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산 김덕권행복 론 

 

세상의 많은 위인(偉人)들이 행복 론(幸福論)을 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별로 잘 알지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행(幸)’과 ‘복(福)’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행’이란 정신적인 충족감을 말하며, ‘복’은 물질적인 충족감을 말합니다. 따라서 불행이라는 말은 정신적 물질적으로 충족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원불교의 교리 중 <영육쌍전(靈肉雙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과 육신을 아울러서 건전하고 튼튼하게 그리고 조화 있고 균형 있게 발전시켜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정신생활과 물질생활, 정신과 육신, 이상과 현실의 조화 발전으로 영육일치의 생활을 하는 것, 바로 이것이 행복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에 대해 정신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나, 영혼보다 육체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영혼과 육체의 균형 있는 조화 발전을 가져오기 어렵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정신과 육신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것이 바로 행복일 것입니다. 아무리 정신이 아름답더라도 육체가 병든 사람은 세상을 위해 크게 공헌하거나 가치 있는 삶을 살기가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육체가 아무리 건강하더라도 정신이 병들고 타락한 사람은 세상에 해독을 끼치기가 쉽고 스스로도 불행해지기 쉬운 것이지요. 그래서 아름다운 정신에 건강한 육체를 가져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육쌍전의 생활은 가치 있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건전한 정신과,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건강한 육체를 아울러 갖추어 정신과 육체가 조화 있게 발달한 인간이 되게 하는 공부가 행복 론일 것입니다.
 

이렇게 ‘행(幸)’과 ‘복(福)’을 아울러 누리려면 삼학수행(三學修行)을 해 삼대력(三大力)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삼학은 <정신수양(精神修養)> <사리연구(事理硏究)> <작업취사(作業取捨)>를 말합니다. 이 삼학을 아울러 닦음으로써 진리를 깨치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깨친 사람은 건전한 정신으로 영혼을 구제하고, 의식주의 풍요로운 생활로 생명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튼튼한 몸을 가져, 심신을 아울러 조화 있게 발전시키는 것이지요.
 

그럼 우리가 행복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 합니다. 오늘은 그냥저냥 보내고 내일부터 행복할 거야하며 세우는 계획은 언제나 또 다른 내일로 미루어질 뿐 행복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행복하려면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내일은 무수히 많지만 오늘은 언제나 한 번뿐이기 때문입니다.
 

배신의 트라우마 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16일 검찰 조사에서 최순실(61)씨는 박근혜 대통령 곁을 떠나지 못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고 합니다. 국정 농단 사건의 핵심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최씨는 박 대통령의 심리 상태를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니까 최순실의 말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배신의 트라우마가 강해 자신에게 의지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트라우마라는 말은 신체적, 정신적 외상(外傷)을 말합니다. 외상의 사전적 의미는 ‘사고나 폭력으로 몸의 외부에 생긴 부상이나 상처를 이르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트라우마는 주로 신체적 외상보다는 심리학과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심적 · 정신적 외상(Psychological Trauma)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트라우마 때문에 권력운용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후 수 많은 인간적인 배신을 당한 경험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주변 사람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는 지적이지요.
 

그런 불행을 막고 모두가 행복을 구가(謳歌)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첫째, 타인의 관심입니다.

내가 상상하는 것만큼 세상 사람들은 나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보통 사람은 제각기 자기 생각만 하기에도 바쁩니다. 남 걱정이나 비판도 사실 알고 보면 잠시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삶의 많은 시간을 남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걱정하면서 살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둘째, 타인의 호감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줄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입니다. 내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데, 어떻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줄 수 있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에 얼마나 가슴 아파하며 살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모두가 나를 좋아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지나친 욕심입니다.
 

셋째, 모든 일은 나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한다면서 하는 거의 모든 행위들은 사실 나를 위해 하는 것이다.’ 라는 깨달음입니다. 그러니 제발,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남의 눈치 그만 보고,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것입니다.
 

넷째,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한결 같은 사람이 아주 드뭅니다. 그러니까 죽고 못 사는 사이일지라도 이해관계가 어긋나면 배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보고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 배신을 당했다고 미워 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다섯째, 업(業)을 잘 다스리는 것입니다.

행복하기를 원하거든 지금 나에게 다가온 업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업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기꺼이 받고 다시는 나쁜 업을 짓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원망 심 까지도 감사심으로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영원한 행복을 누리려면, 정신수양을 통하여 생사자유와 극락수용과 만사성공을 하는 것이고, 사리연구를 통하여 사리통달과 중생제도와 만사성공이요, 작업취사를 통해 만행구족과 만복원만과 만사성공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삼학이 우리들이 구하는 진정한 행복 론이 아닐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3월 7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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