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하던가요? 쥐뿔도 가진 것이 없는 제가 ‘잘난 체, 아는 체, 있는 체’하고 설치다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던 젊은 시절이 생각납니다. 그 삼 체가 인생을 망친 것이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다 저의 무식의 소치였고 겸양과 겸손이 모자랐으며, 이기주의에 사로잡혔던 어리석음의 결과였음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럼 저의 어리석었던 젊은 시절처럼 사람들로부터 외면 당하지 않고, 세상으로부터 화를 입지 않는 지혜는 없는 것인가요? 그에 대한 해답이《장자(莊子)》에 나옵니다.

「한 번은 공자(孔子)가 진 나라와 채 나라 사이에서 포위되어 7일 동안이나 끓인 음식을 먹지 못했습니다. 그런 공자를 대공임(大公任)이라는 사람이 위문을 와서 말합니다. “선생은 곧 죽게 되었구려?” “그렇소이다.” “죽기 싫으시오?” “그렇소만.” 그러자 대공임이 공자에게 다가 앉으며 말했습니다. “그럼, 내가 ‘불사(不死)의 도리’를 말씀드려도 괜찮겠지요?” “어서 말해 보시오.”

대공임의 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동해에 '의태'라는 새가 있는데, 그 새는 느리고 높이 날지 못해서 무능하므로, 날 때는 같은 새 떼의 도움을 얻어서 날고, 머물 때는 새 떼 속에 끼어 있으며, 나아갈 때는 앞장서지 않고 물러설 때는 꽁무니에 처지지 않으며, 먹을 때도 앞에 나서지 않고 반드시 그들이 먹다 남긴 것을 먹소. 그러니까 이 새는 행렬에서 배척(排斥)당하지 않고, 사람으로부터 해(害)를 입지도 않소.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재난(災難)을 면할 수 있는 것이오, 곧은 나무는 먼저 베이고, 단 우물은 먼저 마르는 법이오. 내가 선생을 보니 선생은 자기 지식을 자랑하여 어리석은 사람을 놀라게 만들고, 자기 행실을 닦아 남의 잘못된 행동을 두드러지게 하며, 눈부시기가 마치 해나 달을 들고 가기라도 하듯 하니, 그 때문에 재난을 면치 못하는 것이오.

옛날 내가 큰 덕(德)을 지닌 분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스스로 공(功)을 자랑하는 이는 오히려 공을 잃고, 공을 이룬 뒤 물러나지 않는 이는 몸을 망치며, 명성(名聲)을 이루고 거기 그대로 머무는 이는 욕을 보게 된다고 하였소. 누가 과연 공명(功名)을 버리고 뭇사람에게 되돌려 줄 수가 있겠소?

그 도가 널리 세상에 퍼져 있어도 명성에 머물지 않고, 덕이 온 천하에 미쳐도 명예에 머물지 않으며, 마음을 순일(純一)하게 하고 행동을 평범하게 하여 광인(狂人)처럼 무심하게 거동 하며, 자취를 남기지 않고 권세를 버린 채 공명에 마음을 두지 않소. 이렇게 하니까 남을 책망하는 일도 없고, 남이 책망할 일도 없소, 덕이 지극한 사람은 세상의 명성을 바라지 않는 거요.

그런데 선생은 어찌 기뻐 자랑한단 말이오!” 대공임의 말을 다 듣고 난 공자가 말했습니다. “훌륭한 말씀이요.” 대공임의 말을 들은 공자는 이내 사람들과의 교제를 끊고, 제자들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진 펄 숲에 숨어 남루한 옷을 입고 도토리를 먹으며 살았습니다. 이윽고 그는 짐승들 속에 들어가도 무리가 놀라서 어지럽게 흩어지지 않고, 새 떼 속에 끼어도 행렬이 흩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우주의 진리를 깨치지 못하고, 덕이 건곤(乾坤)에 사무치지도 못한 한낱 범부중생(凡夫衆生)이 공연히 ‘잘난 체, 아는 체, 있는 체’는 혹시 하시지 않으셨는지요? 세상에 목숨을 부지하며, 손가락질 당하지 않고 사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 같습니다.

그럼 모난 돌이 정 맞지 않고 사는 길은 어떤 것일까요? 어느 시대나 변하지 않는 가치관(價値觀)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자기 낮춤’이지요. 우리가 주위의 친지나 세상에서 사랑 받고 살기 위해서는 아마도 ‘자기 낮춤'’, 겸양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그 처량함을 언제 까지나 면키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산다고 하는 것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지요.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화(禍)를 입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선 어울려 사는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려는 ‘자기 낮춤’이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나를 내려놓고 살면 새나 짐승도 두려워 않고 미워하질 않습니다. 하물며 인간이 어찌 무심하고 욕심 없이 ‘못난 체, 모르는 체, 없는 체’하며 자기 낮춤을 하고 사는 사람을 싫어하며 멀리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도덕이 무너져 세상이 엉망입니다. 그것은 다 저마다 잘났다고 설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덕인에게 사람이 모이는 것은 덕의 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덕산 김덕권
덕산 김덕권

우리 조금 모자라는 듯이 살아갑시다. 그리고 가진 것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널리 베풀고 삽시다. 있어서만 베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재물이 없으면 정신과 육신으로 베풀면 아주 훌륭한 보시(布施)가 됩니다.

그리고 내 혼신의 정열을 다 기울여 이웃과 세상을 위해 맨발로 뛰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나를 낮춤이요,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는 ‘불사의 도리’가 아닐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6월 21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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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의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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