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차이나타운의 밤

서울의 차이나 타운으로 불리는 영등포구 대림동에 ‘차이나 머니’가 몰리고 있다. 한국에 정착한 한국계 중국인(조선족)은 물론 중국 본토의 큰손들까지 안정적인 임대 수익을 노리고 투자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중국어로 된 간판들이 거리를 밝히고 향신료 냄새가 강렬한 이곳은 ‘대림동 차이나타운’이다. 한국으로 건너온 중국인들은 90년대 후반부터 하나둘씩 여기 정착했다. 집세가 비교적 저렴하고 일자리가 있는 구로공단과 가깝다는 이유였다. 

 
대림동 차이나타운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코리안드림을 안고 일자리를 찾아 들어온 조선족들이 대림1동쪽 작은 골목에 모여 살던 것이 주변 대림2·3동으로 퍼지면서 형성됐다. 이 일대는 낡은 주택이 많아 주거비가 상대적으로 낮았고, 이 때문에 많은 조선족이 몰려들었다. 일거리가 많은 서울 강남 지역으로 통하는 지하철 2호선 대림역이 가까운 것도 이들에게 매력적이었다. 대림동 차이나타운은 중국인들이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삶의 터전이다. 직업소개소가 골목마다 있고, 본국으로 송금을 하기 쉬운 환전소와 비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행사도 즐비하다. 주말에는 전국에 퍼져있는 중국인들의 만남의 장소가 된다. 지방 곳곳에 흩어져 있다가도 결혼식이 있으면 대림동에 모여 기쁨을 나눈다.
 
중국인 사이에서 대림동이 ‘뜨는 동네’가 되면서 대림동 일대 임대료와 권리금은 최근 5년간 4배나 뛸 정도로 빠르게 상승했다. 차이나타운은 중국인들에게 ‘기회의 땅’이다. 대림동에 17년 동안 거주한 조선족 A씨는 한국을 “돈을 벌기 좋은 나라”라고 했다. 조선족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견뎌가며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려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억척같이 살아왔다고 한다. 이제 그는 어엿한 양꼬치 가게를 차렸다.
 
그 덕분에 대림동 일대에는 ‘블루칼라’인 조선족을 겨냥한 상권이 발달했다. 게다가 한국으로 여행 온 유커(중국 관광객)들까지 저렴한 물가와 이색적인 분위기에 이끌려 대림동을 찾고 있다.대림동에 중국인들이 물밀 듯이 들어오면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다른곳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인들도 있다. 평생 동안 대림동에 살아온 잡화점 주인 B씨는 “여기서는 한국 사람이 외국인”이라고 말했다. 이제 그는 이방인 속 이방인이 돼버렸지만 중국인들과 가깝게 지내며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해왔다.
 
   "17년 전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식당일을 했어. 아니면 주로 현장일을 나갔지. 식당일은 하다가 힘들어서 못하고, 돈을 조금 벌게 되니가 모아서 보신탕집을 차렸어. 가게를 연지는 4년 정도 됐지. 지금은 적응하니까 괜찮아. 요즘은 중국사람 없는 곳이 없잖아."
 
 "60년 동안 대림동에 살았어. 당연히 옛날과 지금은 많이 다르지. 한국 사람이 다 빠져나가고 중국 사람들이 들어왔어. 여기서는 한국 사람이 외국인이야. 한국 사람은 몇 사람 안 남았지. 나는 고향이니까 여기서 그냥 살아. 60년이나 여기 살았는데 어떻게 나가겠어. (중략) 사람들은 다 순수해. 한국 사람도 나쁜 사람 있고, 좋은 사람 있잖아 똑같아. 다만 문화차이가 있어서 그래. 나는 그냥 이해하려고 해. 조선족은 소수민족인데다가 한국 사람들한테 대접을 못 받아서 똘똘 뭉쳐있어. 중국에서도 괄시받고 여기서도 괄시 받잖아." 서울의 차이나 타운으로 불리는 영등포구 대림동에 ‘차이나 머니’가 몰리고 있다. 한국에 정착한 한국계 중국인(조선족)은 물론 중국 본토의 큰손들까지 안정적인 임대 수익을 노리고 투자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서울대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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