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종교적 별칭..?

김덕권
김덕권 칼럼니스트

며칠 전 동창 생 한 분이 돌아가시어 카톡으로 부고(訃告)가 왔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셨다는 말이 아무래도 올바른 것 같지 않습니다. 바른 부고를 보내야 실례도 안 되고, 그 죽음도 한결 품격이 있을 것 같아, 한 번 알아봅니다.

우리말 가운데 죽음에 대한 별칭은 매우 다양합니다. 사망(死亡), 임종(臨終), 별세(別世), 타계(他界), 하직(下直), 서거(逝去), 작고(作故), 선서(仙逝), 기세(棄世), 하세(下世), 귀(歸天), 영면(永眠), 영서(永逝), 영결(永訣), 운명(殞命), 절명(絶命) 등등, 이 외에도 엄청나게 많지요.

이는 우리 선조들이 오래도록 죽음을 고민하고 살았다는, 반증(反證)이기도 합니다. 간혹 신문 기사에서 ‘유명(殞命)을 달리했다.’라는 표현을 보게 됩니다. 이 또한 잘못된 문장으로 ‘유명(幽明)을 달리했다’라고 해야 옳습니다. ‘유(幽)와 명(明)을 달리했다.’라는 말은 생과 사를 달리했다는 말입니다.

‘유(幽)’는 어둠·밤·죽음·저승· 악·무형·어리석음 등을 의미하고, ‘명(明)’은 밝음·낮·삶·이승·선·유형·지혜로움 등을 뜻합니다. 굳이 ‘운명했다’라는 표현을 하고자 한다면, ‘00병 끝에 운명(殞命)했다’라고 해야 옳습니다.

죽음의 종교적 별칭도 여러 가지입니다.

첫째, 불가(佛家)에서는 열반(涅槃), 입적(入寂), 입멸(入滅), 멸도(滅度) 등을 씁니다.

둘째, 유가(儒家)에서는 역 책(易簀), 결영(結纓), 불록(不祿) 등으로 표현합니다. ‘역책(易簀)’이란 <예기>의 <단궁편(檀弓篇)>에 나오는 말로서, 학덕이 높은 사람의 죽음이나 임종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리고 ‘결영(結纓)’이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말로서 갓 끈을 고쳐 맨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또한 ‘예기(禮記)’<곡례(曲禮)>에는 장수하다가 죽은 것을 ‘졸(卒)’이라 하고, 젊어서 죽은 것을 ‘불록(不祿)’이라 했습니다.

셋째, 천주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선종(善終)’이라는 말을 씁니다. 이는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준말로서 ‘착하게 살다 복 되게 생을 마쳤다’ 라는 의미이지요. ‘믿음대로 살다 천국에 갔다’ 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넷째, 개신교에서는 많은 사람이 ‘소천(召天)하였다’라고 말들 하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표현입니다. ‘아무개 님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소천하였다’ 라는 표현은 명백한 문법 상의 오류이기 때문이지요. ‘소천’이라는 말은 우리말 사전에도 없는 신조어로서 문법적으로 본다면, ‘하늘을 부른다.’ 라는 뜻이 됩니다.

대개 ‘소명(召命)’이란 단어가 능동 형으로 쓰일 때, 그 주체는 부르는 존재를 말합니다. 예를 들자면 신학교를 입학하고자 하는 신학생은 ‘소명을 받았다.’라고 하지, 스스로 ‘소명했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굳이 ‘소천’이라는 단어를 쓰고자 한다면 ‘소천하셨다’가 아니라 ‘소천을 받았다’라고 해야 옳습니다.

한편 망자(亡者)나 그 가족에게 흔히 하는 상례(喪禮)의 인사말로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말들을 합니다. ‘명복(冥福)’이란 죽은 뒤에 저승에서 받는 복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명복을 빈다.’ 라는 말은 죽은 사람의 사후 행복을 비는 말로서, 서방정토(西方淨土)에 가서 극락왕생(極樂往生)하도록 기원하는 불사(佛事)하는 일이지요.

‘고인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라거나 ‘고인의 별세를 애도합니다.’ 또는 ‘고인의 영면을 추모합니다.’,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등등, 고인의 생전의 종교나 신념에 따라 얼마든지 추모할 수 있는 표현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무턱대고 한결같이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하는 말은 진정성도 의미도 반감되는 매우 무성의한 예법이 아닐런지요?

더욱이 기독교인이나 천주교 인에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고 하는 것은, 매우 큰 결례의 표현입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죽은 이의 명복을 빕니다.’ 라고 하는 것은, 무간지옥에 떨어진 중생을 구제하는 '법신불 사은' 님 또는 불교의 보살인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에게 기도를 하는 천도(薦度)의 발원(發願)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가까운 사람이 죽음을 당하면, 괴로움과 아쉬움과 슬픔이 이루 말할 것 없이 클 것입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분 처지에서는, 고인을 너무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자기 인연 따라서 영혼이 새 몸을 받으러 가야 하는데, 우리가 너무 슬퍼해서 그 사람을 가지 말라고 붙들면 안 됩니다.

사람이 죽게 되면, 육신은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사라지고 영혼이 나오게 되는데, 처음에는 그 영혼이 착심(着心)을 따라서 갑니다. 그 후에는 자신의 업(業)에 따라서 끌려가지요. 따라서, 이 속에서 자유자재로 영혼이 움직이려면, 착심을 놓고 업을 초월해야 합니다.

착심은, 마음이 무언가에 묶여 있는 것을 말합니다. 재물에 묶여 있으면 재물에, 명예에 묶여 있으면 명예라는 착심이 묶여 있는 것이고, 마음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묶여 있으면 가족들에게 착심이 걸려 있는 것입니다.

그럼 죽음의 세계에서 청정한 생각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어서, 저승으로 가는 길이 어둡게 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열반인(涅槃人)의 명복을 위해서라도 ‘죽음에 관한 바른 호칭’을 쓰는 것도, 착심을 떼고 영혼이 훨훨 떠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12월 12일

덕 산 김덕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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