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 칼럼니스트이생 망, 이생 포

지난 4월 8일, 9급 공무원시험이 치러졌습니다. 원서접수 현황에 따르면 2017년 국가공무원 9급 선발 예정 인원은 모두 4,910명이며, 접수 인원은 자그마치 22만 8,368명으로 경쟁률이 46.5대 1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통계청이 지난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청년 실업률이 1999년 실업자 분류기준을 조정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하네요. 미디어에선 끊임없이 ‘명퇴거부 자 빈 책상 대기발령’, ‘출산 순번제’, ‘20대 희망퇴직’ 같은 등골이 저릿한 뉴스가 보도되고 있습니다. 정말 취업도 어렵지만, 취업 후에도 쉽지 않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불안정한 청춘들은 이를 잘 알기에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인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그 방향이 바로 9급 공무원 지망입니다. 어느 공시생의 토로한 바에 따르면, 해도 제 모습을 미처 드러내지 않은 새벽 5시 반, 평소라면 단꿈을 꾸고 있을 시간에 거리를 나섭니다. 두꺼운 패딩 점퍼에 츄리닝 바지, 바짝 둘러맨 백 팩은 공시 생에겐 교복과 다름없다고 합니다.

 

얼마 전, 철거된 노량진 육교를 공시생들은 ‘속세로 가는 다리’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육교가 사라진 이 자리에서, 아직 다리를 건너지 못한 공시 생들의 하루가 어김없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아침 햇살보다 학원 간판의 불빛이 먼저 거리를 비추는 노량진 골목, 고등학교 교실 크기만 한 공간에 벌써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앉아있습니다.

 

촘촘하게 들어선 책상과 벌써 자리를 채운 사람들 탓에 교실은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칠판 앞이나 모니터가 잘 보이는 명당자리는 새벽부터 기다려야만 겨우 앉을 수 있습니다. “명당을 맡으려는 대기 줄은 새벽 5시 반부터 시작해 학원 문이 열릴 때까지 길게 이어진다.”고 말합니다. 수업 시작까지 10분 남짓한 시간. 칠판은커녕 모니터도 잘 보이지 않는 구석 자리가 답답해 주위를 둘러보지만 대답 없는 차가운 뒤통수만 가득합니다.

 

강사는 시작부터 “공무원 시험은 사정 딱한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공부 잘하는 사람을 뽑는다.”며 학생들의 의지를 다집니다. 공무원 시험은 ‘떨어트리기 위해 보는 시험’이나 다름 없다고 합니다. 내가 졸면 다른 사람이 붙는 격입니다. 그런데도 자리가 꽉 찬 모습을 보니 최대 46.5대 1이라는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피부에 와 닿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도 청춘을 치열하게 살았지만 오늘날의 젊은이들의 삶은 우리가 상상도 못할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 원불교 여의도교당 설법에서 <이생 망, 이생 포>라는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이생 망>은 ‘이번 생(生)은 망했다’를 줄인 말이고, <이생 포>는 ‘이번 생은 포기했다’는 말의 줄임 말이라고 하네요.

 

그럼 청년들은 정말 망한 것일까요? 지난 해 12월 <경향신문>이 청년 1,000명을 대상으로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지, 있다면 이번 생이 망한 시점과 원인을 조사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41.3%가 망했다고 응답했습니다. 그 원인을 ‘본인’이라고 64.6%가 지목했고, 그 뒤로 ‘사회’가 58.4%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이생 망> <이생 포>는 주로 청춘들이 쓰는 말입니다. 그리고 가끔은 철없는 어른들이 “나도”하며 가세한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가 지옥이거나 지옥이 되었거나 해서 도무지 희망이 안 보인다는 자탄(自歎)의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은 자신을 용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별다른 방법이 없을 때 그런 끔찍한 자기 진단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공무원이 아니면 살 수 없는 것도 아닌데 청년들이 함부로 <이생 망> <이생 포> 같은 말을 입에 올려서는 안 됩니다.

 

이 <이생 망> <이생 포>에 직면한 젊은이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면 어떨까요? 한국산업인력공단 국제협력본부에서는 일자리가 늘지 않는 국내에서 벗어나 해외로 눈을 돌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물론 해외에 진출한 국내 기업에 청년인력을 동반 진출시키는 등 다양한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고 하네요.

 

지금 미국, 일본은 물론 급속한 경제성장을 한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에서 전문 분야의 일자리를 많이 요청하고 있어 구직자의 노력에 따라 해외취업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합니다. 또한 앞으로 해외 취업설명회 확대를 통해 해외 일자리 창출은 연간 2000명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산 없이 추진하는 해외 일자리 알선사업은 앞으로 5년 동안 1만 명 수준으로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또한 내년부터 실업급여 대상자에 대한 교육프로그램을 처음으로 가동해 2000명의 해외취업도 성사시키겠다는 게 공단의 목표라고 하네요.

 

해외 일자리 창출과 함께 국제협력본부가 추진하는 사업은 30년 동안 쌓아온 직업훈련, 국가기술자격 검정, 노동시장 정보의 노하우를 후발개발도상국에 전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공단에서는 “아시아, 아프리카, CIS 등의 국가는 인적자원 개발에서 격차가 큰 미국, 유럽, 일본보다는 한국형 모델을 쉽게 접목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수익모델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공단에서는 “최근 우즈베키스탄, 탄자니아, 예멘, 카메룬, 네팔, 스리랑카 등 10여개 국가에서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등의 유상차관을 활용해 한국의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한 인력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단은 올해 ‘국제HRD용역팀’을 발족시켜 한국형 인력개발 모델, 직업훈련센터, 노동시장 DB 제공, 컨설팅 등의 노하우를 후발개발도상국에 본격 전수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네요.

 

그렇습니다. 한 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세상이 넓어 우리 젊은이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 역시 딸애가 둘이 있습니다. 큰애는 한국에서 의상학과를 졸업하고 무작정 뉴욕으로 건너가 이제는 세계적인 의류회사에 디자인실장으로 일하며 아메리카드림을 이루었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새 마음을 가지고 공부와 사업에 힘쓰면 인생이 새롭게 펼쳐집니다. <이생 망, 이생 포>라는 허망한 생각에 사로잡히면 안 됩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니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4월 20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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