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 장편소설 모델하우스제5회

     - 만남 -

그들은 곁들여 정세원은 조선시대의 선비님이시고 장애춘은 가무를 좋아해서 어울린다고 하였다.
“선비 곁에는 미모의 여인들이 항상 있어야 제 맛이 난다니까!”

이때 마치 아랑드롱처럼 잘생긴 중년의 남교사가 들어왔다. 심정수였다. 그는 약간 성희롱적인 야한 언사를 자주해 여교사들이 피했다. 눈은 쌍꺼풀이 되어서 큰 편이었고 피부도 희고 매끄러웠으며 체격도 적당하였다. 그는 누가 보아도 미남자였으나 분위기가〈색을 밝히는 남자〉로 낙인이 되어버린 이상, 품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회식자리에는 언제나 빠짐이 없이 참석했으며 교직원 연수 때는 항상 여선생들에게 먼저 다가가 브루스를 추자고 치근대는 남자였다. 야하고 음흉스런 남자, 능글맞은 교사로 여교사들은 싫어했다. 심정수는 애춘의 얼굴을 흘깃거리며 자세히 훔쳐보고 있었다. 지선의 예민한 직관력이 심정수를 파악하며 애춘에게 위험한 증후를 예감했다.
심정수가 약간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마를 찌푸렸다.

“정 선생은 언제나 여선생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무슨 비결이라도 있으신지요!”
정세원에게 눈을 찡긋했다. 그러나 정세원은 약간 어색하게 웃을 뿐 말이 없었다.

“정 선비님! 여기 매향이가 오랜만에 뵈러 왔는데 괜찮으신지요?”

약간 분위기가 코믹한 분위기로 급전되었다. 애춘은 코믹한 분위기로 연기하듯 하였고 특히 애교 섞인 콧소리가 정말 기생 매향이를 뺨 칠 정도였다.

“전 가무와 술을 좋아하니 딱이죠!”
자신의 기질을 파악하고 있었고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말에는 언제든지 술자리를 함께할 의향이 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흥! 역시 정 선생에게 아주 관심이 많으시군요!”

심정수가 부러워서 못 견디겠다는 듯하다.

“아, 아니…, 아는 친구가 장애춘에게 신경 좀 써주고 잘해주라고 몇 번이나 심신당부를 해서 말이지!”
“아! 그러면 특별 VIP로 대해야겠군요.”

심정수는 애춘의 몸매를 음흉한 눈빛으로 훑어보았다. 지선은 좀 어색하고 심 선생의 느끼한 분위기에 어서 자리를 뜨고 싶었다. 그러나 애춘은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정세원에게 매우 집요하며 애틋하게 매달리는 마음의 파도가 여실히 엿보였다.

“아무튼 정 선생이 있는 곳에 장 선생이 어김없이 언제나 나타난단 말이야…!”
돌아서서 나오는 그들의 뒷모습을 향하여 심정수는 내쏘듯 말했다.
“정말 정 선생님은 고매한 선비 같은 분이셔! 점잖고 인격의 향기가 우러난단 말이야!”

극구 칭찬하며 웃는 모습으로 되돌아서 애춘은 미술실로 향하였다. 지선도 2-5반 수업을 들어가면서 애춘의 그 들뜬 모습이 떠올랐다. 보통 여자들이 하기 어려운 말들을 그녀는 부끄러움 없이 내뱉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아주 꾸밈없는 천진한 면과 친근감이 있었지만, 같은 여자로서 매우 당황케 하였다. 지선이 느낀 것은 눈치 없는 언행보다는 내부의 어두움과 결핍, 외로움을 읽을 수 있었다.

‘장 선생은 참 재미있고 개성이 강하다. 그러나 그 내부에는 어린아이와 같은 작은 아이가 들어 앉아 있구나. 뭔가에 굶주리고 쫓기는 듯한 그런 공허함이랄까!’

지선은 사람마다 그 만남에는 어떤 깊은 인연의 줄이 있다고 여겼다. 그것은 하늘이 맺어주는 기회이기 때문에 소중히 여겼다. 지선이 애춘을 처음 보았을 때, 그녀와 자신의 이미지는 매우 상반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이질적으로 여기고 멀리하기보다, 반감이나 거부감이 없이〈연민〉과 같은 어떤 끈끈한 정이 끌어당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기와 정반대의 스타일에 대해서 두 가지로 반응하게 된다. 그 하나는 극단적으로 배척하거나 극단적으로 추종하는 형태이다. 그러나 지선은 애춘과의 만남을 어떤 운명의 끈으로 예감하였다. 하늘은 사람과 사람과의 역동적인 작용을 통하여서 역사를 펼쳐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온라인커뮤니티

수업을 마치고 복도로 통행하는데 교무부 선생들이 웃으며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선을 보자 애춘과 늘 함께 친하게 지내는 것을 의아해하며 경계의 분위기였다. 그들은 애춘의 옷차림과 그 특이함에 대해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꼴불견’이라는 말이 언뜻 들렸고 명품 치장인데 모두 어색하고 유치하다고 수군대고 있었다. 지선은 그들의 입에 애춘이 오르내리는 것이 불쾌하였다. 그들의 말대로 애춘은 화려하고 특이한 옷차림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고, 교사답지 않은 진하고 야한 언사로 동료들을 매우 당황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 야한 언사에는 언제나 <남자>와 연관하였고 핀트가 맞지 않는 유치함이 어려 있었다. 애춘은 동료 여교사들과 합류하려 하였으나 그들과 어울림이 부자연스럽고, 언제나 불안해 보이고 표정은 어두웠다.

학교 업무에는 제법 충실한 편이었고 학생들 지도에도 열의가 있어 보였다. 그녀 또한 학생들을 좋아했고 의외로 학생들에게는 인기가 있었다. 아마 그것은 자신들의 문화를 잘 이해해주고 신세대 선생님이라 여기듯 그녀의 패션부터 캐주얼하고 연예인 흉내를 내는 분위기라 인기 짱이었다. 학생들과 함께 하는 삶의 모습은 매우 활기가 있어 보였다. 그녀는 학생들이 하교한 후, 교실에 혼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 멍하니 앉아 있거나 모두 퇴근한 텅 빈 교무실 창가에서 운동장 쪽을 내다보며 한숨을 쉬는 모습을 지선은 몇 번인가 훔쳐보았다.

석양이 지는 어느 여름에는 맨 나중에 외롭고도 쓸쓸한 모습으로 교정에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사람들은 애춘을 ‘야한여자’ 또는 ‘남자 밝힘증’ ‘명품중독'으로 부르며 따돌리듯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애춘의 이러한 고독한 모습을 전혀 상상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지선은 왠지 애춘에게 연민을 느끼며 솔직하고 단순함에 끌리기 시작 했다. 지선은 자신과 다르다고 거부하고 소외시키는 것은 잔인한 죄악이라고 되뇌이며 마음에서 진심으로 애춘의 입장에서 변호해 주고 싶었다.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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