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칼럼] “살아만 오세요.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고 기다리겠어요.”

세상에 이런 안타까운 사랑도 있나요? 세상엔 지지 않는 꽃도 있지요. 어느 분이 보내주신 <살아줘서 고마워요>라는 글이 너무 가슴 아파 함께 그런 사랑을 느껴 보면 좋겠습니다.

겨울에는 눈이 내리는 것이 제격입니다. 그런데 눈을 피하려 한 평 남짓한 구두 수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을 열자 담배를 태우다 끄셨는지,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퀘퀘한 연기가 작은 환풍기를 통해 다투어 빠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 칠순이 넘으신 분이 양다리가 없는 불구의 몸으로 창 너머 하늘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거북이처럼 다가와 나의 흙 묻은 구두를 품듯이 안으며 닦기 시작했습니다. 불구의 어르신 앞에 다리를 꼬고 앉은 제 행동이 무례한 것 같아 “어르신! 힘들게 번 돈 어디에 쓰시나요?” 하고, 공손히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작은 창밖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훔치며, 주섬주섬 말을 찾다가 가슴에 응어리진 긴 지난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노인은 부모님도 아니고, 형제도 아닌 분들에게 신분을 밝히지 못한 채, 수 십 년 동안 돈을 보내주는 곳이 있으셨습니다. 구두를 닦으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자꾸만 눈물을 흘리고 계셨지요.

목에 걸려있는 침을 삼키며 상기된 얼굴로 지난 세월을 말씀하기 시작합니다.

【아주 옛날부터 대대로 물려온 지긋지긋한 가난! 한마지기 땅으로 9식구가 사는 집의 장남인 나는 우는 할머니와 어머니, 동생들의 손을 뿌리치고 자유 평화를 위해서가 아닌 돈을 벌기위하여 월남전에 지원해 간 거야!

하지만 더 가슴 아픈 것은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보다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가는 것이었어. 울며 매달리는 그 여자의 손을 잡고 약속했었지.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서 돌아오겠소!”라고, 그녀가 말 하더군, “살아만 오세요.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고 기다리겠어요.”

같이 마을 뒷동산에 올랐는데, 작은 몸을 떨며 나를 붙잡고 얼마나 울어대던지, 그리곤 이삼일 후 난 해병대에 지원해 월남으로 파병되었지. 그뒤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어. 살기 위하여 싸웠고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죽지 않고 살아야했지.

수 없는 전투를 힘들게, 힘들게 살아남으며 편지를 왕래하던 다음 해, 지금처럼 눈이 펑펑 내릴 즈음이었어. 귀국을 앞둔 겨울에 마지막 전투에서 벙커로 적의 수류탄이 떨어진 거야. 생각할 여지가 없었지. 부모 동생 생각은 안 나고 그 여자 얼굴만 잠깐 보이더군.

그리곤 떨어진 수류탄을 몸으로 막아 어렵게 동료들의 목숨은 구했지. 눈을 떠보니 내가 하체가 없는 불구자가 된 거야! 통합병원에서 겨우 살아났지, 나는 울면서 밤을 지새우며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그 몸으론 사랑하는 여자 앞에 나설 수가 없음을 알았던 거야. 고민 끝에 세상에서 제일 슬픈 말을 전해야 했어.

그 여자에게 차라리 ‘내가 전사했다’고, 그러고 나서 난 가슴이 찢어져 내리는 것 같아 잠도 못자고 밥도 못 먹었지. 그 후 겨울이 두 번 바뀌고 불구자로 제대한 뒤, 3년쯤 후에 상처가 아물게 되자, 난 그 여자가 보고 싶어졌어. 그때 쯤 그 여자가 결혼했다는 소문이 나돌았지. 잘 살아주길 기원하면서도 숨어서라도 난 딱 한번만, 한번 만이라도 보고 싶어진 거야.

그러던 어느 겨울, 눈이 왜 그리 많이 내리던지, 그 달 이 맘 때쯤인가 기적처럼 어느 간이역에서 그녀를 만났어. 둘이는 벙어리가 되어 서로 멍청히 서서 바라보고만 있었지. 그리고나서 그 여자의 남편을 보는 순간, 난 더 기가 막혔지. 그 남편은 나보다도 더한 양손 양다리가 모두 없는 불구자였던 거야,

그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인 나를 월남전에서 잃었다 생각하고, 나와의 약속 때문에 나와 처지가 비슷한 그 남자와 결혼한 것이었어. 그 얘길 듣고 난 나는 자신에게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지, 그 남자를 버리라할 수도 없었고 내게 돌아와 달라 말할 수도 없었어,

그 여자가 하체가 없는 내 앞에 엎드려 한참을 울 더 군. 그렇게 한참 울다가 해가 질 때 쯤 떠나가면서 나에게 말했지, “우리 둘이 약속한 그 뒷동산의 꽃을 내 눈물로 키웠어요. 하지만 살아줘서 고마워요.” 그리곤 뒤 돌아서서 손을 흔들며 내리는 눈 속으로 떠나가 버렸어.

그 후로 난 지금까지 웃으며 살아본 적이 없어. 내 자신을 책망하며 살아왔었지, 나는 용서를 빌며 그 인연의 끈을 놓기 싫어서 얼마 안 되지만 작은 도움이라도 돼주고 싶어서 이렇게 번 돈을 그 여자한테 매월 이름을 감추고 보내고 있지,】

노인은 그렇게 말을 이어가면서도 자꾸만 자꾸만 하늘을 보며 눈물을 닦아내고 계셨습니다. 저는 구두 수선 방을 나서며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이런 기막힌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데 말입니다. 저는 이렇게 이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살아야할 이유를 하나 더 추가하며,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네요.

어떻습니까? 너무 가슴 아픈 사연 아닌가요? 저도 자칫 월남전에 참전 할 번 했습니다. 제대 말년이라 가려고 했으나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군생활의 아름다운 추억이 잠시 떠오르네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1월 1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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