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 교수)

촛불의 항거, 촛불 시민 혁명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0월 29일 서울 청계광장에 시민 2만 명이 모여 처음 시작된 “박근혜 퇴진” 촛불의 항거는 11월 12일 제3차 촛불 집회에서 100만 명을 넘겼다. 그리고 12월 3일 개최된 제6차 집회에서는 전국에서 232만 명이 촛불의 항거에 나섰다. 그 결과는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탄핵의 압도적 가결로 나타났다. 국민의 81%가 탄핵에 찬성하는 여론조사는 거의 그대로 국회의 탄핵 가결에 반영되었다. 국회의원 299명이 투표해서 234명이 탄핵 찬성에 투표해 78%의 압도적 찬성을 기록했다. 촛불 시민의 힘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진행의 양상으로 보자면, 이는 가히 촛불 시민의 명예혁명이다.

# 누가 박근혜 탄핵을 지지했는가?

먼저 박근혜 탄핵의 사유부터 살펴보자.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헌법을 위배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법률을 위배한 것이다. 먼저, ‘헌법 위배’이다. 첫째, 박 대통령은 공무상 비밀 내용을 담고 있는 각종 정책 및 인사 문건을 최순실에게 전달해 누설하고, 최순실 등 비선실세들이 국가정책 및 고위 공직 인사에 관여하도록 했고, 또 최순실 등의 사익을 위해 대통령의 권력을 남용해서 사기업들로 하여금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을 갹출하도록 강요해서 최순실 등이 국정을 농단하도록 했다. 이것은 헌법의 국민주권주의와 대의민주주의 조항 등을 위배한 것이다.

둘째, 박 대통령은 청와대 간부들 및 문화체육관광부의 장·차관 등을 최순실 등이 추천하거나 최순실 등을 비호하는 사람으로 임명했다. 이것은 직업공무원 제도와 대통령의 공무원 임면권 등을 위배한 것이다. 다음으로, ‘법률 위배’인데, 뇌물죄, 직권남용죄, 강요죄, 문서 유출 및 공무상 비밀 누설죄 등이 그것이다.

헌법은 국가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법률은 헌법의 지향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정치사회적 합의이다. 그러므로 헌법을 수호하고 법률을 지키는 것은 보수나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우리 사회 전체의 일이다. 대통령이 헌법을 수호하지 않고 법률을 어겼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위헌과 위법 상태가 심판·교정되지 않는다면, 그런 사회는 희망 없는 정치 후진국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므로 헌법과 법률이라는 우리 사회의 공통적 가치와 규범을 지키는 데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이미 명분은 헌법과 법률을 어김으로써 헌법 수호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박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심판을 가하자는 쪽에 있었다. 어떤 이유로도 이를 부인하는 세력은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232만 명이 참여했던 제6차 촛불 집회에는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했던 사람들도 상당수 참여했을 것이다. 최근까지 이루어진 촛불의 항거 대열에는 진보 성향의 국민들뿐만 아니라 보수 성향의 국민들도 참여했다.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 같은 진보 성향의 언론들뿐만 아니라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와 이들의 종편TV도 연일 박근혜 심판과 끌어내리기에 올인 하다시피 했다.

진보 성향의 언론들이 보수 출신의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때리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보수 언론이 보수 출신인 박근혜 심판의 최선봉에 나선 것은 기존의 상식으로는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보수 종편에 나와서 늘 야당과 진보 진영을 비판하고 박근혜 찬가를 부르던 정치평론가들이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태도를 180도 바꾸어 박근혜를 물어뜯도록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 보수 언론과 주류 엘리트들이 박근혜 죽이기에 앞장선 진짜 이유

