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 칼럼】 밀물과 썰물 (한애자 - 소설가/극작가)

실의에 빠진 한 세일즈맨은 어느 상가에서 문득 한 그림이 눈에 띄었다. 그 그림은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고 바다는 아득히 먼 곳의 구석에 보일 듯 말 듯한 풍경이었다. 그것은 시원스런 바닷가가 아니고 메마른 모래벌판만 펼쳐있고, 한쪽 구석에는 낡고 초라한 나룻배만 덩그렁히 놓여 있었다. 절망 가운데 빠진 그는 신경질적으로 넓은 바다라도 펼쳐져 마음이라도 달래게 해주기를 기대하였다. 그런 풍경은 온데간데없고 갯벌의 모래벌판, 그리고 한층 더 지치게 하는 초라한 나룻배에 그의 마음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는 한숨을 쉬며 가까이 다가가 그림을 바라보았다

‘왜 이 같은 그림을 그렸을까’

화가는 분명히 뭔가를 표현하고 있으리라 여기며 위로라도 받고 싶은 심정으로 그 풍경화를 오랫동안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 그림 밑에는 자그마한 글자가 쓰여 있다.

“언젠가는 밀물이 밀려올 것이다”

순간 세일즈맨은 자신의 삶이 지금 저 그림처럼 썰물만 있었던 황량하고 힘든 삶의 과정이었던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렇다! 썰물이 있으면 밀물의 시간이 반드시 온다. 반드시 다가오고 있다…….”

그는 실의에서 다시 재기의 용기를 얻었다. 그 후 그는 꿈을 향하여 굳세게 정진하였다. 그가 바로 오늘날 강철의 왕 카네기다.

쓸쓸하고 메마른 그 썰물의 시대를 견디고 참아온 그는, 그 후 성공의 시대의 밀물을 기어코 맞이하여 세계적인 갑부가 되었다. 그는 자만하지 않았고 인생은 썰물의 시대도 있다는 것을 겸손하게 바라보고 그것에 대비하며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살았다.

한 폭의 그림처럼 바닷가는 밀물이 왔다가 또 썰물이 온다. 바닷가 근처에 사는 어민들은 그 현상을 늘 지켜볼 것이다.

문득 어린 시절의 바닷가가 떠오른다. 썰물의 광활한 갯벌이 된 바닷가에 우리는 마음껏 그림을 그리며 뛰놀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보면 어느 새 등 뒤에서 한줄기 물이 성큼 다가온다. 약간의 무서움과 두근거림을 가지고 성큼 점점 다가오는 물살을 피하여 객둑으로 올라온다. 잠시 후 어느 새 우리가 그려 놓았던 그림과 호미로 파헤쳐진 것들을 바닷물이 모두 덮어버린다.

우리는 객둑 위에 서서 창일해진 바닷가를 한참이나 바라보곤 하였다. 저 건너편 아득한 곳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상상하노라면 갈매기들이 파도와 함께 박자를 맞추며 춤을 추고 어느새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어린 시절의 바닷가가 그립다. 밀물 때에 어김없이 밀려오던 물살! 그것은 장차 삶의 회오리일 수 있고 갈망하던 소망의 도래를 암시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 다시 찾은 고향의 바닷가는 저 멀리에 아득하다. 새만금 사업이다 하여 바다가 메워지고 그 주변에는 오색찬란한 화려한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창일하고 풍부한 바닷가의 모습이 사라지고 메마르고 목말라 보이는 바닷가가 된 것이 서글펐다. 마치 지금의 현실처럼 타오르는 목마름의 바다였다.

삶이 무료하고 지칠 때 광활하고 창일한 바닷가는 신선함과 새 힘의 활력소가 되었었다. 이제 줄어들고 환경오염으로 더러워진 듯한 탁한 바닷가를 접하니 답답하고 현기증이 났다.

하얀 탑의 월명탑에 오르니 그야말로 한 눈에 바닷가의 정경을 볼 수 있었다. 나의 가슴은 환해졌다. 바로 그 바닷가!

지나는 행객의 라디오에서 <자살률 1위>라는 단어가 맴돈다. 우리는 지금 총체적으로 매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썰물의 시대라는 현실적 위기 속에, 여기저기 사건 사고로 답답한 현실만 이어지고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이 초라하고 답답한 위기를 극복할 밀물의 시대도 반드시 다가온다. 우리가 힘들어도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살만한 밀물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을 깊이 생각하고 돌아보며 준비해야 할 것이다. 돌아보면 생사희락이 되풀이 되는 인생이다. 밀물의 시대도 적당하게 다가오고 썰물의 시대도 적당하게 다가온다.

깊고 넓은 바다! 풍성한 바다! 생명으로 출렁이는 바다!

그 넉넉한 바다로 채우는 밀물의 회오리가 저기서 보이는 듯하다.

내려오는 길에 지나는 행객의 라디오에서 태진아 가수의 흔쾌한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마음이 즐겁고 담대해졌다.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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