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상은 없다 = 로이 리처드 그린커 지음. 정해영 옮김.

미국 조지워싱턴대 민족지학연구소장이자 정신보건을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인 저자가 '정상성'에서 비켜난 사람들에게 문화가 어떻게 낙인을 찍어 왔는지를 추적한 책이다. 자폐증 딸을 키운 경험을 담은 '낯설지 않은 아이들'을 펴낸 그는 2006∼2011년 한국에서 최초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대규모 역학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저자는 자본주의, 전쟁, 의료화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정신 질환과 장애에 대한 낙인의 역학을 탐구한다. 저자는 낙인은 세상 에디에나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지만, 시간과 장소에 따라 대상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책은 생산성에 따라 인간 가치를 평가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몸들이 배제되고 소외됐는지를 다룬다. 또 군진정신의학(military psychiatry)이 정신의학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낙인을 줄이기 위해 정신질환을 '망가진 뇌'라는 용어로 표현한 게 낙인을 어떻게 강화하는지도 설명한다.

저자는 항정신병 의약품 개발과 탈시설화 등은 정신질환의 낙인을 감소시키고 정신의학이 발전하는 데 큰 영향을 준 요인이라고 말한다. 또 이상행동과 정상행동을 하나의 스펙트럼상에 있으면서 정도의 차이로 보는 신경 다양성 관점 등 낙인을 해체하기 위한 사회운동도 지속해서 이뤄져 왔다고 주장한다.

오랫동안 정신질환과 장애에 드리웠던 낙인에 우리가 어떻게 성공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지 안내한 책이지만 정신의학의 역사와 함께한 저자 가족 4대의 이야기도 담겼다. 19세기 후반 신경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증조할아버지, 프로이트에게 정신분석을 받고 시카고대에 정신의학과를 설립한 할아버지, 정신과 의사인 아버지 등 얘기도 나온다.

메멘토. 600쪽. 3만3천원.

▲ 기후담판 = 정내권 지음.

대한민국 초대 기후변화대사를 지냈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반기문재단' 이사로 활동하는 저자가 지구환경 외교의 최일선에서 30여 년간 활동하며 경험한 결정적인 12개 담판을 뽑아 각각의 협상이 가진 시대적 의미와 시사점, 도전 과제 등을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유엔을 무대로 벌어지는 지구환경 협상의 핵심은 선진국들의 역사적 책임 규명, 개발도상국들의 참여에 드는 재원과 기술의 지원 범위 등 2가지라고 말한다. 이를 둘러싸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대립이 벌어지는데, 중간에 낀 한국은 고유한 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이지만, 산업화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분담하는 선진국은 아니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선진국은 산업화 과정에서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기후변화를 일으킨 책임이 있는 국가를 뜻한다. 기후변화 협약상 선진국의 의무를 한국에 요구하는 게 지구환경 외교에서의 중요한 도전이었다고 회고한다.

책은 지구환경 외교에서 기후변화 협상의 결정적 계기마다 협상 타결을 좌절시킨 미국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한다. 다만 중국과 인도 등 주요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을 추궁하는 데 철저했지만, 각국의 능력에 맞는 미래의 온실가스 배출 책임은 시종일관 회피했다며 모든 책임을 미국에만 돌릴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탈탄소 미래를 꿈꾸며 환경보호와 사회발전이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지속 가능 선순환 발전 모델 등 새로운 지구환경 패러다임을 제안한다. 탄소세와 탄소잠재가격, 자발적인 탄소가격 지불 제도 등은 탈탄소 미래로 가는 강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메디치미디어. 304쪽. 1만7천원.

▲ 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 허은주 지음.

소도시에서 작은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인 저자가 병원 안팎에서 만난 동물과 사람들에 관해 풀어낸 에세이다.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전공하고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하던 저자는 어느 날 우연히 여성 수의사를 만난 뒤 수의대에 진학하고, 동물들의 삶에 관심을 두게 된다.

저자는 반려동물이 가족이 되는 현실의 한편에는 여전히 상품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동물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개와 고양이를 고속버스 택배로 사고팔고, 반품과 교환도 전화 한 통으로 가능하며, 비용 절감을 이유로 동물에게 최대치의 고통을 안기며 사육하는 현실을 꼬집는다.

또 사람들이 선호하는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마취를 하지 않고 2개월 된 강아지의 귀를 잘라 명주실로 꿰맨 농장주, 우리 개는 아파도 물지 않으니 마취하지 말고 꿰매라는 보호자, 싸움소를 육성하고 환호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소개하며 "인간이라는 이유로 다른 생명에게 잔인하고 무참해질 권리가 있는가"라고 묻는다.

저자는 병원에서는 환자에 대한 학대 의심 신고가 가능하지만, 동물병원에서는 불가능하다며 수의사가 할 수 있는 조치가 아무것도 없었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저자는 삶과 죽음 앞에서 우리와 다르지 않을 어떤 마음들에 대해 빼곡히 기록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일, 다른 생명과 공존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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