최근 한 달여 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4-5%에 머물렀다. 응답자의 거의 90%가 부정적 평가를 했고, 81%는 탄핵을 지지했다. 4-5% 정도의 극우 또는 극우적 성향의 일부 유권자들만이 박근혜를 지지했고, 중도 보수 또는 합리적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 대부분은 박근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심지어 탄핵을 옹호했던 것이다. 민심의 이런 흐름이 우리 사회의 보수 언론과 지배적 엘리트들로 하여금 박근혜로부터 등을 돌리도록 했을 것이다. 보수 언론을 포함한 보수 엘리트들은 국정농단 사건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표면화되기 이전부터 이미 ‘문제가 많은’ 박근혜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는 차기 대선의 승리뿐만 아니라 보수 정치 세력의 생존도 어렵겠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보수 엘리트들은 선제적으로 박근혜 죽이기에 나선 것이다. 특히 보수 언론의 활약상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가능한 모든 인적 자원과 정보 자원을 총동원하다시피 했고, 결국 이들 보수 세력은 박근혜 탄핵에 성공했다. 모양새를 제대로 갖춘 것이다. 박근혜 탄핵이라는 거사에서 보수 언론을 포함한 보수 세력은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보수가 총망라된 ‘협력적 모양새’를 만들어냈다. 보수 세력은 그들이 옹립한 보수 대통령 박근혜의 거대한 도덕적 실패와 위법 상황을 미리 간파하고 진보-보수 연합 작전으로 위헌적 국정농단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래서 보수 세력은 그들이 수호하려는 가치를 담은 헌법과 법률을 어긴 박 대통령을 탄핵한 일등공신의 명부에 이름을 올렸고, 촛불 민심의 절반은 보수 지지자들이라고 주장할 근거를 획득했다. 이것은 썩은 환부를 선제적으로 도려내는 보수 세력의 전략적 유능함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것은 정치적 변동에 따른 정치 공학적 설명이자 일정하게는 표면적인 이유이다. 보수 언론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보수 엘리트 세력이 박근혜 탄핵에 앞장선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이것은 지난 대선 당시에 보수 세력이 정치인 박근혜를 선택하고 지지한 본질적 이유와 같은 것이다. 우리 사회의 보수 엘리트 세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형성된 신자유주의 경제-사회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길 원한다. 규제완화와 감세 기조를 견고하게 지켜줄 보수적 자유주의 대통령을 원하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일차적 원칙 하에서 당선 가능한 정치인을 지지하게 되는데, 지난 대선 당시에는 박근혜가 바로 여기에 해당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적 내용을 다 담고 있는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치를 세운다)의 신념을 고집스럽게 밀고나갈 강력한 리더십의 소유자가 바로 박근혜 후보였던 것이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에는 복지국가 담론과 보편적 복지 정책들이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었기에 이명박 대통령 식의 노골적인 민영화 노선을 필두로 하는 신자유주의 담론과 정책들로는 승산이 없었다. 그래서 보수 엘리트 세력에게 박근혜 후보는 더욱 매력적이었다.

당시 정치인 박근혜는 박정희 마케팅에 성공해서 “내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라며 야권의 진보적 복지국가 노선에 비해 결코 밀리지 않을 정도로 ‘복지국가 정치’를 선도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이 완전히 국민을 속이기 위한 ‘정치적 쇼’라는 사실을 보수 엘리트 세력은 이미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선 후, 결국 박 대통령은 신자유주의 <줄·푸·세> 노선의 실천자로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이명박 대통령보다 더 영리하게 신자유주의 규제완화를 실천했고 감세 기조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노선을 잘 실천하던 박근혜에게서 큰 결함이 발견된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그것인데, 결국 보수 언론은 이 게이트를 선제적으로 파헤치고 박근혜를 죽이는 데 앞장섰다. 신자유주의 보수 엘리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박근혜를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보수 세력과 신속하게 분리하는 방안을 실천했던 것이다. 이들 보수 세력이 박근혜를 탄핵한 사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신자유주의 경제사회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민생을 어렵게 했다는 것이 아니다. 오직 헌법과 법률을 어겼다는 것인데, 그들의 입장에서는 국정농단을 통해 보수적 가치를 침해했다는 것이 박근혜 탄핵의 결정적 이유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진보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버리면 보통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게 된다.

여기서 우리 사회의 보수 세력이 박근혜 죽이기에 앞장서고 박근혜를 탄핵한 진짜 이유가 분명해진다. 그것은 국정농단을 통해 위헌과 위법을 자행한 박근혜를 신자유주의 주류의 보수 세력과 철저하게 분리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신자유주의 경제-사회 질서를 지켜내고 보수 정치 세력을 보존하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보수 세력은 이번 기회에 박근혜와 함께 박정희 신화까지 묻어버리길 희망할 것이다. 사실 박정희 신화는 신자유주의 주류 세력의 입장에서도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성장의 신화인데, 이것은 성장지상주의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세력에게 우호적인 신화였다. 다른 하나는 관치경제와 정경유착으로 불리는 국가자본주의(발전국가) 신화인데, 이것은 지금의 신자유주의와는 구조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이다.

# ‘앙시앙 레짐’을 끝낸다는 말의 진짜 의미

앙시앙 레짐, ‘낡고 썩은 체제’를 척결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요즘 언론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다. 이것이 시대적 과제라고도 한다. 진보뿐만 아니라 보수도 이런 주장을 한다. 신기하게도 양대 진영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진보와 보수가 공통분모로 인식하고 있는 앙시앙 레짐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난 위법 행위인데, 그것의 핵심은 권위주의적 ‘정경유착’이다. 박 대통령이 재벌 대기업들에게 각종 이권을 주고, 그 대가로 미르재단 등과 최순실이 재벌 대기업들로부터 이득을 취했다는 것이다. 제3자 뇌물죄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권위주의적 정경유착은 박정희 시대의 창작물이다. 그런데 이것이 박근혜의 정치적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가 긴 세월이 지난 후에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낸 것이다.

