략이다. 국민들에게 피로감과 정치 혐오를 주고 적대적 분노와 상대적 박탈감을 주입시키려는 술책이다. 이 술책은 일시적으로 먹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마지막은 내부 분란과 참혹한 정치적 심판, 그리고 이합집산하고 합종연횡하는 구태 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이 정권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와 ‘조국을 파면시켜야 우리가 산다.’라는 생떼와 맹신은 이념도 사상도 구국의 일념도 아니다. 오직 그들만의 세상과 정치와 경제적 지위를 탈환하기 위한 선동이자 울분일 뿐이다. 온 나라를 ‘조국’사태로 몰아가고 증폭시키고 확대 재생산하여 국민을 피곤하게 하고 혼란스럽게 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정말 끈질기고 지독한 적폐 세력이자 반동 세력의 지랄 같은 역습이다.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시국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과의 경제 전쟁, 남북문제, 북미문제, 중동문제 등, 산적한 정치적 현안이 우리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폐 세력과 반동 세력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과 기득권을 얻고 지키기 위해 온갖 잡술과 기행을 일삼고 있는 실정이다. 해서 그들이 주장하는 그 어떤 정치적 협상과 행위와 주장도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

촛불 혁명의 완성은 지금의 반동 적폐 세력과의 전면전에서 승리할 때이다. 방심하거나 안일하면 죽는다. 이 세력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조직과 인맥, 자금을 움켜쥐고 있는 토호 지배 세력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반동 적폐 세력은 나라가 거들 나든 말든 혁명의 길목에서 언제나 있어 왔다. 그러나 그 반동을 물리치고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혁명의 주체인 시민의 깨어 있는 정치의식과 조직된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을 다시 모으고 모아 폭발시켜야 할 때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야 한다. 그 길은 촛불 혁명의 완성을 향한 긴 여정이다. 지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더 강해야 한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죽이려고 덤벼들기 때문이다. 지금은 미쳐 돌아가는 환경이자 조건이다. 약간은 뻔뻔할 필요가 있다. 도덕적 결벽증도 버릴 필요가 있다. 우리는 군자도 성직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 어떤 가짜 정보와 찌라시도 팩트로 박살 내야 한다. 썩어 빠진 언론방송과도 싸워 이길 수 있는 정보와 힘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의회 혁명을 완수하는 그날까지 우리는 일어서서 나아가야 한다. 그것만이 반동 적폐세력으로부터 상처받은 이 사태를 극복하는 길이다. 움찔하지 말자. 확신을 가지고 싸워 나가자. 설국열차의 생존 경쟁은 계속 달리는 데 있다. 이것만이 촛불 혁명과 사법개혁을 완수할 수 있는 결집력이자 동력이다. [= 무심지생(서프라이즈 논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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