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이어.. 세월호 추모식, 장관들도 안간다

1년이 지났다. 잔인한 계절이라지만 특히 더 잔인했던 지난 4월이었다. 생떼같은 아이들을 시커먼 바다에 가둬둔 부모들이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며 이성을 상실해 간 전남 진도군 팽목항. 이곳에도 다시 꽃피는 봄이 왔다.

[연합통신넷= 심종완기자] 벚꽃과 유채꽃이 만개한 큰길을 돌아 들어간 팽목항은 그날의 흔적이 점차 옅어지고 있었다. 팽목항 방파제에 매달린 샛노란 리본들도 지난 1년간 비바람에 시달려 하얗게 색이 바랬다.

 

↑ 지난 10일 찾은 전남 진도군 팽목항. /

세월호 희생자들의 시신이 수습돼 육지로 들어와 가족들이 검안을 했던 곳에서 이제는 낚시꾼들이 낚싯대를 드리웠다. 그 옆에서는 한 스님이 사고해역을 바라보며 조용히 목탁을 두드리며 기도를 올렸다.

"생각하면 답답하니까, 참사의 진실 앞에 서는 것이 힘드니까 비껴가고 싶은 거죠. 그러나 사람을 해치는 이런 참사 앞에서 눈 감으면서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 비겁해지지 맙시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에서 파견해 팽목항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는 최민석 팽목항성당 신부가 말했다. 매일 오후 4시, 초록색 천막으로 만들어진 팽목항성당에서는 기도 소리가 울려퍼진다.

 

↑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설치된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

수십 개의 임시 천막과 자원봉사 차량들로 발디딜 틈 없었던 팽목항. 이제는 희생자 가족들이 생활하는 컨테이너 박스 9개와 식당, 화장실 등 필수 시설과 분향소 하나만이 남았다.

딸을 만나기 위해 팽목항을 찾은 단원고 2학년3반 고(故) 김소연양의 아버지는 딸을 보낸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딸바보'다. "우리 딸은 맨날 '커서 아빠 같은 남자 만나겠다'고 했어요. 그러면 내가 '이런 남자 없다, 만나면 횡재하는 거'라고 답하고 그랬어요."

국어선생님이 꿈이었던 똘똘한 딸 소연이. 아내와 이혼하고 그에게 남은 4살짜리 딸은 그를 세상에 붙어있도록 지탱해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용접일을 하면서도 남부럽지 않게 하고 싶다는 것 다 하게 해주며 키운 귀한 딸이었다.

"부모들끼리는 이런 얘기를 가끔 해요. 진상규명 다 끝나고 나면 삶을 포기하고 아이 곁으로 갈까 생각하고 있다고. 그 와중에도 부모들끼리 제가 첫 타자일 거라고 걱정을 해요. 너무 딸바보라서…. "

시간의 흐름과는 또 다른 이유로 세월호의 흔적이 남은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사고 이전에 지자체 예산 부족으로 취소됐던 항구공사계획이 갑자기 정부에서 예산이 내려오면서 시작돼 희생자 가족들의 공간은 한 쪽으로 밀려났다.

실종자 가족들이 "나만 남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탄식으로 밤을 지새우던 진도 실내체육관은 이제 전남도민체전을 앞두고 인부들이 막판 공사에 한창이었다. 진도군이 가족들에게 철수를 요청한 것은 지난해 11월이었다.

세월호를 집어삼킨 바다를 24시간 비추던 스크린이 있던 자리에는 연단이 들어섰다. 1년 전 '생존자 명단'이 붙었던 벽도 흔적 없이 깨끗했다. 실종자 가족들의 이불과 가족사진, 캐리커처, 아이들의 신발과 야구복이 있던 체육관 바닥은 경기장으로 탈바꿈했다. 배구 코트와 탁구대가 가지런히 놓였다.

 

단원고 2학년9반 진윤희양의 삼촌 김성훈씨는 "정부는 이제 완전히 손을 뗐고 재정이 힘든 진도군에 우리를 떠넘겨 '미안하지만 나가달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전기를 무상으로 공급해주던 한국전력도 지난해 12월 돌연 공급을 끊고 컨테이너마다 계량기를 달았다"고 말했다.

점점 옅어지는 세월호의 남은 흔적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9명의 실종자 중 권재근씨(52)의 형이자 혁규군(6)의 큰아빠인 권오복씨는 여전히 팽목항을 지키고 있다. 그는 팽목항의 최장기 체류자다.

권씨는 "몰살당한 동생 일가족의 장례라도 치러줘야 하지 않겠냐"라며 "죽었는데 눈으로 아직 보지를 못했으니 죽음이 믿기지 않는 것은 실종자 가족 모두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세월호 기억의 숲' 프로젝트를 위해 팽목항을 찾은 오드리 헵번의 손주들도 저마다의 생각으로 세월호를 마음에 담았다. 막내 산티아고 헵번군(11)은 "화물을 과적하고 제대로 묶지 않았던 것이 잘못"이라며 "사고 이후에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 것도 잘못이기에 이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티나 헵번양(15)은 "선장이 가장 먼저 탈출한 사람이라는 것, 아이들은 '방에 있어라'라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그대로 있었다는 것이 정말 슬프다"라며 "안산 분향소에서 본 내 또래 아이들의 영정사진이 기억에서 잊히질 않는다"고 말했다.

