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화만발 카페에 <이언 김동수교수 시문학>방이 있습니다. 이 방의 주인 이언 김동수 교수님은 백제예술대학서좌교수이시고, ‘미당문학회’장을 역임하셨으며, 지금은 ‘사단법인 전라정신연구원’장으로 재직하시는 시인이십니다.

이언 교수님이 <죽어도 죽지 않는 삶>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주셨습니다. 이언 교수님은 참으로 대단하신 분입니다. 이 글을 읽고 저는 불가(佛家)의 대 법사님의 법문을 받드는 것 같이 장엄하고 장중한 사자후를 들은 것 같이 기뻤습니다. 이렇게 댓글을 달아드렸더니, 겸손하게도 “다 덕화만발에서 틈틈이 배우고 깨친 바를 다시 나름대로 정리해 놓은 것입니다. 덕산 선생님의 은혜가 큽니다.”라는 답글을 달아 주셨네요.

여기 그 <죽어도 죽지 않는 삶>을 전해 함께 죽음에 대한 공부를 해 봅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란 말이 있다. 빈손으로 왔다가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간다는 뜻이다. 참으로 허망한 말이다. 물론 사람이 죽으면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도 죽음과 동시에 소멸되고 말기에 그렇게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명예도 재산도 그걸 움켜쥐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空)로 왔다 공(空)으로 가버리고 마는 것일까? 그렇게 가버리고 마는 인생도 있겠지만, 개중에는 그가 살았을 때 타인에게 베풀었던 삶의 흔적이 세상 속에 오래 남게 된 사람도 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런데도 혼자만을 위한 삶을 살다 죽고 나면 어떤 의미도 남지 않는다.

오직 타인들과의 삶 속에서만이 생의 의미가 있게 된다. 그러기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할 것인가? 나도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 올 때, 내가 그동안 쌓아올린 삶이 어떤 의미로 얼마나 남아 있을 것인가? 스스로 내 삶의 존재가치를 생각해 볼 때 ‘죽어도 죽지 않는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죽으면 무(無)로 돌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생시에 그가 남긴 삶의 흔적은 죽어도 죽지 않고 남아, 그를 기억하게 한다. 결국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것은 내가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그들에게 남긴 행적만이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그 길만이 내 존재의 증거, 곧 내 생의 의미와 보람이 아닐까 한다.

불교(佛敎)에서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곳으로의 이사’로 본다. 삼라만상의 전 과정을 생멸 법(生滅法)과 윤회(輪廻)로 설명하고 있다. 만상은 인연에 의해 이루어졌다가, 그 조건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진다고 본다. 이것이 나(生)면 반드시 죽게 되는 세상의 순리이고 자연의 질서다. 그러기에, 생하고, 멸하는 이별의 법칙을 겸허히 수용하게 된다면, 이별의 고통에서 다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은 결코 삶과 분리되어 있거나 그 것으로 그냥 제로(0)가 되는 게 아니다. 죽음은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모이고 쌓여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 윤회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만해(萬海)도 ‘이별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의 시작’이라 역설하고 있다. 생시에 선덕을 쌓으면 다음 생에 좋은 곳에 태어나고 악행을 많이 저지르면 내세에 가서도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을 가지고 온다. 춘하추동의 순환도 이러한 원리에 의해서 운행되고 있다. 5월부터 음(陰)이 시작하여 10월에 사그라지고, 11월부터는 양(陽)이 다시 시작하여 9월에 사그라진다. 이처럼 하나가 다하면 그 자리에서 곧 다른 생(生)이 시작된다.

티베트의 배리커진 스님도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업에 따라 다시 돌아오기에 현세에 선행을 많이 베풀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기에 진정 두려워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오늘 하루하루의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향만리(人香萬里)」/ 김동수

「꽃에도 향기가 있어/ 사람에게도/ 향(香)이 있어/ 그날 웃던 그 모습/ 그가 남긴/ 말 한 마디/ 품에 안고 다니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것도 모자라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그날의 흔적 강 넘고 바다 건너/ 아직도 콩닥거리는 심장/ 만리를 간다.」

인생의 끝은 어디일까? 피할 수 없는 이 화두 앞에 그게 죽음이든 영생이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라는 것, 그리고 죽음은 결코 무(無)가 아니라, 그 이후에도 어떠한 형태로든지 이어져 가고 있다하니 오늘 하루하루의 삶이 참으로 두렵다 아니 할 수 없다.

죽지 않은 생명은 없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죽어간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죽은 자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듣는 일이고, 산 자의 죽어가는 목소리를 살피는 일이다’. 죽어도 죽지 않은 이 업보의 윤회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이웃과 더불어 즐겁고 보람된 삶이 될 것인지를 생각게 하는 오늘의 아침이다.】

어떻습니까? 죽음에는 세 가지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 사람은 분명히 죽습니다. 둘째, 혼자서 죽는 것입니다. 셋째,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 모두 ‘죽어도 죽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 까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9월 30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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