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새벽을 깨운 붓, 이젠 천상에서"…故이어령 전장관 영면
국립중앙도서관서 영결식…'시대의 지성' 큰 발자취 남기고 떠나
"원래 자리로 돌아갑니다…인간이 선하다는 것 믿으세요" 마지막 메시지

[서울 =뉴스프리존]김예원 기자=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장례식장에서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발인식이 엄수되고 있다. 이 전 장관의 조카인 여의도 순복음교회 강태욱 목사로 인도된 발인식은 유족, 생전 고인과 인연을 맺은 인사들이 참석했다.

 한국의 대표적 석학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장례 절차가 닷새간 일정을 마치고 마무리됐다.

지난달 26일 별세한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발인식이 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과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애도 속에 엄수됐다.

이날 오전 8시께 진행된 발인식에는 생전에 이 전 장관과 인연을 맺은 인사들도 참석해 시대를 앞선 통찰과 혜안으로 우리 사회에 큰 족적을 남긴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고인의 영면을 기원하는 발인 예배는 이 전 장관의 조카인 여의도 순복음교회 강태욱 목사가 인도했다.

고인의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은 예배를 마치고 빈소를 나서다 영정을 돌아보며 눈을 감은 채 남편을 향해 다시 한번 작별 인사를 건넸다.

은은한 미소를 띤 모습의 고인 영정과 위패는 손자 수범·정범 씨가 들었다.

강인숙 관장과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 교수 등 유족들이 그 뒤를 따랐다. 검은색 리무진까지 운구를 마친 뒤 유족들은 다시 짧은 기도를 하고 묵례했다.

운구차는 빈소를 떠나 이 전 장관 부부가 설립한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과 옛 문화부 청사 자리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거쳐 영결식 장소로 향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벽에 마련된 초대형 미디어 캔버스 '광화벽화'에는 '인간이 선하다는 것을 믿으세요. 그 마음을 나누어 가지며 여러분과 작별합니다',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란 고인의 생전 메시지가 띄워졌다. '대한민국의 큰 스승 이어령 전 장관님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란 추모 문구도 올라왔다.

영결식은 오전 10시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에서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장례위원장인 황희 문체부 장관이 조사를, 이근배 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과 문학평론가인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가 추도사를 낭독했다.

황 장관은 고인의 업적을 기리며 "우리는 꺼져가는 잿더미의 불씨를 살리는, 시대의 부지깽이를 잃었다. 목마른 사람들을 위한, 민중의 두레박을 잃었다. (중략)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는 그 말에 늦었지만, 같은 말로 화답드리고 싶다"고 안식을 기원했다.

장례기간 내내 빈소를 지킨 이근배 전 회장은 "헌시 '한 시대의 새벽을 깨운 빛의 붓, 그 생각과 말씀 천상에서 밝히소서'를 지어 영전에 올린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추도사를 대신한 조시에서 한국 대표 석학이자 문인, 문화행정가로 살아온 고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20세기 한국의 뉴 르네상스를 떠받친 메디치로 영원히 새겨질 것"이라며 "부디 이제 하늘나라에 오르시어 이 땅의 한 시대의 정신문화를 일깨운 우주를 휘두르는 빛의 붓, 뇌성벽력의 그 생각과 말씀 천상에서 더 밝게 영원토록 펼치옵소서"라고 추모했다.

김화영 교수도 "8자를 옆으로 눕히면 무한대의 기호 뫼비우스의 띠가 된다던 선생님이기에 90을 문턱에 두고 영원을 보려고 그리 서둘러 떠나셨습니까"라며 "죽음을 기억하는 일이 삶을 진정하게 사는 것임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 메멘토 모리"라고 애도했다.

이어 상영된 영상에선 이 전 장관이 이룬 방대한 업적과 이 전 장관이 생전에 남긴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라'라는 당부 등이 소개됐다.

유족과 참석자들의 헌화 및 분향,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의 추모 공연도 진행됐다. 학생들은 첼로 앙상블로 가브리엘 포레의 '엘레지'를 연주하고 국악 공연으로 고인의 명복을 비는 조창(弔唱) '이 땅의 흙을 빚어 문화의 도자기를 만드신 분이여'를 연주했다.

영결식에는 이채익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박정·국민의힘 김승수 문체위 간사를 비롯해 송태호·신낙균·김성재·김종민·유인촌·정병국·박양우 전 문체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유인촌 전 장관은 "우리 문화의 상징이셨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고, 도종환 전 장관은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을 잃었다"고 추모했다. 정병국 전 장관은 "오늘날문화강국이 될 수 있도록 디딤돌을 놓으셨다"고 기억했다.

이 전 장관의 장례는 5일간 문화체육관광부장으로 치러졌다. 빈소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윤석열·안철수 등 각 당 대선 후보들, 조정래·이문열·윤후명·박범신·김홍신 작가, 이근배·김남조·신달자·오세영 시인, 김병종 화가 등 문화예술계뿐 아니라 학계, 언론계 인사들이 대거 조문했다.

1933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호적상 1934년생)한 고인은 1956년 문학평론가로 등단한 뒤 문인, 언론인, 문화행정가, 학자 등으로 활동하며 우리 시대 최고 지성이자 한국 대표 석학으로 자리매김했다.

노태우 정부 때 신설된 문화부 초대 장관(1990~1991)을 지내며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국어원 설립, 도서관 발전 정책 기반 마련 등 문화 정책의 기틀을 세웠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지난해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17년 암이 발견됐지만 항암 치료를 받는 대신 마지막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 전 장관은 충남 천안공원묘원에 안치돼 영면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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