대통령 이어.. 세월호 추모식, 장관들도 안간다

해외 출장·국회일정 등의 이유로

日 대지진 1주기 추모 땐

요양 중이던 일왕도 참석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가 바다에 잠기고 있는 모습.

[연합통신넷= 임병용기자]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1주기인 16일에 남미 순방을 떠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관계 부처 장관들도 해외 출장이나 국회 일정 등으로 대부분 추모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 인사들의 세월호 1주기 추모는 유가족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넓게 번진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인데도 정부가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14일 각 부처에 따르면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5일 국제통화기금(IMF) 총회 참석차 미국으로 출장을 떠난다. 유가족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담당하는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은 16일 오전 10시부터 국회 본회의 교육ㆍ복지ㆍ사회ㆍ문화 부문 대정부 질문에 참석, 이날 하루 종일 국회에 있을 예정이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16일 별도의 추모 행사 참여 없이 박 대통령의 남미 순방에 동행한다.

세월호 참사의 소관부처라 할 수 있는 국민안전처는 이날 추모행사가 아닌 '국민안전 다짐대회'라는 일종의 홍보행사를 열기로 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조차 이 행사를 거론하며 "1주기 행사와 관련해 걱정이 많다"면서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제를 안산에서 정부가 공식적으로 주관해 개최해달라"고 건의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논란이 되고 있는 이 행사에는 박인용 안전처 장관,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참석한다. 세 장관 모두 별도의 추모 행사 참여 계획은 없다. 관계 부처 장관 중 세월호 1주기 당일 추모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전남 진도군 주최 추모제에 참석하는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정도다. 해수부 관계자는 "14일 오전까지도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진도 추모제에 가야 할지, 정부가 주관하는 국민안전다짐대회에 갈지 고심을 거듭하다 추모제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국회 대정부 질문에 참석해야 하는 황우여 부총리는 14일 안산 합동분향소를 미리 방문했다. 김희정 여가부 장관도 당초 일정이 없었으나 15일 안산 건강가정지원센터와 합동분향소를 방문하기로 14일 급히 결정했다. 교육부와 여가부는 피해 학생 및 가족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맡고 있다.

생존자 및 유가족의 치료비 지원, 심리치료 등을 담당하는 복지부의 문형표 장관은 16일까지 추모 일정이 전혀 없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휴직ㆍ휴업 지원을 해 온 고용노동부 이기권 장관 역시 추모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밤 이주영 당시 해수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한 범정부사고대책본부(범대본)를 꾸려 지난해 11월까지 가동했었다. 교육부 복지부 여가부 등 관계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 20개 기관이 참여한 범대본은 유가족에 대한 생활안정자금 지원, 심리치료 뿐 아니라 수색구조에 참여한 어업인 보상, 진도 지역 어업인과 소상공인 등에 대한 특별정책자금 등을 지원하며 세월호 참사 수습에 함께 나섰다. 또 교육부, 복지부, 여가부는 합동으로 중앙재난심리지원단을 구성해 심리치료에 나섰고, 복지부는 별도의 사고수습대책본부를 꾸려 의료ㆍ심리ㆍ장례 지원을 해왔다. 하지만 정작 세월호 1주기를 맞아 범대본에 참여했던 부처들은 하나같이 추모행사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1주기 당일 대정부질문 일정을 잡은 국회 여야 원내대표단 역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국회 원내대표단은 지난달 16일 주례회동에서 대정부질문 일정을 세월호 1주기와 겹쳐 잡았다. 원내대표단 관계자는 "공무원연금개혁 특위 일정에 맞춰 국회 본회의 일정을 잡다 보니 1주기와 겹친 것 같다"며 "1주기 당일 관계 부처 장관들에게 세월호에 대한 질의를 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동일본 대지진 1주기였던 2012년 3월11일 노다 요시히코 당시 일본 총리를 비롯해 아키히토 일왕 부부 등 주요 인사 1,200여명이 도쿄국립극장에 모여 추모식을 거행했다. 이들은 대지진 발생시각인 오후 2시46분에 맞춰 1분간 2만여명의 사망ㆍ실종자를 위해 묵념을 했다. 특히 고령의 아키히토(82) 일왕은 추모식 3주전 심장수술을 받아 요양 중이었음에도 직접 추도문을 낭독하며 희생자를 애도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부의 세월호 1주기 추모행사 홀대에 대해 "중요한 치유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대형 참사 후 1년이 지나면 유가족이나 사회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게 일반적인데, 우리 사회가 아직도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충분히 애도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1주기를 맞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지도층이 진심 어린 애도를 표한다면 사회적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려대병원의 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부 지도층 전체가 추모식에 참여하는 과정 자체가 당사자뿐 아니라 전 국민의 상처를 치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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