앙시앙 레짐으로 간주되는 권위주의적 정경유착은 우리나라에서 외환위기 이후에는 다분히 예외적인 상황이다. 이전의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서는 없던 일이기 때문이다. 선진 복지국가들에 비해 우리 사회의 부정과 부패 수준이 여전히 높은 편이지만, 그럼에도 이것이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본질은 아니다.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는 우리 시대의 앙시앙 레짐으로 ‘정경유착’을 언급하며, 이것의 척결이 마치 민주공화국의 완성인 것처럼 호도한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박정희 시대의 권위주의적 정경유착이 판치는 그런 관치경제 체제가 아니다. 오히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난 20년 동안 시장과 경제의 자유화가 너무 방임적이고 지나쳐서 시장만능주의의 온갖 문제들이 심각한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경제와 산업의 양극화와 소득의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민생을 극도로 불안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앙시앙 레짐을 끝낸다는 것이 촛불 시민혁명의 핵심 슬로건이어서는 안 된다. 지금 앙시앙 레짐의 내용으로 언급되는 박근혜-최순실의 ‘정경유착’ 범죄 행위는 뇌물죄 등으로 엄하게 책임을 물으면 될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짜로 끝내야 할 앙시앙 레짐은 구조적 차원에서 양극화와 불평등을 초래한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 체제이다. 앞으로 여기서 진보와 보수가 갈라질 것이다. 보수는 박근혜-최순실의 ‘정경유착’ 범죄 행위를 앙시앙 레짐으로 간주하고,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강조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최종 귀결은 정부의 간섭과 규제가 없는 ‘더 자유롭고 더 큰 시장’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보수 엘리트들이 그들 스스로 옹립한 대통령 박근혜를 선제적으로 타격하고 탄핵하면서까지 간절하게 원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이런 세상은 보통사람들에게는 지난 20년 동안의 불안한 삶과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일 뿐이다.

# 촛불 명예혁명이 만들 나라: 신자유주의를 넘은 역동적 복지국가

앙시앙 레짐 척결 이후에도 지금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계속된다면, 보통사람들의 삶은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의 신자유주의 체제는 양극화와 불평등으로 요약되는 보통사람들의 불안과 불행의 시기였다. 그래서 촛불 시민혁명은 양극화와 불평등의 해소를 요구해야 하며, 당연히 그 과녁은 신자유주의 체제가 될 것이다. 그럴 때라야 보통사람들의 저항이 자유주의의 한계에 갇히지 않게 되며, 보통사람들의 분노가 국민행복의 역동적 복지국가 시대를 여는 건설적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는 이미 약 30년 전에 정치적 민주주의를 위한 거대한 투쟁을 경험했었다. 1987년 6월 항쟁이 그것인데, 우리는 6.29 선언이라는 항복문서를 받아내고 87년 헌정체제를 출범시켰다. 이후 대한민국은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절차적 민주주의 완성했고, 노무현 대통령 덕분에 권위주의적 정치 행태도 상당부분 해소했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의 삶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실질적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하려는 정치사회적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2010년쯤 복지국가 담론과 보편적 복지에 기반을 둔 경제-복지 통합 모델이 공론화되기 시작했고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여야 후보 간의 복지국가 대결 구도도 만들어졌지만, 박 대통령의 국민 배신과 야당의 무능으로 인해 국민행복의 복지국가 시대에 대한 국민적 기대와 열망은 처참하게 무시당했다. 그렇다고 지금의 민생과 복지 현실이 그때와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오히려 보통사람들의 살림살이가 더 나빠졌다. 그래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경제사회적 민주주의 체제, 곧 역동적 복지국가가 바로 지금의 촛불 시민혁명이 목표로 향해야 할 곳이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사회계약을 필요로 한다. 진짜 민주주의를 향한 정치적 사회계약으로 역동적 복지국가를 요구하는 촛불 시민의 거대한 압박이 필요하다. 그것은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고 보통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사회계약이어야 한다. 지금의 불안과 불행 대신에 장차 보통사람들의 안심과 행복을 보장할 만한 그런 종류의 사회계약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대의정치는 실패했다. 기성 정치에 대한 거대한 불신이 바로 그 증거이며, 그래서 지금 참여 민주주의의 촛불 시민혁명이 그 에너지를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과정에서 지금의 신자유주의 체제를 극복하고 역동적 복지국가의 새 시대를 열어갈 ‘깨어 있는 시민들’이 거대한 규모로 조직되길 희망한다. 그리고 복지국가의 담론과 정책들로 무장한 ‘깨어 있는 시민들’이 촛불 시민혁명의 에너지로 다가올 대선을 국민행복의 복지국가 시대를 여는 거대한 혁명적 축제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길 간절하게 기대한다.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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