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의 소설- <딱새의 성> 제13회

두 여자가 나비처럼 이동하여서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영자는 저쪽의 사십대들이 모인 쪽으로 가더니 어느 사내와 손을 잡고 휩쓸려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추는 춤의 동작은 비슷하였다. 서로 섹시함을 과시하려는 듯 전신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흐느적거렸다. 머리를 틀어 올린 영자는 언뜻 보면 전직 필리핀의 영부인 이멜다 여사와 비슷한 이미지를 풍겼다.
학창시절의 어느 땐가 영자는 잡지를 보면서 화려한 의상과 구두로 소문난 이멜다 여사의 저택과 그녀가 찍힌 사진을 들여다보며 감탄하듯,

“여자로 태어나면 이 정도의 여자는 되어야지!”

동경하듯 이멜다 여사를 바라보았다. 지금의 영자는 바로 이멜다 여사와 흡사한 모습이었다. 그 화려함과 권세가 있어 보이는 모습은 사교계의 여왕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영자는 오십 줄로 보이는 남자에게 깊이 몸을 파묻고 춤을 추고 있었다. 영자의 남편도 아까 자신에게 숙맥이라고 비웃었던 여자와 함께 진한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영자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 삼십대 여자를 쏘아보았다. 술에 취한 영자는 몽롱한 듯 눈동자가 빨갛게 충혈 되었다.

잠시 후, 다시 파트너를 교환하려는 듯 그들은 좀 느려진 템포에서 남자와 여자 쪽으로 반으로 나뉘었다. 서로가 마음에 드는 이성을 고르듯 한 남자가 여자에게 손을 끌어 불루스를 추었다. 다른 사람들도 서로가 멋있어 보이는 이성에게 유혹적인 눈짓을 하고 손을 내밀어 서로 껴안고 몸을 밀착시켰다. 마치 꽃과 나비가 한 쌍을 이루는 듯하였다.

인영은 가슴이 답답하여 화장실로 뛰어나왔다. 그곳에서 두 여인이 세면대 부근에서 겉옷을 벗고 속옷 맵시를 거울 앞에서 훑어보고 있었다.

“우리 그인 빨간 립스틱을 짙게 바른 그 의사부인을 원하는 것 같아!”

“그 여자 저번에 우리 그이와 짝이었는데 아무튼 인기가 있나봐! 거의 한 번씩 그 여자와 만리장성을 쌓았다는데.”

“그래? 그럼 그 의사란 분은 어떨까!”

그들은 깔깔거리면서 파티장 쪽으로 향하였다. 화장실에서 돌아와 보니 그들은 만찬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러분에게 이메일이나 초대장을 보낼 서인영입니다. 우리의 프로덕션의 일원이니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들은 환영의 박수를 보냈다. 그 중에는 약간 초라하고 숙맥 같은 그녀의 모습에 냉담하고 무표정으로 바라보는 자도 있었다. 전문대 교수라는 오십대 초반쯤 보이는 남자가 인영을 음란한 표정으로 훑어보았다.

“자, 우리의 프로덕션을 위하여 건배!”

“건배, 원샷!”

인영은 그 어색하고 꺼리는 분위기에 고개를 숙이고 목례를 하였다. 정의식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만찬으로 사람들은 음식을 포식하면서 먹다 지치면 춤추고, 춤추다 지치면 먹고 또 춤을 추었다. 정의식이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곧 영자가 부탁한 일을 착수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돌아가는 손님들의 손에 작은 안내장을 나눠주는 일이다.

‘다음 파티는 이천의 별장입니다. 오늘의 파티에서 선택한 자신의 최고의 짝과 함께 많이 참석하여 주세요.’

이런 내용과 함께 그곳의 약도까지 친절히 안내되어 있었다. 각 사람의 손에 그 안내장을 쥐어주며 인원을 파악하였다. 모두 삼십 명 가량 되었다. 갑자기 어둡고 커다란 무거운 덩어리가 어깨를 짓눌렀다.

‘빨리 가야겠다!’

인원파악을 보고 한 후, 영자에게 아이들 때문이라며 양해를 구하고 재빠르게 그곳에서 빠져 나왔다.

인영은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몹시 혼란스러웠다. 영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많은 사람과 교류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동안 그녀가 벌이고 있는 사교 업이 부부의 친밀함을 도모하는 모임 정도로 여겼었다. 그런데 서로의 부부가 다른 부부와 짝을 지어 춤도 추고 뭔가 은밀한 눈짓과 쾌락의 열정에 불타고 있었다.

영자가 하고 있는 사업의 그 정체를 알고 싶어 하는 동시에 그것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웠다. 나에게는 오직 돈이 절실하다. 친구 사업의 성향을 파악한다는 건 주제넘은 짓이다. 영자가 부탁한 일에만 충실해야겠다. 배려해 준 일자리에만 신경 쓰자.

인영은 의도적으로 그 정체에 쏠리는 생각을 차단해 버렸다. 어쨌든 영자는 자신의 사업에 번창 일로에 있다. 그렇다면 나 서인영은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나?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영자와 비교하며 내면의 신음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학창시절부터 소설책에 빠지고 문자에 친숙한 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라, 내가 부여받은 어떤 기질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무척 소중하며 귀한 자질이다. 소설가가 되는 것은 신나게 기어오르고 싶은 나의 자작나무였다. 내부의 불쏘시개!

어렸을 때부터 여류작가가 왜 그렇게 멋져 보였는지 모른다. 하늘은 사람의 갈 길을 이미 정해놓고 유년시절부터 그의 심장에 정열과 소망을 두고 인도하는 것이 아닐까! 빌 클린턴이 대통령이 된 것도 불우한 환경 속에서 대통령의 꿈을 안고 바라본 시초가 몽상이나 환상이 아닌, 현실의 나무가 되었다.

한때는 멋진 내용의 희곡을 써서 내가 연출하고 연극에 출연도 하고 싶은 열정이 불같이 일어났었다. 그러나 결혼과 계속되는 불운으로 그것을 잠시 묻어두었다.

이제 정의식을 만나고부터 방향성과 기질을 확고하게 깨달았다. 어쩌면 이제부터 나의 시대가 열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는 떠오르는 태양처럼 찬란하게 희망의 빛을 비추어 준다. 몽롱하고 어두운 공기가 상쾌하게 정화되어가는, 신선하고 은근한 전율과 함께 삶의 희망이 다가온다. 오! 나의 희망이여!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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