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이 감사생활을 할 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사사건건 대립하고 헐뜯으며 욕을 하며 발악을 합니다. 그래서야 어찌 이 세상에 덕화가 만발하는 세상이 찾아 올 수 있을까요? 낙원(樂園)이 다른 곳이 아닙니다. 바로 감사생활이 이 사회에 편만 하는 세상입니다.

고급승용차 두 대가 급하게 달려오더니 나란히 1, 2차선에 와서 멈췄습니다. 그리고는 2차선에 서 있던 한 운전기사가 문을 열고 나가 1차선에 서 있는 승용차의 문을 열고 그 차의 기사를 끌어내리더니 순식간에 두 기사들끼리 난투극이 벌어졌습니다.

멱살을 잡고 이놈 저놈 하면서 실랑이를 벌이는데 사람들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신호가 바뀌어 두 운전기사는 싸움을 그쳤지만 원인을 알아본 즉, 서로 양보를 안 하고 앞질러 가겠다고 한데서 비롯된 싸움이라는군요. 우리는 양보하고 상대편한테 져주는 것을 뭔가 커다란 수치로 아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기를 쓰고 상대방을 이기려고만 하니 이 사회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요? 바람직한 인생을 만들려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삶에 철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그 철학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싸워서는 세상이 맑고 밝고 훈훈한 덕화만발의 세계는 이룩할 수 없습니다.

진리는 공정한 것이어서 누굴 더 예뻐한다거나 더 미워하지 않습니다. 혹 사람이 주는 상벌은 틀림이 있을지 모르나 진리가 주는 상벌은 조금도 틀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나를 왜 몰라주는가 하고 원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참으로 크고 기쁜 상은 진리가 주는 상이지 인간들의 상대적 가치와 기준 속에서 주어지는 상이 아님을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진리는 아무리 그 그물이 듬성듬성해도 조그만 티끌하나도 그냥 빠뜨리거나 그냥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지금 아무리 호화롭고 부귀한 삶을 살아간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당한 것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고통으로 세월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지금 아무리 고통스럽게 산다 하더라도 정당하고 떳떳하게 받는 고통이라면 마음을 잘 쓰면서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언젠가는 그 고통이 낙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조지아 주에 ‘마르다 벨’이라는 여자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너무 가난한 시골학교라 학교에 피아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당시에 미국 최고의 부자였던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에게 1,000불만 도와달라고 간곡한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헨리 포드는 그 편지를 받고 마음이 상했습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헨리 포드에게 돈을 요구해서 받아갈 때는 사정해서 받아가지만, 대부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것으로 끝났기 때문이지요. 이 사람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일거라 생각하고는 그냥 거절할 수가 없으니까 10센트를 보내주었습니다.

1,000불을 달라고 했는데 1달러도 아닌 10센트를 보냈으니 얼마나 실망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선생님은 그 돈을 감사히 받아서 10센트만큼의 땅콩을 사서 운동장 한 구석에다 심었습니다. 얼마 후에 땅콩을 수확해서 약간의 이익금을 냈습니다. 그녀는 그 돈에서 얼마를 떼어서 헨리 포드에게 감사의 편지를 담아서 보내주었습니다.

또 다음 해에도 더 많은 씨를 뿌리고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그 결과 5년 만에 피아노를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헨리 포드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헨리 포드는 여 선생님의 편지를 받고 너무 기뻐서 선생님이 요구한 천불의 10배나 되는 만 불을 보내면서 거기에 「당신이야말로 내가 만난 유일한 사람이오. 나는 당신에게 돈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보내오. 나는 당신을 만남으로 감동을 받았소.」 라는 편지를 동봉해왔습니다.

그 선생은 10센트를 받고 불평과 원망을 심은 것이 아닙니다. 감사의 씨를 심어서 진리의 수확을 거두었던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은 불행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감사생활 하는 사람은 감사할 일이 계속 생깁니다. 불평과 불만, 원망과 저주는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는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특효약일 것입니다.

감사생활만 하는 사람은 늘 진리의 도움을 받고, 원망생활을 하는 사람은 늘 미물(微物)에게서도 해독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진리의 은혜를 믿고 감사생활을 하는 사람은 진리의 뜻에 보답하는 것이 되므로, 이러한 사람은 늘 진리의 보호를 받아 천지만물이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 어떤 경우에 처하더라도 항상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면 어떨 까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2월 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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